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몸이 안 좋나?

딩크족 3년 차

by 빠롤

혹시 뭐 어데 아픈 거는 아이제?


하는 부모님의 물음을 시작으로 부모님과 대판 싸웠습니다. 아이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결혼 1~2년 차쯤에는 내가 아이를 갖지 않는다고 해도 아직 신혼이니 '지금 당장'은 그러고 싶겠거니 했을 겁니다. 그때도 나는 앞으로도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다고 정확하게 이야기를 했는데도요. 하지만 부모님은 흘려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1~2년이 흐르니 아이를 갖겠단 말은커녕 아직도 아이 가질 생각이 없다고 하니 본격적으로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분위기기 한참 좋았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의 아버지가 술기운을 빌려 그러더군요. 혹시 뭐 어데 아픈 거는 아이제? 무슨 의미인지 단박에 알아차렸지만 그냥 모르는 척했습니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게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겠죠. 결국 이야기는 원래의 목적대로 아이 문제로 흘러갔습니다. 정확히는 아이를 갖는 문제로요.


의견이 상충했고 나와 나의 부모님 사이에 결국 큰소리가 오갔습니다. 물론 나의 가족계획, 아이 계획이라는 것은 매우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다른 사람이 간섭할 부분은 아니지만 이게 칼로 무 자르듯이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긴 합니다. 나와 배우자가 의견을 맞추었다고 해서 나와 배우자 가족의 의견도 자동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아니죠. 매우 사적인 부부의 문제이지만 가족 관계로 얽힌 그들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현실적으로요.


저녁 식사자리를 아주 거하게 망쳤습니다. 약이 오르고 속상한 나는 울기까지 했습니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우는 걸 한 20년 만에 봤을 거예요. 마지막에는 울면서 이럴 거면 그냥 이혼하겠다고 소리쳤습니다. 내내 가시방석에 앉아 있었을 배우자에게는 웬 날벼락같은 소리였겠죠. 진심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나의 뜻이 그리고 나의 배우자의 뜻이 완고하고 확고하다는 의미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배우자는 나의 저 발언으로 상처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내가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나의 부모님이나 배우자의 부모님에게 허락을 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일방적인 통보였을 수도 있으니 더 기가 막혔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허락을 구할만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모든 것이 칼로 무 베듯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내가 딩크족이 되기로 결정하고 그것을 알렸을 때 나의 부모님이 나의 편을 들어주길 바랐습니다. 물론 당신의 자식이 미래에 그 결정으로 인해 후회할 것이 두렵고 걱정되겠지만. 걱정과 같은 일이 실제로 생기더라도 지금도 미래에도 그냥 나를 지지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내리사랑을 받는 자식이 할 수 있는 이기적인 생각인 것은 압니다.


이혼을 하네, 마네 하는 나에게 질린 건지 놀란 건지 각자의 의견 개진은 중단되었습니다. 울고 있는 나를 달래느라고 나의 부모님과 배우자가 모두 저에게 들러붙었습니다. 눈물을 닦으려는 내 손을 나의 부모님이 한쪽씩 잡아당기고, 나의 배우자는 내 등을 토닥여 주었습니다. 아니, 눈물 좀 닦겠다는데 그러지도 못하게. 힘은 또 어찌나 다들 센지. 뿌리칠 수도 없었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도 감정을 다 못 추슬러서 운전을 하면서 훌쩍였습니다. 옆에 타고 있던 배우자가 그러더라고요.


여보. 다음번에 어머님, 아버님이 또 뭐라고 하시면 그냥 내가 불임이라서 아이를 못 가진다고 해.


그러자 나는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했습니다. 나의 부모님이 나만 있는 자리에서 아이를 갖니 마니 뭐라고 했으면 모르겠는데 나의 배우자가 있는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 그리고 거기서 어른스럽지 못하게 감정적으로 대응한 것이. 그런 불편한 자리에 배우자가 있게 한 것이 너무 미안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미안하면 의기소침해야 되는데 왜 거기서 큰 소리를 치는지 모르겠습니다. 뻔뻔했죠.


아 됐다 마! 내가 안 낳는다면 안 낳는 거지! 거짓말할 필요 없다! 뿌라지면 뿌라졌지 내가 언제 호아지는 거 봤나?? (아니야. 내가 나의 의지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했으니 이제 와서 거짓말할 필요 없어. 부러지면 부러졌지 내가 언제 휘어지는 거 봤어?)


그건 그렇지, 하고 배우자가 그냥 가볍게 웃어주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그냥 눈물을 멈추고 같이 웃었습니다. 미안하고 고맙고 또 이 사달이 일어난 와중에 허세를 부리는 나의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냥 좀 마음이 후련하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한 번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거든요. 융통성 없어 보일지는 몰라도 그냥 나의 의지대로. 내가 원치 않아서.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이라고 거짓말 않고 당당하게 맞서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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