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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Jun 13. 2024

그 후,

영화 <조이 럭 클럽>을 보고 쓴 글을 충동적으로 올렸었다.  다 쓰고 목요일까지 기다릴까 하다 그 순간에 느낀 감정들이니 시간까지도 묶어두자 싶어 그냥 발행 버튼까지 눌렀었다. 그리고 목요일. 원래 연재를 하는 날 보러 와주신 분들이 계셨다. 글을 쓰다 어쩐지 숨이 차 그냥 지난날도 있다. 내가 고민하는 사이에도 약속을 기억해 주셨구나. 고맙고 미안한 마음. 


글을 쓰면서 엄마 생각을 오래오래 했다. 드문드문 기억하던 엄마를 매주 생각하면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 엄마가 너무 멀어서 좀 아득했다. 어디까지가 기억이고 어디부터가 내 생각이고 감각인지 뒤죽박죽 섞여 들었다. 그 경계가 분명한 사건도 있지만 몇몇 이외에는 흐릿해서 자꾸 안타까웠다. 내가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면, 좀 더 세심하게 기록을 했더라면 아쉬운 생각들만 자꾸 들었다. 그냥 종종 울면서 글을 쓰고 가끔 행복했다. 오래된 가난한 풍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우리를 지켜준 엄마가 있었으니까. 그게 얼마나 고단하고 대단한 일이었을지 나이가 들어서야 이해되고 보이기도 했다.  


엄마, 진짜 어떻게 버티고 살았어... 


기억은 얇고 얇다. 거창하게 엄마를 기록하겠다고 해놓고 기억 속 엄마를 싹싹 모아서 쓰고 보니 이게 다인가 싶었다. 글자로 고정한 풍경 속에서 나는 자라는데 엄마는 자꾸 흩어지는 기분이다. 기록에 게으른 내가 처음으로 원망스러웠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당장 쏟아진 현실은 참혹했다. 엄마 옷을 정리하란다. 다 버려야 한대. 그래야 엄마가 가볍게 떠날 수 있대. 왜? 이해도 납득도 안 되는 일이었다. 엄마 짐이라는 게 정말 참 별게 없었다. 화장도 거의 안 해서 스킨 로션 크림 하나가 전부였고 패물이랄 것도 없었다. 낡은 옷과 옷보다 더 낡은 신발과 손가방과 수첩 책 몇 권. 나중에 가게를 정리하고 엄마 물건이라고 전해 받은 건 수국이 그려진 커피잔 두 벌이 다다.  포대자루에 담기는 엄마 옷을 몰래 하나 숨겼다. 뭐라도 하나 남겨두고 싶었다. 이렇게 갑자기는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아빠가 그걸 봤다. 엄마 보내주자고. 말도 못 하고 떠난 엄마가 무거울까 봐 싫다고 우기지 못했다. 그날 밤 내내 소리 죽여 울었다. 아빠랑 동생이 들으면 안 되니까. 


엄마는 사고가 나서 병원에 실려가고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병원에서 챙겨준 엄마 옷은 경황이 없던 사이, 소식을 듣고 집으로 오신 할머니가 손빨래를 하셨다. 담배를 물고 앉아 멍한 얼굴로 '피가 안 지더라' 하던 할머니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나이가 들면서 이해되는 부분들도 있었다. 엄마가 죽었는데 어떻게 엄마 보험금으로 아빠는 술을 먹지? 동생이 수학여행을 갔던 날 잠시 바람 쐬러 나간다는 아빠는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 집에 혼자 남겨져서 무서웠던 그 밤이 아직도 또렷하다. 엄마랑 말도 안 해놓고 뭐가 힘들어서 저렇게 술을 먹고 다니는가 싶었다. 내 그리움과 미안함과는 결이 다른 감정들이 아빠한테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 건 스물이 한참 지나고 나서였다. 아빠의 감정이나 당혹스러움은 뒤늦게 보였다. 아빠를 용서한건 아니지만 그냥 갑자기 이해되는 날이 왔다. 

집을 떠나 살면서였다. 


남겨진 아빠, 나, 동생 우리 모두에게 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서로 모여 앉아 엄마 얘기를 하지 않았고 그때 안 했으니 지금도 하지 않는다. 가끔 스쳐 지나가는 말로 짐작할 뿐이다.  동생이 군대에 있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급하게 휴가를 받고 온 동생이 장례식에서 펑펑 울었다. 동생이 그렇게까지 소리 내 우는 건 엄마 장례식 이후로 처음이었다. 니가 맺힌 걸 이렇게라도 푸는구나 생각을 했었다. 그 뒤로도 말로 하진 않았지만 동생이 병장을 달고 제대할 때까지 가끔 편지를 했다. 뭐 너나 나나 소리 내 말하는 성격은 아니니. 묵혀둔 엄마 얘기도 그때 좀 편지로 했었다. 뭐라고 썼었나.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그게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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