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바깥 풍경을 노랗고 빨갛게 물들이던 나뭇잎들은 어느새 찬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다. 겨울이 오면 두터운 옷을 꺼내 몸을 꽁꽁 숨기고 작은 키에 꼬불한 단발 곱슬머리를 휘날리며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기를 벌써 몇 년째.
첫 번째 직장에서 보다 전문성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인사 업무에 발을 들인지도 벌써 이 년이 다되어 가고 있었다. 남들 다 하는 만큼만 하고 살기도 숨가빴는데, 내가 원하는게 뭐냐니? 새로온 팀장이 던진 한 마디에 많은 생각이 드는 부영이었다.
그 날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팀장은 부영에게 전에 해본 적 없는 꽤나 이상한 미팅을 한달에 한 번, 스케줄표에 넣어달라 얘기했다.
“부영님, 한 달에 딱 한번, 한 시간 이예요. 이 시간에는 일 얘기는 안 할 거예요. 뭐 일 얘기를 아예 안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매주 하는 업무미팅이랑은 완전 달라요. ‘부영님의 커리어’ 에 집중해서 얘기하는 시간이 될거예요. 부영님이 얼만큼 준비하고 열심히 참여하는 지에 따라 부영님이 얻어갈 수 있는 것도 달라질거구요.”
“네,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은 했지만 뜬구름 잡는 얘기 같기도 하고, 아직 팀장이 믿을 만한 사람인 지 아닌 지도 헷갈리는 부영이었다. 그사이 팀장은 부영에게 첫 번째 미팅을 위해서 본인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HR 전문가, 인사전문가란 어떤 모습인지를 그려보라는 숙제를 줬다. 당장은 직접적인 경험도 많이 없고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례도 많이 없었을 테니, 책이나 인터넷을 많이 찾아보고 참고해도 좋다는 얘기를 하면서.
부영은 팀장이 추천해 준 몇 권의 책 중, 하나를 골라 도서관에서 빌렸다. 독서에 딱히 취미가 큰 것은 아니지만 예전부터 한 번은 읽어봐야지 했던 책이었다.
헌데 책을 읽어도 딱히 팀장이 내 준 과제에 대한 답이 정리되지 않았다.
‘내가 뭔가가 부족하니까 그걸 개선하라고 이런걸 시키는 건가? 근데 책에서 말하는 이런 방식의 실무는 할 엄두가 안나는데… 나 같은 애가 잘 할 수 있을까?’
‘어드민 업무를 그냥 하느니 전문영역이 있어야지!’ 마음먹고 인사쪽을 지원해 일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부영 자신이 어떤 인사전문가가 되고 싶은지, 혹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사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려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고 어려웠다. 결국 한 달의 시간을 헤메이며 어영부영 보내는 동안 팀장과 약속했던 미팅시간이 다가와버렸다.
“팀장님, 사실 저.. 생각해보라고 하신 거 생각해봤는데요. 뭐 인사팀은 우선 직원들이 다가가기 쉬워야 할 것 같고… 인사 관련 지식도 많이 있어서 누가 물어볼 때 대답도 잘 해줘야 할 것 같구요… 팀장님이 ‘사람’에 대한 케어를 하시는 걸 짧은 시간 동안 보면서 그전에 어드민 업무를 정확하게 하는 것과는 또 다르게 어찌보면 마케팅하는 것 같다? 라고도 느꼈어요. 근데 제가 당장은 계속 어렵다고 느끼거나 부족하다는 생각만 들고 아직 과제를 내 주신 의도나 방향을 아직 다 이해를 못한 것 같아요….”
부영의 이야기를 듣던 팀장은 미나에게 또다른 과제와 솔루션을 줬다. 이번에는 이상적인 인사전문가가 이전에 부영이 ‘왜’ 인사 업무를 하고 싶어하는지, 잘하고 싶어하는 지, 잘한다는 게 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내가 얻고 싶은 결과와 왜 그것을 얻고 싶은지'를 알아야, 간절해지고 힘든 상황에서도 나를 끌어당기는 에너지가 된다는 것이 팀장의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팀장 본인의 사례를 들려주었다. 동기들이 다 승진할 때 혼자 승진에서 누락 됬던 사연, 최악의 팀장과 최고의 팀장을 만나며 시키는 일도 제대로 못 해내던 직원으로 평가받던 주니어를 지나 스스로 동기부여하고 주변에서는 인정받는 프로가 되기까지의 이야기까지. 나눌 이야기는 한참 더 있지만 앞으로 천천히 부영의 호흡에 맞춰 이어나가기로 했다.
처음엔 뜬구름 잡는 먼 얘기처럼 느껴지던 시간이 조금은 선명해진 느낌이었다. 더 이상 ‘신입’이나 ‘계약직’, ‘초보’ 라는 이름에 묶이지 않고 ‘자신을 더 믿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