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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Feb 23. 2024

구천이와 별당 아씨

토지 1부 3권, 통권 3권


오월 중순이 지나서 귀녀는 옥 속에서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여자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죽었다. 23p.


귀녀가 죄를 지었어도 세상이 자신을 비난할 걸 알면서도 옥바라지를 자처한 강포수. 귀녀는 죽기 전 강포수에게 마음을 보인다. 강포수의 아낙이 되어 살 것을 하고 운다. 강포수의 진심이 닿아 귀녀는 모든 집착과 원망을 내려두고 죽는다.  강청댁이 말 그대로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고, 임이네가 덜컥 애를 가져버렸는데도 용이는 월선이를 잊지 못한다. 어찌 되었든 강포수와 귀녀도, 용이와 월선이도 나름의 이야기가 있다. 내내 마음이 닿는 건 구천이와 별당아씨다. 이번 주 읽을 분량에서 이들의 언급은 없는 셈이다. 서희가 삼년상을 벗고, 임이네가 마을로 돌아오고, 조준구는 한껏 욕심을 부풀려 홍 씨와 아들을 데리고 평사리로 들어선다. 


구천이와 달아난 아내를 사냥하러 떠나는 최치수를 윤 씨 부인은 그저 묵묵히 바라볼 수밖에 없다. 달아난 구천이도 아들이요, 사냥이 심신단련에 좋을 것 같다 칼을 들이미는 최치수도 아들이다. 서슬 퍼런 모자의 살얼음을 딛고 선 대화는 이미 선명한데 앞을 가릴 뿐이다. 어느 아들의 손도 들어줄 수 없던 윤 씨 부인의 먹먹함과 어머니의 비밀과 아내의 부정을 한 줄로 꿰어 손에 쥔 최치수. 각자의 서사는 뒤로 한 발 물릴 수 없이 치열하다. 


아무리 곰곰 생각해 봐도 구천이와 별당 아씨의 둘 사이의 이야기는 없다. 하물며 별당 아씨는 이름도 없다. 그저 별당 아씨, 서희 어머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광에 갇히고 달아난 데서 시작한다. 신분도 자식도 다 버리고 따라나설 만큼 각별한 아씨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둘은 달아났고 피폐한 삶을 살고 아씨는 병이 들었다. 최치수에게 잡혀 죽을 고비도 넘긴다. 서사가 없는 두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과정이 없는 두 사람의 감정이 자꾸 맘이 쓰인다.  


반상의 법도가 엄격하고, 둘은 어찌 되었든 불륜이고, 심지어 사대부댁 아씨가 하인과 도망을 쳤으니 잡힌다면 멍석말이해 때려죽여도 할 말이 없는 일이다. 최치수의 사냥을 누구도 말릴 수 없었던 것처럼. 둘은 어떻게 만났을까. 아씨는 어쩌다 하인인 구천 이에게 마음을 내 준 것일까. 밤이면 잠들지 못한 채 산을 누비는 구천이를 생각해 본다. 어머니를 찾아 최참판 댁으로 찾아든 구천이는 어떤 생각으로 아씨를 마음에 담았을까. 어쨌든 낳아주고 다른 성의 집안으로 받아준 어머니를 배신하고, 이복형 마저 배신한 구천이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나.


작가님은 둘의 이야기를 어떻게 구상하고 도망친 둘을 쓰신 걸까. 구천이를 꽤나 안타까워하며 마음을 주고 글을 쓰신 것 같다. 답답한 마음에 여쭤보고 싶다. 논문이라도 찾아봐야 할까. 아무리 머릿속으로 궁리를 하고 둘 사이를 상상해 봐도 둘의 이야기는 거대한 맥락을 앞에 둔 토지 속 외전이다. 둘의 서사가 앞으로 나서기에는 이야기의 흐름이 틀어지고 말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꼬리를 물 듯 왜? 어떻게? 안타까워 마음을 기울이듯 둘을 생각해 본다.


사랑은 가끔 생각과 궤를 같이 하지 않는다. 마음이 그러한 것을 머리가 어떻게 설득해 낼 것인가. 인과가 맞지 않아도, 길이 구부러지고 물이 거꾸로 흐른다 해도 결국, 사랑도 사람의 일이다. 자꾸 저 두 사람이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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