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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Apr 05. 2024

2024년 삼일절

토지 5부 2권, 통권 17권

오늘은 삼일절이다. 17권 일제의 만행은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입이 마르는 기분에 자꾸 물을 마셔야만 한다. 우리는 어떻게 버텨 독립을 얻었나.       

우연히 만나 술 한 잔 하며 이야기 나누는 환국과 순철. 이제는 어른이 된 한 때의 소년들.      


“바보처럼 웃고살자. 광대가 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 19p.    

 

부와 재능을 가진다고 해서 원하는 만큼 날아오를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조선인이라는 굴레가 그들의 발목을 잡고, 내선일체를 부르짖는 일제가 조선인들은 2등 국민으로 한정지었다. 거대한 아이러니에 갇힌 사람들. 무력감을 이기고 살아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그에게 교리 같은 것은 도통 관심이 없었고 복잡할 필요도 없었다. 세상을 바꾸어놔야 한다는 것, 배고프고 핍박받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그의 정열의 모든 것이었다. 99p.     


한 시절은 한 사람의 생애와 함께 마무리되기도 한다. 송관수. 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던 그가 죽고 조선과 만주를 아우르며 일을 해냈던 사람의 빈자리는 너무도 컸다. 마무리 자리에 모여든 사람들. 김환의 음성을 따라 아직도 현재를 사는 듯한 강쇠, 만주에서 일을 하다 압송당해 와 유배된 듯 살아가는 길상, 아버지의 짐을 대신 짊어진 막동, 최참판댁의 집사 장연학, 해도사와 소지감. 동학의 뜻도, 독립운동도 사방이 막혀 뜻도 잃고, 사람도 잃고, 날개마저 다 꺽인지도 모르겠다. 시절은 가파르기만 하다.      


그리고 신경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형사에게 잡혀간 홍이와 보연을 통해 전쟁에 사활을 건 일본이 얼마나 조선의 목을 죄고 있나 직접적으로 보게 된다. 개인은 금을 지녀서는 안 된다. 전쟁물자, 전쟁자금에 차출된 우리 땅, 우리 산천의 물자와 사람들. 요사이 유행하는 일본이 우리를 근대화시켰다는 억지 주장이 얼마나 허울뿐인 말인가. 일제의 필요에 의해 길을 닦고, 철로를 놓고, 근대화란 명분으로 공장을 짓고, 생산된 물자와 쌀은 항구로 실어내기에 바쁠 뿐. 이 땅에 남겨진 수탈의 현장들이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다. 우리의 발전이 저들의 목표가 아니었음을.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우리 스스로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무력감을 이렇게 호도해서는 안 된다.      


유인실은 11년 만에 만난 오가타에게 숨겨온 마음 한 끝을 보인다.


“일본이 망할 때까지,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을 잊지 않겠어요.” 185p.     


유인실, 오가타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조국을 배신한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었을 뿐이다. 사랑하는 마음마저도 버리게 하는 간절함이 바로 독립 의지다. 이 소설의 마지막을 알고 있다. 인물들의 시간을 함께하며 거대한 흐름을 바라본다. 고난의 끝을 향하는 의지. 바로 독립이다. 토지를 읽는 시간은 그 과정의 참상을 지켜보는 일이다. 토지를 읽으며 내내 다져온 마음, ‘나는 이렇게 읽기라도 하자’고 고단함을 버티고 있다. 다만, 이렇게 고통스럽게 지나온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잔재를 21세기에도 보고 들어야 하는 허탈함이 클 뿐이다. 저런 소리로 이득을 보는 자들은 누구인가.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무리에게 발전적 미래를 말하는 자는 어느 땅의 사람인가. 치욕스런 과거의 주역들은 반성을 모른다. 왜 이 오욕은 우리의 몫인가.

      

사실 이들은 모두 내일을 알지 못했다. 내년에도 이와 같이 행사가 있을 수 있겠는지 아무도 기약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세계는 전운에 가득 뒤덮여 있었고 지금 이 시각에도 중국 본토 어디선가 포성이 울리고 있을 것이다. 1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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