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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Mar 15. 2024

외로운 사람들

토지 3부 3권, 통권 11권


앞서 임명희의 감정이 도드라지게 사랑은 아니라고 썼었다. 나는 이상현을 향한 임명희의 감정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었을까. 자꾸 지금 기준으로 토지 속 인물을 바라본다.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시선으로 안타까워한다. 백여 년 전 당시의 임명희를 생각해 보자. 임명희 주변 환경은 가부장제와 봉건제 끝에서 제한적이다. 신식 공부를 하고 개명했으나 살고 있는 환경이 자유롭지 않은 임명희가 선택할 수 있는 스스로의 가능성은 얼마였을까. 그런 임명희에게 다가온 이상현을 향한 감정이 어떻게 사랑이 아니라고 그렇게 단호하게 선 그을 수 있었을까. 


울지 말라고, 견디지도 말라고 말하는 이상현에게 그러하겠노라 답하며 술 한 잔을 건네는 임명희를 보니 어찌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감정만이 사랑이겠는가 싶다. 임명희를 향한 안타까움이 컸나 보다. 좀 더 멋지게 빛 날 수 있는 사람인데 이상현 같은 비겁한 사람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리고 싶었을까. 


사람들은 각자 어찌할 수 없는 색을 지니고 태어난다. 환경과 성장과정이 반영되어 방향을 틀거나 본래 타고난 색이 옅어지거나 강해지기도 한다. 끝끝내 바꿀 수 없는 바탕은 어쩌면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갈 동안 본인이 헤쳐 나갈 길이고, 방향이며, 목적지는 아닐까. 내 바탕이 생긴 모양을 어떻게 감당하고 살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이 생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지닐 책임감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태생적으로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 환경이 어떠해도 외로움을 운명으로 타고난 사람들은 외로운 색으로 살아간다. 그런 이들에 자꾸 눈이 가고 마음이 간다. 그 생이 고단할 것을 이미 알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불쑥불쑥 드러난다. 가끔 애틋한 이들에 필요이상으로 마음을 쏟나 싶어 멈칫거린다. 이 번 생 내가 타고난 운명인지도 모른다. 토지는 길고 긴 얘기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나온 토지 속 인물들에 자꾸 현실인 듯 그들 곁에 선다. 내 현실 속 살아가는 모습이 불쑥불쑥 드러난다. 그래서 별나게 자꾸 속이 상한다. 


사람이 각자 드러내는 마음의 깊이도 다르고 살아가는 모양도 다르다. 박경리 선생님은 어디까지 염두에 두고 계셨을까. 어떻게 하나하나 다 어루만지듯 다듬어 숨 쉬는 인간으로 살아내게 만드셨을까. 새삼 얕은 마음으로 이 책을 읽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숨을 고르게 된다. 벌써 11권인데 토지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고민을 날이 갈수록 더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외로운 사람 김환을 모른 척할 수 없다.


환이는 풀섶을 지신지신 밟으며 산을 내려간다. 적막한 어둠과 마음 끝을 간질여주는 갈대 같은 외로움이 스며든다. 마을의 불빛이 깜박이고 있었다. 모깃불 연기 속에 뿌옇게 비치는 불빛도 볼 수 있다. 차가운 빙하 같았던 생애. 먼 곳에서 찬란하게 빛을 내던 사람들, 인생은 보석의 빛이 결코 아니요 뿌옇게 타오르는 모깃불, 목화씨 같은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발자취는 순전히 역행이었다는 생각도 한다. 51p. 


외롭게 태어나 평생 그리워만 하며 살아간 사람. 그는 마지막 죽음마저도 혼자다. 시대를 달리 했다면 김환은 조금 덜 외롭게 살다 외롭지 않게 떠날 수 있지 않았을까. 가상의 인물을 향해 오늘, 유달리 마음이 쓰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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