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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Feb 20. 2024

아무도 아무가 아니다.

토지 1부 2권, 통권 2권


토지에는 평면적인 인물이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느 면에서는 선하고 어느 정도는 비열한 모습을 지니듯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아닌, 태어나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생래적 욕망과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섞여 들어 한 개인이 존재하듯 토지 속 인물들도 그러하다. 


윤 씨 부인은 아들'들'의 고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 어느 아들도 선택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다.  어미로써의 의무도 사랑도 다 박탈당하고 평생 스스로 가두고 거리를 둔다. 드러낼 수 없는 고통이 내내 어두운 바닥을 채우고 있다. 누가 그 마음을 알아줬을까. 스스로를 유배시킨 사람의 고독을 누가 이해했을까. 간난할매가 겨우 얼마쯤 이해했을까. 


최치수에게 남은 열망은 무엇이었을까. 성정이 비뚤어진 것은 아무래도 어머니의 비밀을 눈치채고 난 이후이다. 그렇게 사랑했던 어머니가 영신의 힘이 부족해 절로 가시자 원망하는 마음에 어린 치수는 월선네를 구박한다. 희미하던 의문점들이 외면하고 싶어도 하나하나 자리를 찾아 줄을 서고, 최치수는 본인 스스로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몸을 함부로 한다. 


어떤 의미로는 최치수의 고민은 현대적이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롭고,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본인 앞에 던져진 질문에서 시작해 근원적인 질문으로 다가가는 모양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원망, 구천이에 대한 의심과 아내의 불륜이 하나의 궤를 그리고 서서히 퍼즐을 맞춰나가자 최치수는 광기 어린 냉정에 가까워졌다. 어찌할 수 없는 유교적 바탕은 부정하고 싶었으나 스스로를 옭아매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귀녀의 선택은 그야말로 현대적이다.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은 최치수의 아들을 낳아 소실이 되는 것. 귀녀가 처한 현실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다.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 위를 향한 욕망, 귀녀는 비극적으로 능동적이다. 이름만 귀녀인, 귀하지 못한 처지를 스스로 귀하게 하고 싶은 욕망은 처녀를 움직이게 한다. 당시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인물이다.  


토지는 거대한 비극으로 서서히 들어서고 있다. 어머니의 비밀을 쫓아 구천이와 도망친 아내를 사냥하러 나서는 최치수의 굴절된 욕망, 종으로 태어난 신분을 벗어나고 싶은 귀녀의 전복적인 욕망, 그토록 소중한 양반으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져버린 김평산의 더러운 욕심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누구의 이야기도 쉬이 흘려보낼 수 없다. 촘촘하게 자기 자리를 열심히 살고 있는 토지 속 인물들의 매일이 그저 궁금하다. 그 매일이 우리의 지난 역사 속 한 장면으로 계속 살아난다. 분명히 소설인데 자꾸 그 사실을 잊는다. 중요한 누군가가 아니라도 한 시대를 구성하는 한 사람으로서 존재감이 이렇게 거대한 것인가 자꾸 생각하게 된다. 세상을 구성하고 존재하는 지금, 흐름을 살아가는 그저 익명의 존재인 나를 되새기듯이 토지 속 사람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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