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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Mar 01. 2024

내 처 될 사람이오.

토지 2부 2권, 통권 6권

길상이와 서희의 선택이 전복적이고 혁명적이다 하고선 제대로 문장이 나아가지 못했었다.

둘의 이야기는 전복적이고 혁명적인데 그게 전부는 아니니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구렁이 담 넘듯 스르르 그렇게. 2주분량으로 나뉘어진 6권은 하나로 길게 이어져야했다.



길상이는 갈등한다. 멀리 떠나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은 어느샌가 약한 것을 거두고 세상만사를 귀히 여기는 마음으로 닿았다. 길상이 안에 곱고 귀한 갈래는 그러나 아직 거기까지다. 머리를 깎고 간도를 온 시점부터 지금까지 서희의 사업을 최선을 다해 도왔다. 사업은 본 궤도에 올랐고 서희의 부는 평사리로 돌아가겠다는 집념만큼 불어난다. 길상이는 떠날 수도 없고 머무를 수도 없는 마음으로 서희 곁에 머문다.  좋은 혼처가 나섰으나 거절했고 서희를 향한 스스로도 부정했던 마음을 인정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신분의 벽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나라가 망하고 간도까지 떠나왔어도 쉬이 인정할 수 없는 거리감. 봉순이 손을 놓고서도 차마 닿을 수 없다. 스스로를 부정하듯 옥이네와 살림 아닌 살림도 차려보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본시 종은 아니지만 절에서 흘러와 스스로 길러진 아이는 근본을 알 수 없다. 태생적 한계를 부정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던 길상이는 그저 맴돌 듯 머문다. 서희를 주인댁 애기씨 라고 거리를 두기에는 처연한 사연으로 한 몸처럼 오래도록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마음을 움직이게 한 건 서희였다.


곁가지를 다 거두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둘은 사랑이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이다. 서희가 번듯하게 양친 아래 평사리에 계속 살았다면 어느 양반댁으로 곱게 시집가고, 길상이는 최치수의 배려로 새로운 신식공부를 하러 떠났을지도 모른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서로 뿐인 둘이 이어지는 일이 지금은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둘은 선택은 나라가 망해야 실현가능한 일이었다. 절대 접점이 없었을 둘의 선택은 전복적이고 혁명적이다.


“내 처 될 사람이오.” 144p.


길상이가 드디어 마음을 인정한 순간을 보았다. 회령 여관집에서 길상이와 도망갈 생각까지 했다는 서희를 보고서도 길상이는 마음을 정할 수 없었다. 자신의 처지가 결국은 걸림돌이었을까. 서희가 결혼상대로 자신을 염두에 둔 것은 떠나왔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나, 스스로 소리 내 말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6권의 다른 갈래들도 마음을 거둘 수는 없지만 결국은 둘의 이야기로 몰입한다.  


꿈속의 귀마동을 다시 읽으며 길상이의 마음을 되짚어 본다. 죽은 여인은 별당아씨, 돌아오지 않은 말을 타고 간 사내는 구천이다. 길상이는 혼자서라도 말을 타고 강을 건너보겠다고 꿈을 통해 결심을 구체화했다. 그 땅에 살 수 없어 간도까지 떠나왔지만 서희를 떠나려고 했다면 떠났을 수도, 혼처를 얻어 결혼을 했을 수도 있었지만 길상이는 계속 서희 곁에 머무르고 있었다. 서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이 스스로의 처지와 나라는 망했어도 살아있는 반상의 법도를 이기고 마음을 먹게 한다.


서희의 결심은 평사리로 돌아가 집과 땅을 되찾고 조준구에게 복수를 하는 것. 멀리 간도까지 와서 부를 일구고 버티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결혼이 당연한 시절이다. 혼자 몸으로 살 수 없는 시대의 여자가 집념을 가졌다고 해서 피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희는 선택해야 했다. 어쩌면 곁에 있는 길상이와 혼인을 결심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흐름인지도 모른다. 이미 사업의 외부활동을 맡아서 하고 있던 길상이는 자신의 의지를 펼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자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이다. 길상이는 최적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것뿐이었을까.


마음에 두었다고 인연이 이어지고, 자유연애가 가능한 시대가 아니었다. 봉순이가 끝내 간도행을 포기하게 만든 건 길상이의 마음에 서희가 담긴 것을 알아서다. 서희가 옥이네를 보기 위해 회령까지 간 것은 길상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자신의 의지를 다 내려놓고 도망갈 생각까지 했다며 우는 서희의 마음을 생각해 봤다. 본인도 그 집념이 쉽지는 않다. 그 무게가 고단한 마음을 언뜻이라도 보일 수 있는 상대는 길상이 뿐이다. 서로는 서로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다.


사랑은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다. 첫 마음을 못 잊어 평생을 이어오는 용이와 월선이가 있고, 혼자 살아남아 제대로 땅에 발을 붙이고 살 수 없는 구천이도 있다. 기어이 자신의 생각을 실현해 내고 마는 서희와 매끄럽지 못했지만 서희의 곁을 지키겠다고 마음먹은 길상이도 사랑이다. 사랑이 관계 안에서 어떤 모양새를 가지는 지는 노래 가사처럼 둘만 아는 일이다.


시대가 어떻고, 시절이 어떻든 사랑은 존재한다. 사람이 사람을 향하는 가장 순수한 상태의 발현으로서의 사랑. 모든 조건들을 내려두고 오직 마음만이 남아 오롯이 빛나는 환희. 그래서 온전한 2인칭으로 너의 곁에 있고 싶다는 열망.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을 가졌다면 사랑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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