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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Mar 20. 2024

자유인 이상현

토지 3부 4권, 통권 12권


‘명희씨 보십시오’ 하고 시작하는 상현의 편지는 오랜 방황 끝에 드디어 본인과 화해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 나는 내가 자유인 것을 깨달았고 정직해지는 것을 느꼈소이다. 앞서 사랑에는 여러 가지 성질의 것이 있다고 했지요? 그것도 나로서는 깨달음이었었소. (...) 나는 진실로 그 아이에게 내 사랑을 전하고 싶소. 347p.


진실로 사람에게는 그 ‘때’ 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무기력한 식민지 지식인의 갈 데 없는 방황이 끝이 난 듯하다. 이상현. 아버지 이동진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아버지의 뒤를 따르지 못했고, 글을 쓰지만 스스로가 혐오스러워 견딜 수 없었고, 기화를 사랑했지만 곁에 있을 때 사랑인줄도 몰랐다. 현실을 오래 앓으며 그 사이 모두와 헤어지고 멀리 상해까지 떠났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속할 수 없었던 그 무수한 시간을 견디고서야 이상현은 자신과 만난 것 같다. 


이상현은 자유롭다고 했다. 저 자유는 여러 의미를 지닌다. 본인 스스로도 헤어날 수 없었던 구시대의 관습과 관습 속의 지위와 지위가 가진 책임과 의무를 다 버리고 완전한 개인이 되었다는 뜻은 아닐까. 명희에게 쓴 편지를 읽고 나약한 인간 이상현을 처음으로 연민한다.


이상현은 아버지 이동진으로 대표되는 조국에 대한 책임과, 어머니와 처가 있는 하동으로 대표되는 구시대의 관습과, 소설 쓰는 지식인으로 대표되는 계급적 계층이 다층적으로 교차하고 충돌하는 현실 속에서 제대로 서지 못하는 본인을 혐오했다. 오랜 방황 중 때로 구질하고 사람답지 못했다. 서희에게 패악을 부리고 길상을 질투했으며 가족과도 멀어져 충실하지 못했다. 그리고 기화를 버렸다. 어떤 사조도 적극적으로 몸담아 본인의 것으로 할 수 없었고 서울, 일본, 간도, 상해 등 각지를 떠돌며 교류하는 사람들과도 깊이 섞여들지 못했다. 


봉건시대에 태어난 상현이 근대와 현대가 교차하는 시점을 관통하는 사이 변화는 급격하다. 쏟아지는 변화를 누군들 제대로 감당할 수 있었을까. 시대를 이름 짓는 쏟아지는 글자만으로도 아득하기만 하다. 배움은 그 사이를 이해하고 바라보게 해준다. 사조는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도구이자, 광복을 목표로 한 길이고, 누군가의 변곡점이기도 했다. 무수한 충돌이 일어나고 와해되고 흔적을 잃고 죽어가는 사이 이상현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이상현은 너무 일찍 태어난 20세기 시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토록 촘촘하고 지난한 틈바구니에서 자유를 얻었다. 자유 앞에서 정직하다 했다. 이상현에게 중요한 이념은 조국도, 철학적 사조도 아니었나 보다. 스스로 도달한 자유가 이상현을 지상에 발붙이게 했으리라. 이상현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창은 ‘소설’이다. 기화 곁에서 쓸 수 있었던 소설은 기화와 헤어져 글이 되지못했다. 스스로를 재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그 과정이 너무 혹독했다. 다 잃고 나서야 닿을 수 있는 자유와 정직은 너무도 쓸쓸하다. 지상에 발 디딘 인간 이상현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겠지.   


양현은 서희의 사랑으로 자라고 있고, 어리던 윤국은 광주학생사건을 이야기할 정도로 자랐다. 시절은 수상하나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무수한 좌절 앞에 그래도 희망이 태어나는 건 시간은 흐른다는 속성을 믿는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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