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별에는 이유가 있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 이유란 어쩌면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작은 핑계일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결국 혼자 감당해야 할 고독의 무게가 너무 커서,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면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사랑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처럼 우리가 도망쳐야 했던 것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언젠가는 하늘을 날 것처럼 가슴을 뛰게 했던 꿈과 이상도 있었고,
시간이 흐르며 어깨를 짓눌렀던 책임들도 있죠.
한때 뜨겁게 불타오르다가 이내 식어버린 격렬한 감정도 우리를 멈추게 만들곤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도망치며,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고,
조금 가벼워진 채로 다음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그러나 삶은 그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멈추지 않는 항해처럼, 우리는 바람에 떠밀려 또 다른 바다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뒤돌아보면 어디 하나 미련이 남지 않은 곳은 없고,
버거운 짐을 내려놓고도 마음은 쉽사리 가벼워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부디 우리가 떠나온 모든 것들에 축복이 있기를.
놓아야 했던 마음들, 감당할 수 없었던 무게들,
그리고 그 속에서 부족했던 우리의 용기조차도
시간이 너그러이 용서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등지고 떠날 수밖에 없는 이 삶의 뒷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더라도, 지나치게 누추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