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옛날 동네에 갔었다. 동래구 칠산동.
동래고 담벼락을 지나 새로 난 길을 따라 내성초등학교를 지나 주차를 하고 보니 내성교회 앞 집을 헐어 주차장을 만들었더라고. 이십몇 년 전 마지막 기억을 뒤집어 어느 집이었나 꼽아봤다. 재개발 관련 현수막이 내걸려있고 오래된 아는 간판들이 아직도 있는 동네. 길약국이 뻥튀기집이 된 게 못내 이상한 옛날 동네.
일을 보고 돌아서며 용덕제과에 들렀다. 용덕제과 아줌마는 내가 누군지 지금은 못 알아보겠지. 옛날 옛적의 그 빵들을 좀 사서 손에 쥐고 내성교회 골목으로 걸어봤다. 내성교회 옆 근사한 돌담집은 내성교회 교육관이 되었고 맞은편 삼각지붕집은 내가 알던 모양 그대로 거기 있었다. 내성탕을 지나 옛날 골목을 좀 걸어 모퉁이까지 걸어봤다. 아직도 동래구 칠산동 문패가 남아있는 집과 목련나무가 있던 집, 작은 마당에 심어졌던 나무들은 세월을 지나 울창해지고 있었다. 저 집에 저렇게 장미울타리가 우거졌었나 생각을 하며 아무도 없는 옛날 길을 느릿느릿 걸었다. 이 집은 누구네 집, 이 집은 누구네 집. 머릿속으로 어지러이 떠오르는 생각을 만화경 속 모래그림처럼 찬찬히 지나왔다.
엄마 이 길 풍경이 생각나?
이 골목이 이렇게까지 좁았었나? 분명히 이 동네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는데 이 골목의 풍경은 어째 일고 여덟 살 무렵의 풍경으로 고정이 된 기분인지 모르겠어요. 골목골목을 지나 오르막길을 올라서서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던 밤풍경도 떠오르고. 오르막길 숨차하는 엄마 뒤를 미는 시늉을 하면 엄마는 은근히 뒤로 몸을 기대고 했었는데. 손에 실려오던 무게가 느껴지는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문득 잊고 있던 사소한 기억이 몇 가지 떠올랐어요.
내성교회를 지나는데 선교원 원장선생님 결혼식 날이 갑자기 생각났어요. 하객의 절반이상이 어린애들이었던 결혼식. 왜 갑자기 떠올랐는지 몰라요. 내가 처음으로 봉투 심부름을 갔던 결혼식이라 그랬을까? 엄마도 우리 선생님 기억나지? 우리한테 참 다정하셨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엄마도 우리 선생님이 되게 고마웠나 보다 싶어요. 그러니 오학년인 내 손에 봉투를 쥐어주셨겠구나 싶고. 드물게 눈보라가 치던 날, 그 눈길을 뚫고 등원을 했더니 선교원에 온 애들은 나랑 동생뿐이었던 날도. 그날도 우리를 보내고 엄마도 출근을 했었지. 엄마 속상했겠다.
이 동네를 떠나던 날 이삿짐 트럭을 타고 난 이사 가는 내내 엉엉 울었었는데. 그리고 이 동네를 지나가는 게 얼마나 맘에 걸렸었는지, 새길이 첨 생기고 차로 이 동네를 지나다 깜짝 놀랬던 기억, 그리고 지났던 그 길을 돌아오던 그 밤, 골목 한쪽에다 차를 세우고 공터였다 새길이 된 그 언저리를 더듬더듬 되짚어 우리 집 가는 골목을 오르고, 괜히 담장 너머로 우리 집 마당을 슬쩍 들여다봤던 기억까지.
엄마 나는 이제 울지 않고 그 동네를 가만히 걸어 다닐 수 있어요.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봐.
오늘은 날씨가 얼마나 쨍하고 아름다운지 몰라요. 장미가 흐드러지더라고. 꽃이 너무 예뻐서 괜히 그 집 앞에 서있어 봤어. 돌아오는 길에 크림빵을 먹는데 어쩜 진짜 옛날이랑 맛이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지 피식피식 웃었어. 빵봉지를 아빠한테 갖다 주면서 "용덕제과" 했더니 아빠 피식하고 웃더라고.
엄마 그런 날이었어요 오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