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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Feb 26. 2024

떠남과 시작

토지 1부 4권, 통권 4권


서희가 평사리를 떠난다. 의병난간 무리가 돌아와 읍내 이부사댁을 거점으로 두패로 나뉘어 부산에서 만나자 약속을 했다. 할머니 윤씨부인이 농발 대신 괴어놓은 은이 요긴하게 쓰여 다행이고 불행이다. 서희는 몸 안에 차곡차곡 다 쌓아두었다. 예민하고 영민한 아이는 고난을 겪으며 단단하게 자랐다. 시대가 어렵고 여자로 살기 고단한 시절이었으나 서희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결심한다.   


번화하고 낯선 밤거리에서 바람이 불었다. 떠나기 전에 머리를 깍겠다고 나선 길상의 눈에 불빛이 아물거린다.

‘봉순아!’

두 뺨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낯선 거리에는 찝찔한 바닷바람이 분다. 419p.


서희는 봉순이의 행방을 묻지 않았고, 길상이는 머리를 깎는다. 떠남과 헤어짐을 동시에 결심한 봉순이는 타고난 재능을 쫓아 자신의 행로를 마음먹은 것일까. 길상이가 제 짝이라 생각했던 봉순이는 길상이의 마음을 눈치채고 간도로 가지 않을 결심을 했다. 오종종 기대어 자라온 아이들은 이제 청년기를 맞이하고, 헤어진다. 신분은 달랐으나 고난 속에 서로를 의지하던 셋은 어찌 되려나.


경상도 하동 하고도 평사리.

평생을 살아온 터를 뒤로하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나무를 옮겨 심으면 제대로 뿌리내리고 살아가기가 어렵다고 한다. 저 당시의 떠남은 나무의 옮겨심기만큼 어려운 건 아니었을까.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만 한 무게로 다가왔을까. 살 수 없어 떠나지만 옮겨간 터에서의 삶도 장담할 수 없다. 바닥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충격을 딛고 어떻게 살아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지키기 위해 떠나는 것은 얼마나 고단한가.

돌아올 다짐을 가슴에 품는다는 건 얼마나 고독한가.


서희 일행은 각자의 인생을 걸고 머나먼 간도로 떠난다. 페이지를 달리할 준비를 앞에 두고 있다. 각자의 인생이 얽혀 들어 내일의 방향은 아무도 알 수 없다.


휘몰아치듯 달려온 여정이 큰 마침표를 찍는 순간, 토지 1부가 끝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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