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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로 Apr 07. 2024

한국산의 저력, 넷플릭스 '기생수 : 더 그레이'

원작과의 차별화, 그리고 원작을 향한 존경을 담아내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시리즈 '기생수 : 더 그레이'는 일본에서 만화책, 애니메이션, 그리고 영화로 까지 큰 성공을 거둔 <기생수>를 원작으로 한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기생생물이 사람의 뇌를 지배하여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는 내용으로 꽤나 폭력적이고 잔혹하지만 재미있는 스토리로 한국에서도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시리즈이다.


이미 일본판 영화 리메이크작 <기생수>는 한국에서 영화로 파트 1과, 파트 2 모두 개봉하였었다.

파트 1의 관객수는 약 18만 명, 파트 2는 약 6만 명으로 흥행에는 참패하였지만, 원작 기생수를 좋아하는 이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다만 영화 <기생수>의 경우에는 내용이나 완성도 면에서 원작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이렇게 원작이 있고, 그 원작이 완성도가 높을 때 리메이크 작품들은 언제나 원작과의 비교를 당하고는 한다.


재현해 내는 방식이라던지, 스토리의 가감이라던지 하는 부분에서 가차 없이 평가를 당하며 원작을 능가했다는 이야기를 듣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상호 감독의 '기생수 : 더 그레이'는 애니메이션 <기생수>와도, 영화 <기생수>와도 다른 확실한 차별점을 보여준다.




감독은 이미 여러 방식으로 성공과 실패를 맛본 <기생수>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개편해 낸 듯하다.


 장르에 공포가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기생수 : 더 그레이'는 액션에 가깝다.

 리얼하게 구현해 놓은 효과를 한껏 활용하여 기생수들의 액션신을 실감 나게 담아낸다.

 그리고 <기생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수반해야 하는 잔혹성도 적절하게 섞어 내 장르적인 쾌감까지 더해준다.


  더불어 <기생수>의 영화판이었던 <기생수 : 파트 2>가 흥미로움을 모두 버린 채 신파와 이야기에 집착해 관객들에게 지루함만을 안겨줬던 점을 보완해 등장인물들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기생수>만의 잔혹하면서 차가운 매력을 골고루 분배하며 몰입감 있게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그리고 왜 원작과는 다르게 기생생물이 한쪽손을 지배하지 않았는지를 포함한 '원작과 다른 부분'에 대한 의아함을 숨 막히게 진행되는 빠른 속도의 이야기로 하나씩 척척 해결해 나가며 '기생수 : 더 그레이'만의 차별점을 하나씩 쌓아간다.


 동시에 관객이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과 의심을 확신으로 변화시켜 나가며 영화 <기생수>가 가지고 있던 단점을 커버하고, 절정에 다다라서는 원작과 성공적으로 연결시키며 마음속에 남아있던 자그마한 의심마저도 탄식으로 바꿔버리는 기획력을 보여준다.


 그것은 원작인 <기생수>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도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감독이 연상호라는 이유 만으로, 신파나 틀에 박힌 이야기로 실망스러운 작품을 만들어 내진 않을지 걱정하기도 하였다.

 그도 그럴게, <기생수>라는 원작이 가지고 있는 선을 넘는 잔혹성과, 함께 보여주는 기생생물의 미묘한 스탠스는 지금까지 그가 보여주었던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거나, 아니면 완전히 다른 결의 어떤 것이었다.


 그것을 감독은 자기식으로 적절하게 풀어낸다.

 잔혹함이나 차가움에서 오는 과함을 조금은 덜어내고, 이야기 구성은 조금씩 보완하며 '기생수 : 더 그레이'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에 서서히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이 몰입에는 배우들의 연기력도 한 몫 한다.

 인간의 몸에 기생생물이 들어와 뇌를 지배한다는 이야기의 특성상 같은 인물이 두 가지의 연기를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출연하는 배우중 어떤 한 명도 그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눈빛과 목소리 톤만으로도 '무언가가 바뀌었다' 라고 느끼게끔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줌으로써 보는 사람은 이 낯선 장르에 이질감을 갖기 힘들어진다.


결국은 원작의 콘셉트를 따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그것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이다.




많은 관객들이 원작을 먼저 접한 뒤 '기생수 : 더 그레이'를 시청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시작부터 원작과의 비교를 할 마음으로 1화를 재생할 것이고, 무언가 다른 설정들과 철저하게 한국식으로 변형된 이야기에 실망하며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중반부를 지나가며 기생수는 나오지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 진행만 시키는 것이 못마땅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넷플릭스의 자본력과, 공포영화 국내 역대 박스오피스 1위 <부산행>의 감독이 만나 빚어낸 돈 냄새가 풀풀 풍기는 이 매력적인 드라마의 이야기를 '개별 작품'으로서 끝까지 즐긴다면, 원작 <기생수>를 좋아하던 당신에게도 다른 종류의 만족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크게 성공해 버린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들의 성공 여부는 이미 그 작품을 접한 관객들을 어떤 방식으로 성공시키느냐에 따라 달렸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미 그 작품의 인지도와 기대감은 원작으로 인해 어느 정도 높아져 있는 상태이며, 리메이크작을 관람한다는 것 자체가 원작에 대한 만족을 한 상태라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기생수 : 더 그레이'는 아주 똑똑한 선택을 했다.


 <기생수>에 만족한 상태이고, 리메이크버전인 '기생수 : 더 그레이'를 시청하려고 하는 당신은 총 6화, 5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 간 수많은 감정이 들 것이다.

 어쩌면 '얼마나 잘 만들었나 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청을 하려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부분은, '기생수 : 더 그레이'는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다시 만든 작품이 아니며, 새롭게 만든 별개의 이야기로 접근하는 편이 훨씬 더 즐기기 쉬울 것이라는 부분이다.


 이렇게 '기생수 : 더 그레이'는 넷플릭스를 통해 원작과는 다른 한국산 콘텐츠의 저력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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