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주씨 Feb 24. 2024

토지 오행시

토지 1부 3권, 통권 3권


죽음은 허망한 것이었다. 김서방이 시작이었다. 물을 끓여 먹고 위생을 신경 쓰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조준구는 알리지 않았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가. 죽음 앞에서 살아날 방도를 혼자 숨기고 숨죽이는 존재가 과연 인간일까. 하긴 조준구는 최치수의 약점을 흘리고 서울로 도망갔었다. 비겁하고 비열한 자. 어린 서희의 숨통을 틀어막고 앉아 굴러온 돌이 집안을 야금야금 차지해 간다. 생겨먹기가 비열하니 꼽추 자식을 얻은 것은 천벌이다 소리를 되씹게 된다. 장애가 누군가에게 천형이다 생각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도덕적 잣대에 빗대어서도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홍 씨와 조준구의 행태를 보자면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생각과 말이 절로 입 밖으로 뛰쳐나온다.


한편 최참판댁에서는 김서방이 죽은 뒤 돌이와 봉순네는 동시에 발병하여 죽었다. 그다음의 희생자는 윤 씨 부인이었다. 247p.


죽음은 너무도 허망한 것이었다. 할미꽃을 쥐고 용이에게 다가서던 순정의 시절이 있었던 강청댁도 역병에 지고, 어린 서희를 지켜주던 봉순네도 가고, 앞으로를 장담할 수 없는 윤 씨 부인도 죽는다. 죽음은 역병을 등에 업고 들이닥쳐 차례로 사람들을 데려갔다. 누구도 역병을 피해 가지 못했다. 어린 서희와 봉순이, 길상이도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다. 안타까워 말 문이 막혔다. 저렇게 셋 만 오종종 남아 어쩌나.


서희의 서러움과 집념은 자라난다. 악을 쓰며 엄마를 데려오라 외치던 서희의 성격은 차례로 이어진 사건과 죽음들 사이에서 단단해진다. 열 살 남 짓 아이가 홀로 남아 버틸 수 있는 무거움이 아니다. 봉순이와 길상이가 곁에서 버티고 서서 얼마나 다행인가. 아니다. 서희, 봉순이, 길상이 셋은 서로서로의 버팀목이다. 엄마를 잃은 봉순이의 서러움도, 홀로 흘러와 홀로 자라난 길상이의 마음도 셋은 서로 기대어 지금을 버티고 있다. 생각해 보면 셋의 인생이 이렇게 엮여 자라나니 내일의 모습도 서로 자유로울 수는 없겠구나. 반상의 법도가 있다한들 고독한 한 때를 기대어 자란 마음은 외부적 조건들을 다 건너뛰어 넘을 수밖에 없겠구나.


시간 앞에 쏟아지는 죽음들은 엄청난 속도감으로 다가왔다. 서사 없이 ‘죽었다’ 하는 표현으로 많은 죽음들이 숨죽여 떠나갔다. 개별적 죽음을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역병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얼마나 혼란한 것이었는지를 소리 죽여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실존하는 세계 속 개별적 인물의 세계는 존재로써 홀로 온전하고 전부이다. 그러나 그 세계가 얽혀 굴러가는 우주 안에서 개별적 세계는 얼마나 먼지 같은가. 자꾸 아득해지려고 한다. 잊지 말자, 소설이다.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가올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숨 가다듬고 이야기를 따라가자. 작가님은 이 세계를 어떻게 구성하고 옮겨놓으셨는가. 홀로 짊어진 무게가 너무 무거우셨을 것 같다.


토 : 토지를 읽을수록 자꾸 소설임을 잊는다.

지 : 지금의 상황과 왜 자꾸 겹쳐 보이는가.

박 : 박경리 선생님은 이 무게를 이기고 쓰셨는데, 나는 읽기만 해도 이리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다.

경 :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은 공감하는 마음이다. 토지 속 인물들에게 얼마나 마음을 주었나.

리 : 리(이)해하고 다가갈수록 마음이 자꾸 커진다. 이미 사랑하는 사람들의 내일을 힘주어 응원한다. 토지는 이미 내 안에 존재하는 한 세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구천이와 별당 아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