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신 죽여드려요, '플랜 75'

감독님의 의문이 왜 우리 몫이 된 걸까요

by 파로

일각에선 일본 사회가 한국 사회의 미래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여러 근거 중 한 가지가 출산율과 급격한 고령화이다.

한국에서도 매일같이, 꽤 오랫동안 다뤄지고 있는 고령화에 관한 문제는 양국의 공통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일본은 고령화가 심각하게 진행되어 부도가 나거나 도시가 비어버리는 현상이 만연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출산율이 세계 최 하위를 달리고 있는 우리나라도 이를 걱정하고 있다.


사회적인 고민은 문화에도 반영된다.


바로 일본의 고령화 문제를 다룬 <플랜 75>가 그렇다.


이 영화는 아주 가까운 미래의 일본, 심각한 고령화 문제로 국가에서 국민의 죽음을 지원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얼핏 들으면 굉장히 무서운 내용이지만 영화의 내용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동시에 정적이다.

거의 현시점에 '75세 이상 국민의 사망을 종용하는 국가사업' 만 적용한 수준에 불과하다.




<플랜 75>는 '본인의 죽음', 그리고 '가까운 사람의 죽음', 마지막으로 '완전한 남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진행된다.


그로 인해 관객들은 조금 더 다양한 시각으로 고령화 문제에 대해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단순하게 말하면 현재 노인인 사람들에게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이지만,

이것이 머지않은 나에게도 올 수 있는 현실이며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자각시켜준다는 것이다.


영화 속 곧 죽음을 맞이할 노인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그리고 그 느리게 가는 시간을, 감독은 굉장히 느리고 긴 템포로 스크린에 담아낸다.

어쩌면 답답하고 지루하다.

그러나 관객이 느끼는 그 감정은 스크린 속 그녀가 느끼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리라.


젊은 시절 열심히 세금을 내 가며 일해왔을 그들은 지금 나라의 세금을 축내는 존재쯤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회에서는 그들을 향한 범죄가 횡행하고,

정부에서마저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준다며 제도를 시행하고 나서 아끼게 된 국고에 대해서 뉴스에서 떠벌린다.


그들의 삶은 결국 그런 결말을 위해서 지금껏 달려왔던 것일까.

아무런 말 없이 시간과 호흡만 소비하고 있는 노인에게서는 그 어떤 생동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영화는 굉장히 차가운 이미지를 준다.


분명 저 제도도 사람이 만든 것일 거고 그 제도를 시행하는 것도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택한 죽음이 행해지는 병상에서 들리는 잡음은 너무나도 날카롭고,

비어있는 침대들은 딱딱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이렇게 감독은 쓸쓸하고 느린 템포로 본인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차례대로 보여주며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끊임없이 던진다.




근데 가만히 보고 있자니 참 게으른 방법을 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국가에서 진행하는 서비스라는 설정을 들여와 여러 인물들에게 그것을 현실로 구현시켜놓고 보여주는 것은 고독사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주는 그 현실보다 무디며,


스토리의 대부분을 '개인'으로 시야를 좁혀 놓는 바람에 그것이 '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되었다.


주제 자체는 누구라도 그렇듯 생각할 것이 많은 주제임이 분명하기에

오히려 내가 보고 있는 이 화면 바깥 상황들이 궁금하고,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는 인물의 내면과 생각이 궁금해진다.


그러나 감독은 끝까지 그것에 대해선 보여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결국 감독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있었으나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은 건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결국 그것들도 관객의 몫이 되었구나.


물론 이런 주제를 통해 관객들이 피부로 와닿지 않는 다른 연령층들에게 현실을 맞닥뜨린 노인의 삶을 직접적으로 조명하며 한 번 더 고민하게 하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수단이 너무 연약해 현실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기보다는 개개인의 선택에 대해 집중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만들어 내버렸다.

감독이 다루기에는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모든 것을 관객의 몫으로 넘기는 꼴이 돼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의적절하게 모두들 생각해 보아야 할 주제로 만든 영화임은 분명하나,

'여러분들이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설득력이 부족해 기발한 설정의 단순한 드라마로 끝나버린 느낌이라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어찌 됐건 간에 영화의 만듦새를 떠나서 나에게도 한 번쯤은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만들어 주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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