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력 7개월
2019년 6월에 처음으로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는 근처에 수영장이 없다는 핑계로 시작을 않고 있었습니다. 수영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는데도요.
작년 초여름에 수영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그 해 초에 수영장이 바로 지척에 있는 곳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핑곗거리도 사라진 마당에 수영을 배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으로는 수영을 배워 보고 싶어 하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것은 나에게 운동과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서른 해를 넘게 살아오면서 수영을 배우기 전에는 정식으로 무언가 운동이라 할만한 것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특성상 동네에 최소 하나 정도는 태권도장이 있을 정도인데 어릴 때 태권도도 배워 본 적이 없었어요. 남들은 학교를 마치고 혹은 회사를 마치고 운동을 하러 간다는데 나의 경우엔 그저 집으로 돌아가 지친 몸을 누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타고나길 체력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체력이 좋지 않으니 운동을 배우거나 할만한 체력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더욱더 체력이 떨어지는 순환 속에서 30년 이상을 살았던 거죠.
내가 아직 20대일 때 직장 상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서른이 넘으면요. 3년이 1년처럼 지나가요.
과연 서른 살이 넘어보니 알겠더군요.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고 신체의 나이는 나의 정신연령보다 더 빠르게 먹는다는 것,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내 몸을 가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요. 그렇지만 지난 세월 운동이라곤 해보지 않은 내가 운동 시설을 내 발로 직접 찾아가 직접 등록을 하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을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해본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거기다 수영이라는 종목은 왜인지 초심자들에게 진입하기 어려운 장벽이 높은 종목이잖아요. 나만 그런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나는 용기를 내어 수영을 배워보기로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새로 이사한 곳 근처에 있던 수영장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에서 관리하는 규모가 꽤 큰 수영장이었습니다. 그래서 강습 신청 경쟁부터 너무나 치열했어요. 예전에는 무조건 선착순으로 정해진 인원만 받았기 때문에 신청하는 하루 전 날부터 수영장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신청을 할 때는 추첨식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경쟁률이 높다 보니 당첨되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이 추첨에서 몇 번 고배를 마신 후에야 나도 드디어 강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약간의 두려움은 이 간절함에 거의 희석되었습니다. 간절하게 얻은 기회라서 그런지 수영장도 엄청 열심히 다녔어요. 수영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전에 선착순으로 줄 서서 힘들게 기회를 얻으신 회원님들은 수업 안 빠지고 열심히 나왔는데 추첨으로 기회 얻으신 분들은 강습을 자주 빠진다고 하더라고요. 사람 마음이란 게 결국 그런 거죠. 나도 추첨에 떨어지지 않고 등록과 동시에 강습을 받았다면 마음가짐이 어땠을지 또 모릅니다. 아무튼 나에겐 아주 간절한 기회였기 때문에 아주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런 간절함도 수영을 열심히 다니게 한 원인이었지만 수영 자체도 너무나 재밌었어요. 그전까지는 물속에서 숨을 어떻게 참는지도 모르는 정도의 맥주병이었는데 점차 할 줄 아는 것들이 늘어나니까 이 재미를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은 선생님께서 우리 반에 한 번도 안 빠지고 개근을 하신 회원님이 있다며 그 회원을 불러다가 다 같이 박수를 쳐줬습니다. 그게 바로 나였어요. 일주일에 5일을 받는 강습이었는데 그걸 매일 나가고도 주말에 하루 정도는 수영장에 갈 정도였으니 내가 얼마나 수영에 빠졌는지 짐작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수영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수영인 빙고라는 것이 있는데요. 정확한 출처를 몰라 이미지를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5x5 표 안에 수영에 중독된 사람들이 해봤을 만한 것들이 적혀 있습니다. 수영을 7일 동안 빠짐없이 해봤다. 수영모자가 5개 이상 있다. 하루에 3번 수영을 한 적 있다. 해외에서 수영한 적 있다. 등등. 해봤으면 동그라미를 쳐서 얼마나 빙고를 만들 수 있는지 보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동안 수영의 재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수영을 하고 집에 와서도 매일 유튜브를 찾아보고 수영복 쇼핑을 하고 배우자에게 어떻게 하면 자유형 숨쉬기를 할 수 있는지, 체력이 느는지,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는지를 물어봤습니다. 배우자는 수영을 잘하거든요.
그러다 작년 추석 때 처음으로 오랫동안 수영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추석 연휴에 수영장을 개장하지 않으니까요. 그때는 추석 때 문 여는 수영장이 있으면 거리가 멀어도 가려고 했어요. 며칠을 수영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엄청 힘들었습니다. 고작 며칠인데 수영이 너무 그리워서 수영하는 꿈을 꾸곤 했어요. 지금 돌이켜 보니 거의 중독이 된 수준이었네요. 연인이 처음 사랑을 시작했을 때만큼 열렬히 수영을 사랑했던 것 같아요. 추석 연휴가 끝나고 수영장에 오랜만에 가서 물에 첨벙 뛰어들었을 때는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벽을 차고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가는데 가슴이 찌르르한 게 눈물이 날 것 같더군요.
그러다가 올해 초에 코로나 사태가 점점 심해지면서 2월 말에 수영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그때 접영을 배우고 있었는데 아무리 해도 접영을 잘하지 못해서 수태기(수영과 권태기를 합친 말입니다. 수영을 계속하다 보면 좀 질리는 시기가 있는데 그걸 수태기라고 부릅니다.)가 온 것 같다고 말하곤 했거든요. 그런데도 갑자기 수영장이 문을 닫아 버리니 연인에게 차이기라도 한 것처럼 허망하고도 슬펐습니다. 수태기는 무슨. 나는 아직도 수영을 너무나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죠.
수영장을 갈 수 없게 되자 지독한 짝사랑이 또 시작되었습니다. 거기다 덤으로 코로나 사태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나와 수영 사이를 방해하는 방해꾼이 몹시 싫었습니다. 나는 다시 수영장에 가는 꿈을 꿨고 다른 사람들이 수영장에서 찍은 영상을 찾아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개인풀을 이용할 수 있는 펜션 같은 것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하룻밤 묵는 데 50만 원 가량을 쓸 수 없어서 참았지만요. 다시 생각하니까 지독한 짝사랑 정도는 아니었나 봐요. 50만 원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사랑은 아니었네요.
수영장이 문을 닫은 지 두, 세 달 정도 뒤에야 수영장은 일부만 개장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 확진자 수 증가가 한 풀 꺾일 때였거든요. 강습은 하지 않았지만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인원만큼은 수영장에 들어가 수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일부 개장 소식을 듣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오랜만에 수영장에 갔는데 추석 연휴가 지나고 수영장에 갔을 때 느꼈던 그 느낌이 다시금 찾아왔습니다. 길었던 그리움을 해소하느라 가슴이 찌르르한 그 울컥한 감정이요.
그런데 왠지 내가 전과 다르게 시들한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 전처럼 열정적으로 수영장을 찾지 않게 됐어요. 열정적이지 않다 못해 한 달에 한, 두 번 가는 것이 겨우 일 정도로 수영장을 멀리 했습니다. 사람 마음이 뒷간 들어가기 전이랑 후가 다르다고 하죠. 딱 그거였습니다. 하지 못하니 너무 간절하다가 막상 하게 되니까 흥미가 뚝 떨어지는 그거요. 수영장 문을 닫았을 땐 열기만 하면 매일같이 갈 것 같더니 막상 문을 열어 놓으니 퇴근 후에 또 외출을 하는 게 너무 귀찮게 느껴졌습니다.
지금은 또 어떻냐고요? 코로나 확진자 수가 다시 폭증하면서 수영장은 또 잠정 폐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너무나 수영을 하고 싶은 거 있죠. 청개구리도 울고 갈 참 간사한 사람의 마음. 뒷간 들어가기 전과 후가 너무나 다른 인간의 습성. 이런 것들을 체감하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