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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Mar 25. 2024

우리는 개인

토지 4부 2권, 통권 14권


개인적으로 내가 어른이 되었다 생각하는 포인트들이 몇 있다. 눈앞에 번뜩이는 명제가 세상에서 제일 귀하고, 문학이나 철학이 한줄기 빛처럼 세상의 전부라 여기던 시절도 있었다. 그게 세상 사 다가 아님을 하나씩 부딪치고 겪으며 깨달아 지금이 되나 보다. 윤국이가 담고 있는 고민과 고민의 순도가 새삼 아름답다. 청년기 진리를 향한 열정이 빛나기 때문이다.


윤국이는 부유하게 자란 자신의 환경이 평범하지 않은 것을 알고 부끄러워한다. 어머니 최서희를 존경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윤국은 일제 치하 시절의 엄혹함을 알고, 평균 이상의 부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님을 알고, 그 와중에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의 안락함이 보통의 것이 아니요, 시대의 고통이 어떠한가를 절절하게 고민하고 있다. 부끄러움은 대칭의 것을 동경하게 한다. 직접 겪어보고 싶다. 집 밖으로 나가 자유를 만나고 하급계층의 삶도 경험해 봤다. 일제강점기 식민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저들의 고통이 내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간다. 피가 끓어오르듯 애국의 길을 생각하고, 진리를 향해 온갖 고난이 있을지라도 걸어가고 싶다. 세속적이지 않은 것을 향한 열망, 지적인 세계를 향한 목마름으로 청년, 최윤국은 반짝인다.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꼭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버님을 어머님 계급으로 끌어올리려는 생각은 마십시오. 어머님이 내려오셔야지요. 저는 때때로 슬프지만 아버님을 부끄럽게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나으리마님, 사랑양반, 그것은 아버님에 대한 모욕입니다! 조롱입니다!” 182p.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어린 신념은 가지를 뻗고 자라며 안에서 충돌한다. 충돌하며 생각은 깨어지듯 쏟아져 버렸다. 스스로 미처 깨닫기도 전에 말이 앞섰을 뿐이다. 가족의 불문율을 깨트리고 윤국이의 세계관이 확장되고 있다. 윤국이의 말은 신분제가 폐지되었으나 여전히 양반과 상민, 천민이 존재하던 시대를 사는 다음 세대의 선언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시대가 점점 나와 가까워지는 기분이 든다. 윤국의 고민도, ‘나’의 내일을 방황하는 임명희도, 신념을 위해 목소리 내는 유인실도 이전 시대보다 한 발 앞으로 걸어온 개인의 선택이 보인다. 일제강점기 민중은 고난을 겪으며 하루하루 연명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삼강오륜과 임금을 향한 충효와 절개만을 위해 살던 내 나라가 이제 개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가 되며 여러 사조는 폭풍처럼 조선을 휩쓸고 있다. 신식 교육을 받은 세대들은 이전 시대의 봉건적 관습에서 한 걸음 멀리 왔다.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때로 아나키즘의 색을 띠고 과격하기도 하고, 사회주의 계열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민족주의이기도 하고, 종교적이기도 하다. 여러 사조들이 얽혀서도 버텨내는 목표는 애국과 독립이다. 각자의 생각으로 각자의 길을 걷는 무리 속에서 사유는 교차하고 그 무수한 갈래와 방향과 에너지를 원동력 삼아 개인은 성장한다.


불우한 시대에 태어난 불우한 개인들이 시절을 버티고 있다.


“유선생께는 여성으로서 행복한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해보셨습니까?”

“행복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서 과연 행복할는지. 유다가 행복했더라면 왜 스스로 목을 매고 죽었겠습니까.” 2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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