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족 3년 차
나의 부모님이 내가 아이를 갖길 바라는 이유는 크게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람이 태어나면 응당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늙어가며 그렇게 사는 것이 순리이다. 그 순리를 지키지 않으면 하자 있는 사람 취급을 받게 된다.
2. 부부 사이에 사랑이 사그라들고 나면 같이 살 이유는 둘 사이의 자식뿐이다. 자식이 없다면 부부는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지 못한다.
3. 당신이 자식을 낳고 기를 때에 바빠서 잘해주지 못했으니 나의 자식이 태어나면 그때 해주지 못한 것을 해주고 싶다.
1. 성인이 돼서 연애를 하지 않으면,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아이를 갖지 않으면. 그리고 또 그 아이가 자라서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갖지 않으면. 사회는 그 사람을 하자 있는 사람 취급을 하곤 합니다. 부부가 사이가 좋지 않은가? 몸에 이상이 있는가? 그에 견줄만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가? 이러한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라 결정했을지라도, 여기에 내가 나의 의지로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전제는 없습니다.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아이를 낳고 싶은데 낳지 못하는 존재가 돼버리죠.
나의 부모님은 그러한 시선을 던지는 쪽에도 속해 있으면서 또 동시에 그 시선을 맞아야 하는 처지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자연의 섭리이자 순리를 따르지 않는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너무나 자연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생활 방식을 벗어나려는 내가 너무나 별종처럼 보이겠죠. 거기다가 남들이 나를 하자 있는 인간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을 또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당신들의 삶의 목표 중 하나가 자식을 번듯하게 키워내는 것이었을 텐데요. 자식이 순리대로 살아 하자 없는 인간임을 증명해야 하는데 그게 싫다니 어이가 없고 화가 날 지경일 것입니다. 그런 데다가 이제 딩크로 살겠다는 자식을 남들로부터 두둔해야 하는데 당신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척하고 남들에게 그 생활 방식을 설파하는 것은 또 얼마나 내키지 않을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이 부분은 정말 시간이 약이라는 말 밖엔 할 수 없습니다. 평생을 믿어온 진리와 같은 생활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죠. 내가 내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하니 결국 받아들여야 할 문제이고 부모님의 이해할 수 없음, 어이없음, 분노가 시간에 희석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2. 그리고 또 한 가지 부모님의 큰 걱정은 아이라는 존재가 없는 가족이 얼마나 원만하게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부모님의 결혼 생활에서 겪었던 숱한 풍랑을 헤치는 데에 자식이라는 존재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 짐작이 됩니다.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나를 설득하고자 할 때 꺼내는 첫 번째 레퍼토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은 서로 너무 좋고 사랑이 넘치지만 언젠가 사랑은 끝이 난다. 부부 사이에 사랑이 사그라들고 나면 같이 살 이유는 둘 사이의 자식뿐이다. 자식이 없는데 사랑이 끝나면 어떻게 부부 사이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나는 운이 좋아서 결혼을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운이 좋다는 의미는 내가 결혼을 해서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하자 있는 인간 취급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측면에서 하는 말입니다. 나는 원래는 결혼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거니와 결혼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살면서 그 사랑을 유지하고 갈고 닦아나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나의 부모님과 나의 생각이 같습니다.
사랑은 언젠가 끝난다. 그렇다면 그 이후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자식을 담보로 부부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너무나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자식 입장에서 매우 부담스러운 방법이죠. 이건 내가 겪어봤으니 잘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마치 부모님의 족쇄가 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사랑이 끝났다고 보는 순간에 나의 배우자와 헤어지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이 끝나더라도 부부 사이에 남은 것은 많을 테죠. 예의, 의리, 가족 간의 사랑, 우정, 인지상정(?). 내가 여기서 예의와 의리를 앞세운 것은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의 배우자와 앞으로의 인생을 잘 꾸려나가자고 약속한 마당에 사랑이 끝났다고, 어떤 위기를 맞닥뜨렸다고, 그때에 우리 사이에 자식이 없다고 해서 그 관계를 유지할 자신이 없다는 건 너무나 예의도 없고 의리도 없는 짓입니다.
하지만 여태 살아오면서 내가 나의 의지박약을 증명했듯이 지금 결심한 마음 가짐이라는 것은 얼마나 덫 없는 것인가요. 아이라도 있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 부부간에 예의와 의리를 지키며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겠지만 아이마저 없다면 변심하는 순간 실행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여기가 부모님의 걱정이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또 나는 나의 결심대로 살지라도 나의 배우자가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나의 부모님이 걱정하는 부분이 또 이런 부분일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내가 배우자에게 버림받을까 봐서요. 이 부분에서 나와 나의 부모님의 생각이 가장 다릅니다. 나는 배우자가 나를 떠나겠다고 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버림받을 수 있고 이혼할 수도 있습니다. 영원한 것이 없으니 부부가 헤어질 수도 있죠. 하지만 나의 부모님이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자 있는 인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인데. 이혼이라는 것은 또 그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인 일이겠습니까. 특히나 나의 부모님은 내가 이혼하지 않고 오랫동안 부부 관계를 유지하며 살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당신들의 삶이 그러했기에.
하지만 나는 아이를 담보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아닌 다른 목표를 가지고 부부가 함께 나아가길 바랍니다. 그로 인해 다소 불행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는 그저 나의 부모님이 나를 감싸주었으면 합니다. 부모님 말도 듣지 않고 내 마음대로 결정해 놓고 그 결과는 같이 짊어지자니. 이 얼마나 자식다운 발상입니까. 그러니까 나는 자식이죠. 부모님은 부모님이고. 그게 아니면 내가 부모님이게요.
3. 당신이 자식을 낳고 기를 때에 바빠서 잘해주지 못했으니 나의 자식이 태어나면 그때 해주지 못한 것을 해주고 싶다. 여기에 대해 내가 거부하더라도 부모님이 할 말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당신들의 욕심이니까요. 이 점에 대해서는 일언지하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잘라버렸습니다. 아니, 그러게. 나 어릴 때나 나한테 잘해주지. 왜 이제 와서 그러는데! 하며 부모님 가슴에 못 박는 소리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런 자식 낳을까 봐 애를 더 못 낳겠어요. 나 같은 거 태어나면 어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