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주씨 Mar 08. 2024

무명인의 책임감

토지 3부 1권, 통권 9권


3부 1권, 문득 지금 떠오른 생각이다. 혹시 선생님은 3·1 운동 얘기를 3부 1권에서 다루고 싶으셨을까. 숫자가 눈에 도드라지게 들어온다. 


“마, 만세를 부, 불렀심다. 내 내가 불렀심다.” 117p. 


선생님은 주인공도 아니요, 주요 등장인물도 아닌 짝쇠의 입을 빌어 민중의 소리를 전하고 싶으셨을까. 이 땅의 사람으로 태어나 일제 세력 하 핍박받고 살아온 일반 민중의 삶은 착취당하고도 목숨을 부지하려면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고, 뒤돌아 누우면 다음날 끼니를 걱정해야 할 생이 언제 숨이나 한 번 편하게 쉬어볼까. 독립운동을 하러 먼 길을 떠나지 않아도 이 땅에서 버티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묵묵한 일상이 언젠가 다시 돌아올 내 나라 하늘 아래의 삶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그 무명들의 한 자락 굳은 마음을 대신해 짝쇠는 장터를 신나게 누비고 독립 만세를 불렀다. 


“만, 만셀 불렀심다.” 


형사의 취조에도 불구하고 모진 매를 맞으면서도 짝쇠는 한 결 같이 만세를 불렀다고 할 뿐이다. 누군가의 이름이 잘못 새어 나오기라도 할까 봐 그저 다짐처럼 만세를 불렀다고 했다. 누구라도 굴비 엮듯 잡아들여야 하는 조선인 형사들은 취조를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으려나. 내 나라 사람으로 태어나 타국에 머리 조아리고 내 동포를 잡아들여 밥을 벌어먹는 생은 편안했을까. 일제가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본인의 안위를 위해 영원하기를 바랐을까. 입이 쓰다. 


중간쯤 달려온 것일까. 


타국의 지배를 받는 삶은 처절하고 참혹하다. 일해도 배부르지 못하고, 이유 없이 매 맞아 죽고, 배움은 이름을 내세우지 못하고, 자본인들 온전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 그 갈피갈피를 토지 속 인물들은 증거처럼 버텨왔다. 인물과 인물의 서사를 따라, 묵묵히 흐르는 섬진강 물길처럼 버티고 선 토지와 함께 나도 흘러왔다. 역사는 인문서 속 고정된 문장을 벗어나 토지 속 사람들 이야기로 다가간다. 장터에서 만세를 부르는 무명의 누구 씨가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나는 짝쇠를 기억한다. 불우한 독립운동가들의 역사도, 동학이 어떻게 살아남아 만세 당시 활동을 했는지, 민중의 삶은 어떠했는지도 가까운 누군가의 이름으로 살아난다. 역사를 배우는 의미를 거창하게 이름 붙이지 않아도 좋다. 저 때를 버텨낸 사람들의 생을 이해한다면, 그때의 인물들이 살아낸 당시의 내일인 현재를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다. 토지를 바라보니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책임감이 무겁다. 저들이 그러했듯 나도 누군가가 바라 볼 과거의 한 시점이라면 내일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사람답게 살아갈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이야기는 무한히 태어나지만 결국 사람이 사라진 사이에서 힘을 낼 수 없다. 토지는 가장 어렵고 중요한 얘기를 하는 것만 같다. 결국 사람의 일이다. 사람으로,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내 오늘에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짝쇠처럼 용기 내 만세를 부를 수 있을까. 만세를 불렀다고 소리 내 말할 수 있을까. 살아가는 일이 거울 같은 순간을 만나면 종종 참 어렵다. 존재한다면 기어이 이어나가야 하는 생을 걸고 그저, 부끄럽지 않을 과거로 남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금녀의 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