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니

운전 경력 5년

by 빠롤

나는 내가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줄 알고 20년을 넘게 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난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합니다. 잘못 알고 살아왔어요.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뒤통수가 얼얼할 정도였습니다. 나는 원래부터 비 오는 날을 좋아할 수도 있었는데. 다른 이유로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 운전을 시작한 뒤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 오는 날이라도 집에만 가만히 있을 수 있다면 비가 내리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차 없는 뚜벅이에게는 비 오는 날은 달갑지 않았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학교를 가든 출근을 하든 해야 하는데 난관이 많습니다. 가장 고역인 것은 냄새와 습도입니다. 그 꿉꿉하고 고약한 냄새와 습도. 헛구역질을 해가며 통학, 통근을 할 때면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지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그런데 운전을 해서 다니니까 비가 와도 꽤 산뜻한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가 있더라고요. 비 오는 날이 싫었던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게다가 비가 오면 세상이 깨끗해 지니까 오히려 비 오는 순간이 즐겁더라고요. 미세먼지가 심한 요즘엔 특히 더 그렇습니다. 비 오는 오늘이 지나면 내일은 공기도 시야도 깨끗하고 맑으니까요.


비가 오면 공기는 서늘해지고 풍경은 푹 젖어 있습니다. 촉각과 시각이 평소와 다르니 새롭습니다. 창문이나 차의 등허리나 우산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도 좋습니다. 특히 비에 젖은 사방에서 진한 냄새가 풍겨오는 것도 좋습니다. 젖은 땅, 건물, 공기. 운전을 하기 전에는 그토록 싫었던 것들이 아예 새롭게, 완전히 반대로 좋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나를 옥죄는 생활 방식이나 환경이 내가 무엇을 진정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제대로 알 기회를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환경만 조성되었다면 나는 더 많은 것들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즐기면서 살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슬픔과 스트레스를 혼자 감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던 어리숙한 나의 생각을 바꾸어준 사랑하는 친구로 인해 나의 삶이 이다지도 달라질 수 있었듯이요.


사람에 따라 자신의 슬픔이나 스트레스를 처리하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그것들을 참고 견디는 것이 좋은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어릴 적에는 그것을 몰랐고 나의 감정을 다루는 것에 서툴렀지요. 그래서 그냥 참기만 했습니다. 그때의 내가 어리석고 미련했지만 그때는 또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하고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고 견뎠습니다. 대견해요. 그렇지만 제가 나아갈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준 나의 친구가 아니었다면 나의 결과가 어떠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고등학생 때 처음 만났던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는 한결 내 고민과 걱정들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그 친구는 나에게 자신의 고민과 힘든 상황들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나는 고민과 걱정이 있더라도 속으로 끙끙 앓거나 타인에게 내 상황을 숨기며 살았기 때문에 그 친구가 나에게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충격이었습니다. 나는 나의 힘듦을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런 것들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용기 있고 그릇이 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그래서 나는 드디어 처음으로 내가 무엇이 힘든지, 왜 힘든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하고 나면 나의 고민과 걱정들은 한풀 기세가 꺾였습니다. 그냥 마음을 내 보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순간들이 있어요. 상대방에 진실로 나를 걱정해주고 나를 생각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요. 또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의 걱정과 고민들이 세상에 둘도 없을 정도로 어렵고 최악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됩니다. 종국에는 나를 짓누르던 나의 고민과 걱정들이 너무나 가벼워져서 친구와 그런 걸 주제로 농담을 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운전을 하고. 여태껏 해보지 못했던 것을 배우고. 또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나 운 좋게 만나고. 그러면서 내가 유연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으로해서 내가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원래는 좋아했다는 것도 깨닫게 되고요. 그럼 이제 앞으로는 더 유연해지고,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더 많은 것들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즐기면서 살아가기 위해서 또 새로운 것을 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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