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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Apr 11. 2024

토막토막 이어지는 이야기

어릴 때는 카메라가 귀했다. 누가 사진을 찍어 준다고 하면 그냥 찍어야 사진이 남는다. 옆집 마당에 빨간 장미가 피었고 엄마, 나, 밍키할머니, 밍키(밍키할머니가 키우는 강아지) 이렇게 찍은 사진이 있다. 무료한 날이면 엄마는 가끔 옆집 밍키할머니랑 자옥이엄마랑 같이 고스톱을 쳤다. 밍키 할머니는 옆집 주인집인데 마루가 널찍하고 앞에 너른 평상도 하나 갖춰두고 계셨다. 점잖은 반장집 할머니는 같이 치셨는가 모르겠다. 


아마도 고스톱을 치다 자옥이 엄마랑 입씨름을 했을까? 점 십 원짜리 고스톱을 치다가 누가 광을 팔고, 점수를 잘못 계산하고, 그러다 판을 뒤 업고 그랬을까? 기억 속에 또렷한 사실 하나, 엄마랑 자옥이 엄마는 무서운 기세로 싸웠다. 밍키 할머니가 말리는데 둘이는 고성이 오가고 험한 말이 나왔다. 그러다 밤에 잠 안 자고 받아놓은 물통을 어떻게 끌고 나왔는지 골목에 끌고 나와 물싸움이 벌어졌다. 수도가 있어도 우리 집은 언덕 위에 있어서 수압이 약했다. 사람들이 물을 안 쓰는 밤에 엄마는 수돗가를 지키고 서서 물을 받아뒀다 낮에 썼다. 그 힘들게 받은 물로 서로 험한 소리를 하며 상대에게 물을 끼얹다 둘이 동시에 웃음이 터졌던 것 같다. 햇빛이 쨍했는데 바가지로 퍼붓는 물줄기에서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물장난 치지 마라 하더니 엄마는 왜 그래 싶었지만 무지개가 핀다 무지개다 하고 신이 났다. 애들은 똥개처럼 뛰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지고  뭐 그러다 유야무야 되고 말았겠지. 




큰 이모네 오빠는 어쩐지 무서웠다. 법륜사 유치원 뒤편 맨숀에 살던 큰 이모네 놀러 갔던 날이다. 오빠가 밥 먹다 젓가락을 휙 던지며 화를 내는데 그게 솔직히 좀 멋져 보였다. 집에서 엄마랑 밥 먹다 오빠 생각을 하면서 휙 젓가락을 던지며 오빠처럼 눈을 아래 위로 하다가 벼락같이 엄마한테 맞았다. 난 오빠가 멋있어서 그랬던 건데 엄마는 고작 갓난쟁이 테를 벗은 딸내미한테 테러를 당한 거다. 맞을 짓 했지 뭐. 오빠처럼 멋지게 젓가락이 휙 날아가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왜 그럴까. 난 그냥 세상 억울한데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었다. 아... 오빠가 멋있다고 아무거나 따라 하면 안 된다. 




옆 방 할머니랑 엄마랑 같이 집 뒤 산 중턱에 가면 밭이 있었다. 가물가물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던 날을 생각해 보면 봄날이었을까. 신문지를 펴고 우산으로 그늘을 만들어 포대기 위에 누인 동생과 아직 애기인 내가 앉아있고 물주전자도 있다. 기린빵에 다니는 아는 집 아저씨가 갖다 줬을 포장이 잘못된 파치 카스테라가 뭉텅이로 베개만 하게 들어찬 빵 봉지도 있다.  엄마는 할머니랑 같이 몸빼를 입고 고랑을 파고 김을 맨다. 햇볕이 따뜻해서 나도 잠이 오는데 슬슬 몸이 옆으로 누울 지경인데 근데 자면 안 된다. 엄마가 저기 멀리서 아가야 잘 있나 물어보면 대답해줘야 하니까. 




거기서 더 멀리로 올라가 보면 아주 옛날 시골집 마당이 나온다. 날이 따뜻하고 친척 어른들 오빠들 언니가 바글바글한 날이었다. 오두카니 평상에 앉아있는데 대문 너머로 엄마가 빼꼼 들여다본다. 나는 선뜻 엄마한테 못 가고 주춤거렸다. 추석이었다고 한다.


 이 얘기를 할 때 니가 어떻게 그걸 기억하냐는 소리를 들었다. 그냥 팝업동영상처럼 머릿속에 남은 한토막 가끔 있지 않나? 나한테는 그날이 그런 기억이었다. 아직 두 돌이 되기 전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를 맞춰보면 아빠랑 엄마는 살림을 한 번 엎었다. 못살겠다고 나를 두고 가놓고 엄마는 내가 보고 싶어서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다고 했다. 나는 나대로 설사병이 나 고모가 똥기저귀를 얼마나 빨았는지 몰랐단다. 엄마는 도저히 버티다 버티다 할머니 집으로는 못 오고 추석이라 다들 큰집으로 갔다는 소리를 듣고 그리로 나를 보러 왔었다고 한다. 추석이라 더 빽빽한 동부여객 빨간 버스를 타고 흙길을 따라 구불구불 처량하게 혼자서. 엄마는 대문간에 서서 얼마나 속이 상했었을까.  눈치를 보다 숙모였을까 큰엄마였을까  '경주야 엄마다 가봐라' 하는 소리에 쭈뼛거리며 엉덩이 걸음으로 내가 가더라 하는 얘기. 그만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그냥 가서 엄마 인생을 살았더라면 엄마는 좀 더 길게 살았을까.  동생도 안 태어났을 거고 그냥 차라리 혼자 가볍게 그렇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오지말지. 내가 뭐라고. 



그렇게 고단하게 살아 엄마가 남긴 건 금가락지 한쌍과, 목걸이 하나, 시계 하나. 


엄마는 맨날 돈사고 치는 아빠를 믿을 수가 없었다. 가게를 시작하고 엄마는 무섭게 돈을 벌었다. 사채로 끌어온 돈을 육 개월인가 만에 이자까지 다 갚고 그다음 번 돈을 역으로 시장 돈놀이하는 아무개를 통해 굴렸다고 한다. 사람 일은 알 수가 없다.  아빠가 돈 사고 치는 걸 막으려고 혼자만 알았는데 갑자기 사고를 당한 엄마는 영영 못 깨어났다. 어느 날 문득 경주야 이사 갈까 했었는데 할머니한테도 아파트 살 돈은 안되지만 어머니 이사가입시다 했다는데 아는 이모가 아무개한테 돈 빌려준 걸 알아서 건너 건너 돌아온 오십만 원 빼고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통장에 일정 금액이 되면 돈이 인출된 흔적은 있는데 돈은 어디에도 없었다. 좋은 옷도 제대로 한 벌 안 사 입었고 겨울이라고 털신을 따로 사신은 것도 아니다. 살아서 못 입은 새색시한복을 수의로 해 입고 엄마는 갔다. 엄마 평생에 제일 화려한 옷. 삼베가 아니라 대례복 같은 화사한 수의도 가능한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추석이 지나고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시간은 언제나 상대적으로 흐를 수 있고 그 보름 남짓은 지금도 평생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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