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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May 16. 2024

어느 날의 풍경

까마귀 음복단 

엄마 산소는 부산에 있다. 거의 마지막으로 조성된 시내(라고 하기엔 외곽이지만) 공원묘지였다. 장의차가 고갯길을 꾸역꾸역 올라 내려서는데 엄마가 누울 자리가 있던 한 줄에 아무도 묘를 쓰지 않았었다. 어쩜 그렇게 휑하고 휑했을까. 퉁퉁 부은 눈으로 내려와 한 술 뜬 소고깃국 국물이 모래알처럼 바스러지던 감각은 아직도 남아 있다. 삼오제날 갔더니 옆자리에 누군가 새로 오셨더라. 이상하게 의지가 됐었다. 이모는 엄마 산소에 외롭지 말라고 애기 동백나무 두 그루를 심었고 그 나무들은 이제 자라 우거진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나는 엄마 산소에 자주 안 간다. 명절이면 택시를 타고 아빠 동생 나 그렇게 엄마 산소에 가다가 어느 날부터는 새엄마도 같이 가기 시작했다. 그 모양새가 얼마나 우습고 허술하고 쓸쓸한지 정말 딱 질색이었다. 가서 뭔가 내 감정대로 울 수가 없다. 이를 앙다물고 무심한 척하다 돌아오면 온몸에 기운이 빠져 허기가 졌다. 근데 그러고 먹는 밥은 대체로 맛이 없다. 머리가 좀 커지고 어느 날 선언했다. 나는 이제 안 간다, 그러니 아부지도 가지 마시라. 정 서운하면 내가 혼자 가서 꽃 갈아놓고 오겠다 했지만 아부지는 죽은 마누라 산소에 새 부인을 데리고 계속 갔다. 저럴 거 살았을 때 좀 잘해주지 생각을  했었다. 엄마의 마지막 날을 목전에 두고 아빠랑 엄마는 거의 말을 안 했다. 서로가 안 보이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 시간은 꽤 길었다. 동생과 나는 그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익숙해져 있었으니까. 사람이 죽고 없는데 저게 다 무슨 소용이야 싶으면서도 아빠 식의 사과와 후회 미련인가 생각이 든 건 그로부터도 한참 뒤의 일이다. 


코로나로 공원묘지 입장이 통제되기도 했었다. 아빠도 두 해는 건너뛰었다. 전에 내가 한 번 다녀오겠다고 했다. 핸드드립으로 공들여 내린 커피를 보온병에 담고 커피잔과 받침도 챙겼다. 일부러 제과점에서 사다 놓은 조각케익과 사과 하나, 배 하나, 깐 밤 한 봉지에 대추도 조금, 술도 챙기고 담배도 챙겼다. 아빠는 길 찾아가겠냐 하는데 찾아가지 하고 대답을 했지만 그 길을 어떻게 잊냐고. 공원묘지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난 산길을 일방통행처럼 계속 계속 위로 위로 올라가면 갈림길이 나오고 그 갈림길에서 어느 방향, 우리만 알아듣는 물탱크 있는 거기 차를 세우면 발아래로 산이 펼쳐진다. 색색의 꽃을 두고 나란히 누운 사람들. 잔디는 푸르고 민둥산 같던 공원묘지는 말 그대로 신록이 우거진다. 각도를 잘 맞춰 올려 잡으면 그냥 푸르고 아름다운 공원이다. 하긴 세월이 그만큼인데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될 만큼의 시간은 나무도 그만큼 키워냈다. 묘하게 아름답다. 


"엄마 내 왔다"

늘 눈치 보고 인사 한 번을 제대로 못했는데 가볍게 소리 내어 인사도 하고 혼잣말처럼 구시렁구시렁 말을 풀어놓는다. 동백나무는 어쩜 이만큼이나 자랐나~ 엄마 산소는 산비탈의 윗머리에 길이 있고 아래로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엄마 집은 단박에 알아볼 만큼 동백나무가 자랐다. 돌 기단부를 한 번 닦고 꽃도 바꿔 꽂고 가져온 것들을 가지런히 차려놓고 술도 뿌리고 절도하고 담배도 하나 붙여 앞에 놓는다. 엄마가 담배를 피는 건 알고는 있었지만 눈으로 본 적은 없다. 엄마가 없는 자리에서 엄마를 위해 담배 불을 붙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 산에 담배 가져가면 안 되는 거 알지만 담배가 타는 동안 눈 한 번 떼지 않고 지켜봤으니 이해를 좀...  맛있는지 담배가 끊어지지도 않고 예쁘게 한 줄로 다 탔다. 날은 어쩜 이렇게 쨍할까. 나무가 이렇게 많고 커피도 케이크도 있고 과일까지 있으니 오늘은 소풍이네. 엄마 앞에 차려둔 케이크며 과일이며 차근차근 하나씩 다 먹었다. 절을 하든 순서가 어쨌든 뭐 우리 엄만데 이해하겠지. 


주변을 나르던 까마귀와 까치가 은근히 멀찍이 거리를 두고 여기저기 비석이나 봉분 위에 딴청을 부리며 앉아있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 까마귀 음복단. 근데 이 친구들이 점점 좀 표 나게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 건 내가 무언가를 먹기 시작한 이후였다. 어쩐지 눈치가 보이는데 야~ 이건 니들 못줘하면서 야무지게 케이크도 먹고 커피도 다 마시고 마지막으로 절도하고 엄마 이제 나 갈게 소리 내 인사를 했다. 과일 껍질과 남아서 잘게 자른 과일, 밤이랑 대추를 빈자리에 내려두니 까마귀와 까치가 날아왔다. 조직적으로 날아오르는 본새가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이 친구들 서열이 있더라. 젤 반짝이고 윤이 나는 까마귀가 젤 먼저 날아와 하나 집어가고 나니 그제야 다른 애들이 날아왔다. 세상에!! 사과껍질을 좀 끊어놓을걸. 쟤들 끝을 서로 물고 싸운다! 여차저차 나름 공평하게 나눠가진 까마귀들은 나름 선호하는 자리로 날아가 밤 사과껍질 대추를 먹더라고. 음... 내가 눈치 없이 너무 많이 먹었구나 얘들아 미안. 가져온 청소도구와 그릇 칼 돗자리를 원래대로 챙기고 나면 남기고 온 제숫거리는 저 친구들이 다 해결해 주는 굉장히 친환경적인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 몇 단 아래도 누군가 성묘를 오자 까마귀 음복단은 일제히 날아올라 그 근처 비석 봉분으로 옮겨가고 정찰조인 두어 마리는 둥글게 둥글게 그분들 머리 위로 날았다. 주차한 자리까지 올라와 아래를 내려다보며 얼마나 감탄을 했는지 모른다. 묘하게 소풍 같은 기분에다 까마귀 음복단 덕분에 약간 흥마저 돌았다. 까마귀는 어쩜 그렇게 멋지게 활공을 하겠냐고.   


돌아와서도 까마귀 음복단을 가끔 생각했다. 저 친구들 덕분에 그 동네 분들 심심하지는 않겠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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