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학년 가을쯤 일요일이었다. 팬티에 피가 묻어났다. 첫 생리였다. 알고는 있었는데 덜컥 겁이 났다.
"엄마..."
전화를 걸고 차마 뒷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왜 전화했냐고 묻는데 대답을 못하니 엄마는 뭔가 싸하게 스친 느낌을 알아챘다.
"생리하나?"
엄마는 까만 비닐봉지에 쌓인 보라색 생리대를 내밀었다. 첨 보는 거였다. 엄마가 사다 주는 생리대는 우리 동네 슈퍼에서는 안 팔았다. 어릴 때 엄마가 슈퍼 가서 패드 사 오라 심부름을 시킨 게 기억난다. 그게 뭔 줄도 모르고 슈퍼 가서 우리 엄마가 패드 달래요 그러고 신문지에 싸서 까만 비닐 봉다리에 넣어주는 걸 덜렁덜렁 사들고 집에 가곤 했었는데. 엄마는 아랫배가 아플 때 먹으라고 게보린도 건네줬다.
첫 생리를 하고 한참은 기척이 없다 6학년 가을운동회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생리가 시작됐다. 모를 때는 덜렁덜렁 사 오던 물건이 알고 나니 그렇게 사기가 쑥스러웠다. 피를 흘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나니 세상이 갑자기 달라 보였다. 뭔가 새초롬해지던 기분이 기억난다.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동네에서 산 생리대는 감촉이 맘에 안 들었다. 보라색 생리대는 엄마 가게 근처 슈퍼에서만 팔았다. 엄마는 동네에서 안 파는 생리대를 매달 사다 줬다. 그때는 이미 세탁기로 빨래쯤은 내가 해두던 시기였다. 손으로 피 뭍은 팬티를 빨던 당혹감과 서글픔, 약을 먹어도 쉽게 가라앉지 않던 생리통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어린이를 청소년의 세계로 떠밀었다.
엄마는 생전 사 오지 않던 박스에 든 쿠키세트를 가끔 사 오기 시작했다. 강림당약국 맞은편에 용덕제과가 있었다. 단과자빵을 만들어 팔던 시장 빵집이었다. 빵 굽는 판에 가지런히 놓인 빵 위로 비닐을 덮고 둘레를 고무로 고정해 두고 손님이 빵을 고르면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용덕이 엄마가 비닐을 걷고 하얀 봉투에 빵을 담아주는 식이었다. 어릴 때 세상에 빵집은 용덕제과만 있는 줄 알았다. 엄마가 사 오는 그 쿠키세트는 용덕제과에서는 안 팔던 과자였다. 하얀 봉지가 아닌 종이가방과 가방에 든 상자에 든 쿠키들. 바삭바삭 부스러지는 색색의 사브레와 초코쿠키, 견과류가 들어있던 쿠키들. 말로다 표현 안 되는 호사스러운 행복함이 밀려들었다. 용덕제과 카스테라 만주도 충분히 맛있지만 박스를 열면 가지런한 그 예쁘고 맛있는 쿠키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행복하다. 뭔가 어린 마음에도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흐뭇하게 바라보며 좋냐고 물어봤을 엄마 얼굴이 떠오른다.
아픈 배를 안고 누워있다가 엄마가 들고 오는 쿠키박스를 보면 부스럭거리고 일어나 하나 둘 꺼내먹던 기분.
바삭바삭 새우깡도 좋지만 생리 때 케이크나 쿠키종류를 사 먹는 건 어쩌면 엄마 덕분일까? 그 단맛이 주는 구원을 약처럼 몸이 기억하나? 이 생각을 지금에서야 해본다. 연관성을 생각하고 있던 일이 아니다. 뒤늦은 깨달음. 딸의 생리 때문만은 아니었겠지. 어쩌면 우연히 선물로 받은 쿠키 박스를 집에 갖고 왔는데 너무 좋아하니까 사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매번 그렇게 쿠키박스를 선물로 받지는 않았을 테니까. 김복희 씨는 저녁 늦게 마감하고 캄캄해진 밤길을 터덜터덜 걸어 집에 간다. 오늘 하루는 또 어땠나. 유난히 까칠한 손님이 많았던 날, 피곤해서 밥맛도 없는 그런 날 쿠키박스를 사고 싶었을까? 애들이 표 나게 더 좋아하니까. 그러고 보니 그 쿠키 박스를 어느 제과점에서 파는지를 모르겠다. 국민학생의 행동반경 안에는 없었던 게 확실하다. 엄마는 낮에 일부러 사서 챙겨두거나, 퇴근길에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가 사서 집에 왔을까? 조금은 나아진 살림살이와 고민 없이 쿠키를 살 수 있는 지갑이 엄마를 행복하게 해 줬을까?
쿠키박스를 선물로 받는 행복함을 엄마한테 배웠다. 내가 자라 어른이 되어 돈을 벌기 시작한 후로 어딘가에 빈 손으로 가기 머쓱한 날이면 손쉽게 쿠키박스를 산다. 그때의 좋았던 기억이 무의식 중에 나를 그렇게 행동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가볍고 다정한 마음을 담아 색색으로 예쁘고 맛있게.
무슨 날이라서가 아니라 문득 그냥 사고 싶은 날 주고 싶은 사람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