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키뉴 Apr 29. 2018

혁신이란 이름으로

요즘은 ‘잠자는 곳’이 있다더라. 집, 호텔, 찜질방 같은 데를 말하는 게 아니다. 선릉, 광화문 등 회사들이 모여있는 곳에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잠깐 나와서 잘 수 있는 그런 곳을 말한다. 얼마만큼의 돈을 내면 한 시간 정도 누워 잘 수 있고, 원하는 시간에 깨워주기도 하며, 나갈 때는 커피나 음료도 제공한다고 하더라. 얼마 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가 해준 얘기가 그렇다. 이 ‘잠자는 곳’은 대개 ‘휴식카페’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직장인들의 몇 명 중 몇 명이 수면부족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언젠가 본 적이 있다. 피로에 쌓인 직장인이 잠깐 쉬어 갈 수 있도록 만든 이곳은 하나의 ‘혁신의 산물’이라 불릴 것으로 보인다. 이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낼 때를 혁신이라 말할 때도 있지만, 대개 혁신이란, 스티브 잡스 마냥, 이미 존재했던 것을 이렇게 저렇게 비틀어 볼 때 비로소 이루어지니까 말이다. 적지 않은 직장인이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이 현상에서 누군가는 기회를 본 것이다.     


나는 사회인 축구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매주 잠실에서 공을 찬지도 2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런데 잠실에서 경기장을 빌리려면 적지 않은 회원들이 달라붙어 인터넷에서 ‘광클’을 해야 했다. 꽤나 귀찮은 일이라 회장은 경기장을 바꾸기로 했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구장으로 정했다. 나는 차가 없다. 차가 있더라도 운전을 할 줄 몰라 없는 거나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차가 없는 나로서는 매주 남양주까지 축구를 하러 다니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회원들과 정도 많이 들었고, 차를 가지고 있는 형님 A가 오갈 때 태워 줄 테니 탈퇴하지 말라고 한 것도 있어, 그냥 저냥 다니기로 했다. 나처럼 몇몇의 ‘뚜벅이’들만 빼면 다들 차를 가지고 있어, 경기장을 바꿔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어느 날 A는 내게 돈을 달라고 하더라. 오갈 때 기름 값이 더 들고, 나를 태우러 오려면 본인의 시간도 더 써야한다고 하더라. 게다가 내가 차를 얻어 타고 다니게 되면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어 절약분의 일부는 본인에게 돈으로 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 아니꼬웠지만 틀린 말도 아니고 A에게 나를 태워줄 의무도 있다고 우기기도 어려워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럴 것 같았으면 탈퇴하면 될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미 이 동호회에 정이 많이 들어 그런지 탈퇴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동호회에는 나 말고 다른 '뚜벅이'들을 돈을 받으며 태우러 다니는 또 다른 A들이 생겨났다. A는 혁신가(innovator)였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내 알 바 아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