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猪猪

by 영지

초등학교 때 잠시 친했던 친구가 꿈에 나왔다. 나는 늘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거나 망쳐버리는 식이어서 마무리가 좋았던 관계는 거의 없는데 이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살면서 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꿈에서 깨고 나니까 어떻게 사나 궁금했다.

전날 커튼 치는 걸 깜빡해서 창문 밖으론 파란 하늘과 구름이 보였고 머리가 맑았다. 나른했고 밤부터 켜져 있던 전기장판은 따뜻했다. 일어났을 때 자주 들던 껄끄러운 느낌은 들지 않았고 마음보단 기분이 뭉근했다. 눈을 떴을 때 이런 상태일 수가 있나? 신기하기도 했다. 어딘가를 다녀온 뒤에 집에 와 침대에 누워있다가 창밖을 봤을 때 여전히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는 기분이 어떻게 아침에 눈떴는데 들 수 있는 거지.

꿈 내용은 걔가 날 좋아했다.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지 헷갈렸다고 했고 나를 좋아하면서 쓴 일기장을 나한테 줬다. 일상은 찢어진 채로 나만 있는 일기장이었다. 제일 앞의 두장이 24년이었고 뒤로 갈수록 옛날이었다.

꿈에서 어른이 된 걔는 졸업식날 큰 도화지 여러 장에 그림을 그려왔다. 공무원이 됐다는 걔는 그것도 내 거라고 했다. 레이스로 된 롱스커트에 타이즈를 입고 있던 그 애. 어렸을 때도 키가 컸었는데 꿈에서도 여전히 키가 큰 걔는 다리도 긴지 타이즈가 복숭아뼈 위까지 왔다.

어떤 꿈은 나를 묶어두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얼마 전엔 세상이 정말 좁고, 사람이란 알 수 없는 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걸 알았는데 거의 십 년 만에 만난 a는 나를 떠올리며 작은 애 얘기를 했다.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작은 애라고 했다. 그때 네가 친했던 애. 자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냥 내가 친하니까 같이 다녔다고 했다. 그러다 내가 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듣고 뻥치지 말랬는데 내가 여러 번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했다. 정말 친했고 주고받은 편지가 아직도 상자에 한가득인데 그랬다. 나는 늘 약았고 못됐다. 받은 사랑에 보답할 줄 모르고 부담스러워했고 누군가 나를 좋아해 주는 건 당연했다. 너무 많은 순간을 쉽게 여겼고 지나쳤고 내가 뭐라도 된 줄 알고 얕보고 우쭐거렸다. 모든 게 우습다.

욕구불만인지 애정결핍인지 한동안 이런 꿈을 꾼 적이 잦았다. 친구가 나온 꿈은 연장선으로 다른 사람이 또 나왔다. 유지민이(카리나가) 수영선수였는데 경기에서 이기자마자 나한테 달려와서 입을 맞췄다. 근데 달려왔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나는 내가 물속이라고 생각했다. 물에 젖은 입이 축축해서 그랬을 수도 내가 걔를 안아서 그랬을 수도. 그래도 그렇지 내가 어디 있는지 헷갈린다니. 그래도 도무지 내가 어디 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친구는 꿈에서 다시 메인으로 돌아왔다. 다닌 적 없는 교실에서 의자와 책상을 뒤로 밀고 게임을 했다. 우리 팀이 이겨서 케이크를 먹었는데 나는 포크가 없어서 누가 쓰던걸 썼다. 그걸 본 친구가 그거 어떤 애가 쓰던 거 아니냐고 했다. 나는 내가 써서 괜찮다고 했다. 그러더니 걔는 웃다가 내 걸 가져가서 썼다. 쓰지 말라고 가져간 건지는 잘 모르겠다.

정신상태가 어떻게 된 건지 머릿속은 온통 망상뿐이다. 다시 볼 일 없는 친구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데 오랜만에 봐서 앞으로도 계속 볼 일이 있을 거 같은 애는 친구 소리가 잘 안 나온다.

누군가와 인연을 맺고 같은 기억을 나눈 거에 잠시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짧은 시간도 아니고 잠깐이나 잠시 같은 말은 나를 너무 매몰차게 밀어붙인다. 별거 아니었던 시간이라고 말하는 거 같고 모든 건 그렇게 흘러가버린다고 말하는 거 같아서 싫은 거 같다. 그게 나라는 인간이 돼먹은 정도를 말하는 거 같기도 해서 짜증 난다. 그렇지만 나도 이미 잘 알고 있는 건 모든 게 사실이라는 거고 나는 내가 많이 바뀌고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뭐가 바뀌고 변했는지 잘 모르겠다는 거다. 싫은 기분이 들면 내치거나 내게서 제외시키고 밀어내는 건 정말 싫지만 여전히 발견된다.

한때는 괜찮은 사람이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 보면 모순이다. 우월감을 느끼려들지 않았다는 건 알아도 괜찮다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내 안에서 이뤄지는 거라서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괜찮을 사람을 나눴다. 기고만장한 마음이 한없이 꺾였으면 좋겠다. 술을 먹고 불쑥 집에 와 초딩이었던 내게 자만하지 말라던 할아버지의 말이 상처였던 것도 사실은 저격당해서 그랬던 거 같다. 나한테는 언제나 그래도 되는 사람과 그러면 안 되는 사람이 있었고 누군가에 대해 오래 생각한 적이 없었다. 수저를 놓을 때도 가장 먼저 내 것을 챙기는 게 꼴 보기 싫었다. 이제는 의식적으로 내 것을 가장 나중에 챙긴다.

미끈한 것들을 모두 걷어내서 푸석하고 미지근해지고 싶다. 별 볼일 없는데 내가 뭐라도 된 줄 알아서 기가 막힌다. 받은 건 오로지 내 것이라고 여기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주는 마음이 더 귀한 걸 아는 게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거리 같아서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도태되지 않고 원만한 학교 생활을 한 것에 있어서 징하다고 해야 될지 머리가 아프다.

잘 보는 사람이고 싶다. 볼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융통성 없이 굴지 말고 나아지기 위해서 노력했던 것처럼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점을 낫게 하기 위해서 낫지 않을걸 알아도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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