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면 태어나는 관계들
작가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 보면 "이 그림 사용하고 싶은데 어떻게 쓰면 되나요?"라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사용을 허락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림 원본을 넘겨줘야 할까요, 촬영한 이미지만 건네면 될까요?
그림의 사용허락은 보통 라이선스 계약이나 양도 계약으로 하고, 라이선스 계약과 양도 계약은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지 살펴볼게요.
라이선스 계약은 저작권자가 그림에 대한 권리는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타인에게 일정한 범위 내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림의 주인이지만, 이렇게 정한 범위 안에서는 그림을 사용할 수 있어요"라고 허락하는 거예요.
제가 귀여운 오리 캐릭터를 그렸다고 가정해 볼까요?
- A출판사에 웹툰 연재용으로 사용 허락
- B광고회사에 SNS 마케팅용으로 사용 허락
- C굿즈업체에 스티커 제작용으로 사용 허락
같은 그림으로 이렇게 여러 곳에 동시에 사용하는 것을 허락할 수 있습니다. 저작권은 여전히 제 것이므로 각 업체는 계약에서 정한 용도와 기간, 지역 범위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요. 계약 기간이 끝나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고, 계약 내용을 위반하면 계약을 해지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
라이선스는 "독점 라이선스"와 "비독점 라이선스"로 나뉩니다. 독점 라이선스는 그 기간 동안 다른 누구에게도 같은 용도로 허락할 수 없다는 뜻이에요. 비독점 라이선스는 여러 곳에 동시에 허락할 수 있고요.
예를 들어 제 오리 캐릭터를 D기업에 광고 전용 독점 라이선스로 계약했다면, 계약 기간 동안 다른 회사 광고에는 그 캐릭터를 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출판이나 굿즈는 여전히 다른 곳과 계약할 수 있어요.
양도 계약은 저작권 자체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거예요. 물건을 팔면 더 이상 제 것이 아니어서 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죠? 저작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오리 캐릭터의 저작권을 E회사에 양도했다고 해볼까요? 이제 오리 캐릭터의 저작권자는 E회사입니다. 저는 더 이상 그 캐릭터를 사용할 수 없어요. 다른 회사와 라이선스 계약도 할 수 없고, E회사의 허락 없이는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어요.
물론 양도 계약에서도 조건과 범위를 정할 수 있어요. "양도 후에도 포트폴리오 용도로는 사용 가능하다" 같은 단서 조항을 넣을 수 있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양도는 권리의 이전, 계약 상대에게 넘어간 것이라는 점, 기억해야 합니다.
계약서에는 '라이선스 계약', '양도 계약'이라는 표현 대신 다음과 같은 문구가 표시될 수 있어요. 계약서 문구를 확인하고 라인선스 계약인지, 양도 계약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라이선스 계약에는 이런 표현이 있을 수 있어요.
- 사용을 허락한다
- ○○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 계약 기간은 ○년이다
- 계약 종료 후 사용 중지
양도 계약에는 이런 표현을 쓸 수 있어요.
- 저작재산권을 양도한다
- 저작권을 이전한다
- 모든 권리를 귀속시킨다
- 저작권자는 ○○이 된다
라이선스와 양도는 내용이 다르므로 대가도 다르겠죠?
라이선스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 사용을 허락하는 것이므로 그에 맞는 금액을 받으면 됩니다. 웹툰 1년 연재 라이선스라면 1년 치 사용료, SNS 3개월 사용 라이선스라면 3개월치 사용료를 받는 방식입니다.
양도는 달라요. 저작권 자체를 넘기는 거니까 보통 더 큰 금액을 받아야겠죠? 제가 오리 그림으로 미래에 벌 수 있었을 모든 수익을 포기하는 셈이니까요. 일반적으로 양도 계약은 라이선스 계약보다 몇 배에서 수십 배 높은 금액으로 책정됩니다.
만약 "저작권은 회사가 가져가고, 금액은 삽화 단가로 하겠습니다"라는 제안을 받는다면 바로 허락하지 말고 고민을 해 보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계약서 없이 구두로만 약속하고 작업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원칙적으로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있어요. 별도 계약이 없다면 클라이언트는 약속한 용도와 범위 내에서만 사용 허락을 받은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실제로 분쟁이 생기면 입증하기가 어려울 경우도 있어요.
저작권을 양도할 생각이 아니라면 간단하게라도 "이 그림은 ○○ 용도로 ○연간 사용 가능하며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음"이라고 명시된 계약을 하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내 작품을 활용할 기회가 생겼다면 라이선스와 양도, 명확히 구분하고 본인에게 맞는 계약 방식을 선택하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작업을 하는 것만큼 작품을 잘 활용하기 위해 계약서를 잘 쓰는 것도 작가에게 중요한 일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