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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Apr 03. 2024

서희의 눈물

토지 5부 1권, 통권 16권

서희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 앞에서도 고개 숙이지 않던 서희는 순철이의 머리를 돌로 친 환국이의 행위 앞에 고개를 숙였었다. 서슬 퍼런 일본 군인, 경찰이 들이닥쳐도 흔들리지 않던 강건함이 윤국이가 염려되어 한 발 물러서기도 한다. 서희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서희는 조준구에 빼앗긴 최참판댁을 재건하겠다는 목표로 살았고, 대결할 목표를 잃은 후로 자식을 지키기 위해 살았다. 길상이 돌아오고, 서희는 장서방을 통해 독립자금으로 오백석지기 땅을 내놓았다. 서희의 세계관은 주변과 함께 확장되고 있었다. 이 땅으로 돌아오기만을 바라던 목표를 벗어나 길상의 세계를 지키고 아들들의 세계를 지키고자 한다. 어쩌면 신념은 지키고자 하는 대상이 있을 때 진실로 빛나게 되는지도 모른다.      


분(分) 초(秒)로 나누어보면 흘러가버린 시간은 얼마인가. 천문학적 숫자다. 그 많은 숫자 속에 순수한 자신의 시간이 거의 없었던 것을 서희는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것은 서희에게 매우 충격적인 자각이었다. 가문과 자식과 그리고 남편이라는 존재, 그것과 그들을 중심하여 모든 것을 돌게 하였던 자기 자신은, 애정이든 의무든 자기 자신은 시곗바늘 같은 것이나 아니었는지. 중심에서 멀리 벗어난 박의사는 자신에게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는 서희를 위한 시곗바늘이었는지 모른다.366p.     


그러나 자신의 자리는 언제나 홀로 고독했다. 박의사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서희의 마음은 크게 동요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여태 살아온 대로 굳건한 모습으로 단단하게 아름답게 그리고 언제나처럼 고독하게 버티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침묵하듯 서희의 모습은 토지 속에서 한없이 멀리 있었다. 혼자 독기를 품듯 자라난 아이, 집념으로 부를 쌓아가던 여자, 가족을 지키려는 어머니. 감정을 숨기듯 지킬 대상들을 향해서만 빛나던 사람. 자기 안에 유배시킨, 오래 이별한 본인과 이렇게 마주하게 된다. 서희는 운다. 소식을 들은 차 안에서 울고, 별당을 거닐며 울고, 나중에 길상 앞에서도 운다. 간도에서부터 서희는 마음이 무거울 때면 법당에 들어 예배하는 형태로 감정과 생각을 숨 고르며 돌아오곤 했다. 본인은 습관처럼 한다 했으나 스스로에게 허락한 유일한 탈출구였는지도 모른다. 눈물은 오랫동안 그렇게 눌러온 제대로 보듬지 못한 스스로를 향한 위로였다.    

  

“놓아주라 하시었습니까?”

...

“혹 당신 자신을 두고 하신 말씀은 아닌지요.”

“......”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을 하고 계셨습니까?”

...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기 태생대로 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오.”

...

“사로잡혀 있기론 피차 마찬가지지요.” 379~380p.     


길상과 서희가 드디어 대화를 나눈다. 오래 목말랐다. 간도에서 횟집에 갔다 강가에 나가 둘이 이야기를 하던 날에서 도대체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모르겠다. 서희와 길상, 말은 방향을 찾지 못하고 각자 안에 맴돌고 있었다. 각자 안에 자리한 고통과 부부로써 부모로서 살아온 세월을 다 내려두고 너와 나로 마주서 나누어야 하는 말들을 풀어낸다. 그 사이 무수한 사건과 시간이 이들을 지나갔다. 저 둘은 그토록 오래 이별한 것과 다름없다. 둘은 제대로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길상이 관음탱화를 장엄하고서야 둘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길상이 속에 담아둔 말들은 본질적인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은 누구나 홀로 감당해야 하는 자기만의 생의 무게를 짊어지고 태어난다. 길상의 시간은 사랑해도 넘을 수 없는 근원적 고통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본질적 외로움은 홀로 지고 나아가야하는 평생의 업과도 같은 것. 가족을, 서희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다 알기에는 역시나 우리는 모두 개별적 타인이다. 그 타인을 향해 내어놓을 수 있는 자리는 얼마 만큼인가. 사랑의 무게는 그 자리의 부피와 비례할지도 모른다.      


“세월인 게야, 자네 부친의 세월 말일세. 식을 맑게 간직하고 닦아온 자네 부친의 세월. 사람들은 대부분 본래의 때 묻지 않는 생명에 때를 묻혀가며 조금씩 망가뜨려가며 사는데 결국 낡아지는 것을 물리적인 것으로 인식하지. 생명의 과연 물리적인 것일까?” 403p.      


길상은 지나온 날들을 원망하지 않지만 편안하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 무게를 내려두려고 길상은 온 생을 버텨온 마음을 걸고 관음탱화를 그렸나 보다. 그래서 원력이라 하나 보다. 삭풍이 부는 시간을 견디고서도 수줍어하는 마음이 그대로인 길상. 세월을 내려놓고서야 얼마쯤은 무게를 덜어낸 길상과 오랫동안 가장 멀리 둔 본인과 마주한 서희가 지금에서야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두 사람이 한 번도 용기 내어 제대로 소리 내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이 먼 시간을 돌아와서야 이제야 서로 앞에 물음표로 선다. 

본질적인 부분을 향한 물음. 

이해를 향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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