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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Mar 28. 2024

엄마밥

엄마 얘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엄마가 해주던 음식 생각을 자주 했다. 내가 엄마한테 뭘 해줄 수 있는 나이였다면 다른 것들이 더 먼저 기억이 났을까? 엄마한테 받기만 하다 헤어지고 보니 엄마 얘기를 하면 자주 생각나는 게 음식이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그렇게 계속 그리워하는 '어머니 손맛', '어머니 밥상'이 사실은 나도 세상에서 제일 그립다. 


연탄아궁이와 곤로를 거쳐 가스렌지가 들어오도록 우리는 그 작은 집에 살았다. 엘피지 가스가 첨 들어오던 날, 손잡이를 돌리면 파란 불꽃이 타오르는 가스렌지가 너무 신기했다. 필요 없다고 분명 아빠랑 싸웠는데 그래도 화구를 두 개 가지게 된 엄마는 살림이 조금 수월했겠지? 연탄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고등어를 굽던 엄마, 석유곤로에 김치찌개를 끓이던 엄마, 가스렌지에 소고깃국을 한 냄비 끓이고 오뎅을 볶아주던 엄마. 스틸컷처럼 그 작은 부엌 속 엄마를 생각해 본다. 이불속에 웅크리고 누워있으면 방 문 밖에서 들려오는 도마소리,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 소리를 지나 슬몃 코 속으로 스며드는 냄새를 맡으며 오늘은 두부찌개, 오늘은 김치찌개 그렇게 시작되는 아침이 좋았다. 추억은 가끔 그렇게 궁색하고 오래된 기억을 따라 냄새로 각인되기도 한다. 


엄마 음식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작은 양은냄비에 끓이던 두부찌개도 아니도 두부조림도 아니고 두부볶음도 아닌 그 음식. 찌개라 하기에는 국물이 적고 조림이라고 하기에는 두부의 온전한 형태가 없다. 부를 말이 없으니 그냥 두부찌개라고 하자. 보슬보슬 몽글몽글한 형태로 잘 부서진 두부가 약간 칼칼하고 달짝지근한 양념과 잘 끓여져 있었다. 눈을 뜨면 언제나 밥상에 오르던 냄비와 뚜껑을 열면 김이 피어오르는 모습만 봐서 엄마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국물멸치도 두어 마리 들어있고 달큰한 국물에 녹아 더 달큰해진 파도 있었다. 한 술 그득하게 떠서 밥 위에 슥슥 비벼먹으면 된다. 김치찌개는 워낙에 흔해 나도 제법 그럭저럭 먹을만하게 끓일 줄 아는데 엄마가 해주던 두부찌개는 한 번도 닮은 모양도 못 봤다. 두부조림을 만들다 집에 둘만 남은 애들 먹기 편하라고 두부를 다 으깨서 끓였을까? 그러다 그게 굳어져 우리 집 음식이 되었을까? 


내 두부의 원형은 엄마의 두부찌개다. 엄마가 해주는 두부찌개를 먹을 때는 몰랐다. 나는 두부를 별로 안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고 하기에는 눈앞에 있으면 그럭저럭 먹는다. 두부를 사면 항상 하나쯤은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이 지나 두어 달쯤 있다 끝내 버린다. 그 비슷한 맛을 흉내 내 보려고 노력했지만 항상 실패했다. 두부는 엄마의 찌개 맛인데 다들 맛이 없었다. 찌개나 국 속에 든 맹숭한 두부는 어쩐지 좀 비릿한 기분도 들고. 두부구이도 구운 두부에 켜켜이 양념을 올려주던 엄마 방식은 손이 많이 간다. 엄마는 맨 두부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나를 알고 있었을까? 그냥 두부만 덜렁 구워져서 밥상에 오른 기억이 드물다. 우리 집 두부는 두부찌개 아니면 양념 올린 구운 두부였다. 


그리고 싫어하는 걸 뒤늦게 알게 된 재료는 오이. 오이는 사람들이 시원하다고 얘기하는 그 맛이 나한테는 오이비린내가 된다. 산에 오르다 보면 커다란 고무 통에 오이가 둥둥 떠있는 모습은 정말 좀 싫었다. 엄마가 해주는 오이무침은 아삭하고 상큼하다. 엄마가 해주는 오이무침에선 오이 물 내가 안 났다. 난 심지어 오이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엄마의 빈자리는 싫어하는 식재료, 요리방법 같은 예상치 못한 것들의 등장으로 시작됐다. 다들 오이를 그렇게 비릿한 맛으로 먹는다고? 아니 오뎅을 그런 식으로 맛없게 볶아먹는다고? 빨갛게 조린 콩나물을 안 먹는다고? 엄마가 해주는 고등어 추어탕은 이런 맛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비리다고? 양파계란부침을 왜 안 먹지? 세상이 산산이 부서지는 일들이 매일 일어났다. 어떻게 해도 엄마가 해주던 음식 맛을 볼 수 없었다. 콩알이 살아있는 된장을 싫어하는 아빠 때문에 된장을 따로 담그던 엄마, 비린내가 안 나도록 멸치젓국을 두 번 달이던 엄마, 사람이 죽고 나면 장도 간다는데 말 그대로 장이 폭삭 내려앉았다. 그해 엄마가 담갔던 장을 몽땅 버렸다. 기억에 매달려 엄마가 해주던 맛을 곰곰 생각해 봤지만 엄마 밥 비슷한 모양이라도 흉내내기에는 내가 뭘 너무 몰랐다. 


한 날은 이모가 가게로 불렀다. 김치찌개였다. 


"이게 무슨 김친지 아나? 엄마 김치다. 마지막 국물까지 다 넣고 끓였다."


울면서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엄마 김치는 이제 세상 어디서도 못 먹겠지, 난 다른 집 김치는 못 먹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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