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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목 Mar 28. 2019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것이 모두
디자인은 아니다

1장 디자인이란 무엇인가_05

디자인 수업을 진행하다가 보면 가장 당혹스러운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판단하기에는 분명히 디자인이 아닌데 학생은 자신의 아이디어(혹은 생각)를 디자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경우 학생은 자신의 생각이 사회의 심각한 문제 등을 다루고 있으며, 매우 의미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생각)라고 생각하는데, 지도하는 교수는 ‘그건 디자인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평가를 하기도 하고, ‘너는 도대체 무엇을 디자인하고자 하는 것이냐’고 물어오기도 하기에 너무나 억울하겠지요.     


그럼 학생들이 흔히 일으키는 ‘자신이 생각한 것이 너무나도 좋은 디자인인데 지도 교수가 디자인이 아니라고 하는’ 경우 2가지를 설명해 보도록 합니다.     



타 분야의 전문가로 착각하는 경우

우선 첫째는 디자인 전문가로서의 생각이 아닌 타 분야의 전문가로 착각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신제품을 개발하기 위하여, 영업, 상품기획, 기구설계, 회로설계, 생산관리, 디자인 부서의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다고 가정해봅니다. 


‘새로운 소비자 계층이 나타났으니 그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자.’는 아이디어는 누가 생각해낼 수 있을까요? 신제품 개발회의에 참가한 누구나가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다음으로 ‘지난번에 개발했던 제품의 구조가 약하니 이를 더욱 튼튼하게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또한 ‘제품의 부품수를 줄여 생산효율을 높여 생산단가를 낮추자.’는 아이디어도 나올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제품 개발회의에서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그리고 디자이너, 기구설계, 영업, 상품기획 담당 등 누구라도 원가절감, 새로운 소비자의 대응, 새로운 기술의 적용 등에 대하여 경계 없이 다양하고 폭넓은 의견을 개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제품에 대한 회의가 끝나고 자신의 부서로 돌아가 회의에서 나왔던 과제들을 해결할 때에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새로운 시장의 개척은 영업의 업무이며, 새로운 기술의 적용은 개발의 업무가 되고, 생산 공정을 줄이는 일은 생산관리의 일이 됩니다.      


그렇다면 디자인의 일은 무엇이 될까요? 아무리 디자이너가 신제품 개발 회의 시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다고 하나 자신의 부서로 돌아와서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아니고, 공정수를 줄이는 것도 아니며, 새로운 소비자를 위한 영업 전략을 짜는 것도 아닙니다. 


디자이너는 너무나 당연히 ‘디자인’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디자인의 문제는 바로 새로운 실용성과 심미성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계속해서 어떻게 새로운 기술을 적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공정수를 줄일 수 있을까? 등에 대하여 고민을 계속하고 정작 디자인을 소홀히 한다면 전문가로서 디자이너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디자인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생산단가를 낮추고,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는 것을 생각하고 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요소나 과제들을 고려하는 것이지 디자이너가 그러한 요소나 과제들을 해결하는 책임의 주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디자이너가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라 영업, 개발, 생산 등 다른 전문가의 입장을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이와 같이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혼돈한다면 디자인의 과제를 도출하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디자이너가 아닌 개인이나 사회인으로의 생각

두 번째의 원인은 디자이너라는 전문가가 아닌 순수한 개인이나 사회인의 입장으로의 생각을 가지는 경우입니다.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디자인은 아닙니다. 디자이너도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이기도 하며, 현재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회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떤 생각은 개인으로의 생각, 디자이너라는 전문가의 생각, 더 나아가 사회인으로의 생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건강했으면 좋겠다, 성공했으면 좋겠다 등은 모두 개인으로의 생각에 해당합니다. 

한편 아름답고 새로운 디자인을 했으면 좋겠다, 여기에 사용하기 편한 디자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개선된 디자인 있었으면 좋겠다, ~를 위한 디자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등은 모두 직업인인 디자이너로서의 생각입니다. 


다음은 사회인으로서의 생각입니다. 환경오염 및 에너지의 고갈, 사회의 빈부의 격차, 사회 소외계층의 발생 등은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에너지를 아껴 써야겠다는 생각도 들게 하고, 보다 더 소외계층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회 소외계층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 그들을 위하여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다거나, 환경보호를 위하여 쓰레기를 줄이기로 마음먹고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는 것은 디자인 전문가로서가 아니라 현 사회의 문제에 대하여 고민하고 대응하려는 사회인으로서의 생각이나 행동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삶 중에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직면하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아이디어를 내거나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에 사회인이 아닌 디자이너로서 그 문제에 대응하고자 할 때 비로써 디자인 프로젝트가 되는 것입니다.           



너무나 간단한 이유와 원리입니다만, 우리는 종종 그 간단한 원리를 잊어버리고 개인의 견해를 때로는 다른 전문가로 착각하여, 혹은 사회인의 사명감에 깊이 빠져 자신이 하는 생각과 행동이 디자인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이 디자이너가 하는 생각과 행동에는 디자인이 아닌 경우도 매우 많습니다.     


위와 같은 경우들이 디자인 주제를 잡기 힘들게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것일까요?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생각하게 한 바로 그 이유인 ‘야 이 제품은 정말 멋지다’, ‘야~ 이건 정말 사용하기 편하게 디자인되어있다’, ‘이 조명은 정말 새롭고 아름답다’와 같은 방법으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생각이 개인의 입장에서 시작되던 사회인의 입장에서 시작되던 관계없습니다. 어디에서 문제가 관찰되든지 간에 그것이 디자인의 영역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의 시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과가 디자인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디자인잡론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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