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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Mar 02. 2024

아이고 봉순아!

토지 2부 3권, 통권 7권 


봉순이는 기어이 기생이 되었다. 하동에서 물어물어 찾아온 이상현을 만나고 운다. 홀로 가마를 타고 떠나와 사연 많았을 세월을 앞에 두고 봉순이는 울었다. 석이 어매를 붙잡고 한없이 운다. 서럽지 않은 날들이 얼마나 되었을까. 비단옷을 입었으나 처지는 기구하다. 세상 사 맺힌데 없이 의지도 없이 흘러가듯 살아가는 날들의 봉순이. 뿌리를 잃은 사람의 살아가는 모양이 그러할까. 멀리 간도에서 자신의 위치를 두고 갈등하는 길상이의 모양새가 봉순이와 결은 같은 것이 아닐까. 둘은 기어이 얼마쯤 닮아 있기도 하다. 


김두수의 악행은 점점 더 보기 싫고, 조선 땅에 남은 사람들의 처지는 날로 고약하다. 간도에서 살아가는 이주민들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동학당은 내부에서 여러 잡음이 나오기도 한다. 나라를 잃은 사람들의 매일이 쉽지 않다. 희망이라는 걸 가져도 될까? 밥이 전부는 아니지만 하루를 살고 밥을 굶지 않는 것을 희망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면 조금은 나아진 내일이 나타나기는 하는 걸까. 마른 세수를 하며 갑갑한 마음을 견뎌본다.


지난 주 여기까지 쓰고 어쩐지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말 문이 막힌 기분이었다.  결국 7권에서는 봉순이가 제일 서럽고 마음에 걸렸던가보다. 봉순이 얘기를 두고 다른 얘기를 할 수 없다. 


마음이 맺힌 자리는 종종 닻처럼 뿌리대신 사람을 잡아주는 구실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흔들릴 때 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캄캄한 물길 속에 휩싸여 부표처럼 파도에 부대껴도 내 나아갈 방향을 향해 잠시 숨고르는 지금을 위한 표식일수도 있지 않을까. 서희의 집념은 결국 서희를 키우고 가르치고 버티게 하듯이. 저 멀고 먼 다음 다음에 봉순이의 날들이 쓰리고 아리다. 당신의 현재를 믿어보지 그랬냐고, 차라리 소리에 뿌리를 내리지 그랬냐고. 사람에 뿌리내리는거 아니라고, 사이가 흩어지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사람의 마음에 닻을 내리지 말라고. 그러나 말해 뭐하나. 나도 그러지 못하는 걸.


봉순이가 돌아왔다. 아니다. 셋이 모여 있던 평사리가 아니니 돌아왔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멀고 먼 간도에서 이제는 부부가 된 서희와 길상을 마주하는 봉순이는 돌아갈 곳을 잃은 채 그저 사람을 향해 온 것이다.


모두 외양은 평이했다. 다 같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 않았다. 대결도 냉전도 아니었다. 미움은 물론 아니었다. 옛날 상태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세 사람의 노력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자기 감정에 가장 냉혹한 사람은 최서희였다. 199p. 


서희는 봉순아! 하고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누른다. 그저 ‘그리운 정을 손아귀 속에서 뭉개버린다.’116p. 오래된 권위의식이 어릴 적 동무를 대하듯 그리워 이는 마음을 누른다. 나는 최참판댁 유일무이한 핏줄이고, 돌아가 조준구에게 복수를 해야한다. 길상이와 혼인을 했지만 내 위치가 흔들리는 일은 아니다. 권위를 앞세워 불같이 일어나는 감정을 잠재워 숨긴다. 


‘아아 애기씬 혼인을 했구나, 길상이하고......’

시새움도 일지 않았고 그리움도 사라진다. 여태껏 만나본 일이 없는 타인이 손을 내어 밀었다. 118p.


봉순이는 나름의 얼굴을 내세운다. 그 시절의 서회와 봉순이, 길상이는 없다. 침착한 얼굴로 맞이하는 어른 최서희와 기화, 길서상회의 바깥주인 김길상이다. 마음 안에 맺힌 말들을 미처 다 하지 못한다. 어디쯤 가 닿은 마음들이 혼자 속으로 이름을 부르듯 외치면 어디쯤 서 있는 다른 목소리가 혼자 부르다 대답하듯 그저 마음으로 짐작한다. 대화는 차마 가장 여린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다. 보고 싶었다 말하지 않는다. 


봉순이는 홀로 떨어져 나와 어디로 흘러가 고독한 한 시절을 버텼을까. 서희에게는 길상이가, 월선아지매가 있었고, 같이 길을 떠난 사람들이 있었다. 혼자 버텨야할 무게가 만만치는 않지만, 속내를 드러낼 수 없이 고독했다지만 그래도 곁에 사람이 있었다. ‘기생이 되었다’하고 여섯 글자로 마무리하기에는 봉순이의 세월이 너무 고단하다. 어린 여자아이가 타고난 재능 하나만 믿고 혼자 살아갈 결심을 하고, 해낸다. 쏟아지는 기생이 되었다 하는 바깥 이야기들을 곁눈질하며 봉순이에서 기생 기화가 되어갔을 시간의 아득함을 그저 마음으로 쫓아본다. 


그래서 기어어 마주한 세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어찌 살았냐 하는 서럽고 다정한 안부는 아마도 마음 안에서만 주고받았겠지. 말을 꼭 해야 대화가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만 묻어야 할 말을 골라두고, 달려 나오는 감정을 거르고 나면, 입 밖으로 걸어 나올 말은 얼마나 남루할까. 어색한 미소마저 거두고 그저 덤덤하게 지금의 모습으로 안부를 대신할까. 어색하게 둘러앉은 세 사람을 상상만 해도 어쩐지 가슴에 찬바람이 들이친다. 살아서 이렇게 만나 다행이라고, 그간 고생했다고 애기씨도 길상이도 고생 많았다 그런 말들을 다 꾹꾹 누르고 점잖게 선을 두고 바라보며 표정마저 숨기고 덤덤하게. 


내가 서러워서 안 되겠다. 


아이고 봉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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