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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Feb 25. 2024

을사늑약은 현재형이다.

토지 1부 4권, 통권 4권

토지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토지 읽기 감상문으로 매주 쓴 글입니다.

실시간 시점에서 벗어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토지를 읽으며 어찌할 수 없이 견뎌야 하는 을사보호조약.

일본에 빌붙은 자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합리화하는 논리를 조준구를 통해 마주하게 된다. 조준구는 지배층이다. 그저 양반으로 태어나 일생을 권력을 쥔 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살아왔다. 조준구도 할 말이 있다. 쇠락한 양반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것과 매한가지다. 일본 쪽으로 줄을 대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는 것도, 비열한 수법으로 최치수를 제거하고 최참판댁의 재산을 빼앗는데도 나름의 논리적 맥락이 작용한다. 글을 배운다는 것이 곧 권력이던 시절이다. 배움이 이렇게 더럽혀져도 세상이 굴러간다는 사실에 환멸 하게 된다. 배우고도 스스로의 이득만을 위해 배움을 악용하는 자들의 비열함은 기어이 나라를 팔아먹는 지경에 이른다.


앞장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서 자신의 권력을 내세워하는 일이 나라를 파는 일이라니. 비분강개는 양반의 전유물이 아니다. 땅을 하늘 삼아 살아가는 이 땅의 농민도, 천대받는 사당패, 백정도 불합리한 상황 앞에 나라를 걱정한다. 내가 살아가는 터전이 일부 권력자들에 의해 나라가 이름을 달리하고,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결정을 내 의사에 반해 그저 속수무책 당해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다. 저들의 윤리는 나의 이익이다.


기어이 일본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적극적인 묵인으로 저들의 손을 들어주고 옹호하고 지지한다. 이 치욕을 눈뜨고 보게 될 줄 몰랐다. 이 땅의 사람으로 태어나 가져야 할 기본적인 윤리가 결여된 자가 권력을 쥐고 이 땅의 사람들을 배반하다. 저들의 조국은 일본인가? 을사보호조약을 읽어내는 치욕을 지금 고스란히 겪고 있다. 역사의 현장에서 견뎌낸 침략이 물리적이었다면 지금의 침략은 더 교묘하고 정치적이다. 무슨 말을 덧붙이겠는가. 우리 대통령이 핵 오염수 방류에 협조하고 비판하는 자국민들을 불순세력을 매도하고 있다. 저들에게는 역사도 배움도 다 자신들이 이익을 해치는 걸림돌일 뿐이다. 더럽다. 쌍시옷이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만 차마 글씨로 남길 수 없다.


조준구의 입으로 전해지는 친일파들의 행적도 역겹다. 그래서 당대에 이룬 재물과 권력을 자식에 물려주고 일제 강점기가 영원하리라고 믿었는가. 고작 재물 따위에 영혼을 팔고 생이 자유로운가. 내 하나의 욕망이 우리를 저버린 걸을 왜 모르는가. 하긴 이런 소리가 들리고, 생각에 영향을 끼친다면 감히, 내 나라와 내 땅을 저버리는 행동을 저리 쉽게 할까. 저들의 논리는 비열하게 교묘하고 견고하게 정치적 영역으로 파고들어 입지를 넓혀간다.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김좌진 장군 흉상을 철거하자는 얘기까지 나오게 말이다. 이념의 대리전장에서 내 나라를 더럽힌 친일파를 단죄하지 못한 원한이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억세게 운좋게 살아남아 자신들의 부를 대물림하고 기어이 자신들의 논리를 물 위로 끌어올린다. 내 나라를 팔자는 우파가 어디에 있나. 언어는 더럽혀지고 악용당했다.


지금의 상황이 토지 속 인물들이 겪어야 했던 상황과 뭐가 다를까. 지금 토지를 읽고 있다는 사실이 뼈아프다. 지나간 역사의 한 폭을 떼어와 그 시절의 그곳을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설을 현재로 치환해 받아들이고야 마는 현실이 믿을 수 없다.


옛날의 난리하고는 달라서 생이 틀만 한 대포를 끌고 댕기믄시로 싸움을 하는 판국이니 아 철함도 깨부리고 산도 무너티린다 카는데, 어디 간다고 사까? 목심을 하늘에 맽길 수밖에. 우리사 살 만큼 살았다마는 어린것들이 불쌍하제. 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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