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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끌 Oct 29. 2022

이제 뭐하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지


한때 주식에 올인했던 친구 A는 요즘 물류센터 알바나 포장 알바를 하고 있다. 하루에 땅 파도 나오지 않는 돈을, 십만 원 넘게 번단다. 친구는 이렇게 몸을 쓰는 아르바이트가 주식 손실로 어지러운 마음을 정화시켜준다고 말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외국인 노동자가 많다. 아무래도 한국인에게 작업 지시가 쉬워서 그런 건지 작업 반장(?)은 내 친구에게 맨날 나오라고 연락을 해온단다. 


친구는 여성이고 나보다 키가 조금 작고, 체력도 약한 편이다. 친구가 알려준 세계 덕분에 회사를 그만두고 지원해볼 수 있는 일이 늘었다. 친구처럼 손이 빠르지 않은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해볼 수 있는 일 후보 중에 물류센터가 있다니. 전에는 대학 졸업 후 사무직으로만 일했던 내가 빡세다고 소문난 분야 일에 도전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못했다. 그런데 오히려 경력직으로 이직해서 직급 달고 부담스럽게 일하는 것보다 그 길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지금 마음 상태로는 말이다.


퇴사 후 뭐하지? 일단 나는 아무것도 안 할 생각이다. 이렇게 마음먹어야 초조하지 않을 것 같다. 이미 마음이 자꾸 그림을 그리려 하기 때문이다. 재취업, 대학원...  갈 길과 분야를 가늠하다 보면 모든 미래가 다 흐릿해 보인다. 퇴사를 하는 이유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함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대신에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나는 책 읽고 글 쓸 때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사람이다. 남들 출근 준비하느라 바쁜 아침 시간에 근사한 드레스를 입고 한적한 카페 가서 목욕물처럼 뜨끈한 커피 한 잔 곁에 두고 마음의 양식을 읽어야지. 오후엔 볕 좋은 작업실에 가서 묵직한 엉덩이 힘으로 글을 써야지. 월, 수, 금 요일 저녁엔 만나고 싶었던 근사한 사람을 만나고, 화,목 요일 저녁엔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클라이밍을 배워야지. 서채현 선수처럼 공중에서 날아다닐 내 모습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뿌듯하다. 


현실은 볕 좋은 작업실 같은 것은 없고, 근사한 사람이 주변에 있을 리 없고, 학교 다닐 때 체육 실기 '미' 받던 운동신경 없는 사람이다. 아직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래도 힘이 좋아서 클라이밍 1회 체험에서 강사에게 칭찬을 받은 적은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봤다. 


*


하루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내가 울적한 이유 중에 몇 %가 내 개인적인 범위 밖에 있을까?


내 경우, 약 85%는 개인적 원인이고 약 15%는 사회적 원인 같다. 이 비율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난민이라면 99%가 사회적 원인일 것이다. 온라인에서 자신의 노출 영상이 떠돌아 고통받는 피해자도 역시 고통의 원인이 대부분 사회에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뉴스를 보는 게 힘들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많은 여성들이 강간을 당했다는 뉴스, 스토커에게 협박을 받다가 살해당한 여성 기사, 20대 제빵기사의 사망 소식. 신당역을 지날 때마다 눈을 감고 긴 한숨을 내쉰다. 뉴스에서 정치인들은 연일 페미니스트(사람들이 생각하는 페미니스트 이미지는 페미니스트 중에 극단적인 '래디컬'인데, 래디컬은 나도 동의하지 않는다) 척결! 을 외치고, 기사 댓글에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는 악마 취급, 성소수자는 괴물 취급, 외국인 노동자는 없는 사람 취급한다. 이런 사례들이 모두 내가 울적한 이유가 된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곳이 좋은 곳인지 잘 모르겠다. 뉴스 댓글을 보면 세상에 혐오주의자가 대부분인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혐오를 댓글로 드러내는 자'들을 혐오하는 나를 느낀다. 지구는 아름답지만 인류는 아름답지 않다. 아무래도 우리 인류는 하루빨리 멸종되어야 할 것 같다. 나는 내 개인적 문제가 나아져도 내 기분이 깔끔하게 좋아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어도 15% 가까이는 우울로 남아있을 것이다. 


심리 위기를 겪을 때 들었던 영상 중에 법륜스님 설법이 있었다. 그땐 목사님, 신부님, 스님 설교나 설법 다 들을 때였다. 어느 취준생이 정규직을 위해 회사를 그만둔 뒤 불안하고 우울하다 하소연했다. 그러자 스님이 욕심으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차갑게 말했다. 나는 상담자가 상처만 받을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노력한다고 해도 안 되더라.... 그러면 제도를 바꿔야겠지? 그러면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해야 돼요. 선배들은 가난할 때 뭐 했다? 우리가 잘 살아보자고 건설 투쟁을 했고, 잘 살아보자고 민주 투쟁을 했잖아요. 그런 것처럼 주택정책이 잘못되었다 그러면 정책 투쟁을 해야 해요. 누가 해줘요? 대학 다니는 비용이 너무 높다 그러면 등록금 투쟁을 해야 돼요. 아무것도 안 하고 불평만 하면 의미가 없다.... 이게 삶이란 거예요."


투쟁? 처음 들었을 땐 갑자기 웬 투쟁인가 싶었다. 그것도 스님이 투쟁을 종용하다니 신기했다. 신기하고 낯선 말이라서였을까. 뇌리에 남았다. 며칠 전에 읽은 책에서 사회학자 바우만의 말도 인상 깊었다. 근대가 '세계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야심만만한 시대였던 반면, 현대는 역사가 계속 되는 ''개선의 역사'라는 믿음은 좌절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세상이다. 기후변화도, 전쟁도, 내전도, 정치도 모두 개선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 같다. 우리 개인의 무능력, 무력감을 시험하는 장이 너무 많다. 너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고. 해봤자 안 되니까 착한 척조차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지난해 미얀마 난민을 위해 기부했다. 그때 SNS에는 미얀마 군부에 탄압받는 난민을 위해 기도하자는 글이 자주 올라왔다. 지금은 그런 글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얀마 문제는 잊혀 버렸다. 나도 올해엔 미얀마를 위해 기부하지 않았다. 언론에선 요즘 '클릭률이 낮은 이슈'인 미얀마 사태를 다루지 않는다. 그 속에 누군가는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데. 


미얀마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 성폭력 & 스토킹 범죄율 등은 나아진 게 없어 보인다. 투쟁은커녕 한 개인은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는 것 같다. (늦은 밤 울적해서 내 글을 찾아 읽을 사람들에게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


소액이지만 몇 년 동안 보호 종료 아동 자립준비를 위한 기부를 했다. 나는 자랄 때 부모님이 모두 살아계셨지만 스무 살부터 서울에서 혼자 살아가면서 고생을 좀 했다. 보호 종료 아동은 얼마나 더 힘들까 생각이 들어 기부가 가능한 곳을 검색으로 찾았다. 얼마 전에 내가 기부한 곳에서 문자가 왔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럴 때 무력했던 내가 조금 기운을 얻는다. '무력한 나'가 모이면 '무력하지 않은 우리'가 될 수도 있을 거라 기대해본다. 


사회변화는 기후변화의 '티핑포인트'처럼 다가오는 것 같다. 기후변화에서 '티핑포인트'는 안 좋은 의미다. 갑자기 균형을 이뤘던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그 지점'이란 의미. 내가 정의한 사회변화의 티핑포인트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한꺼번에 바뀌는 것과 같이 어느 날 갑자기 와르르 터지는 시점이다. 


'그 지점'에 닿기 전엔 전혀 변화가 없어 보인다. 계속 0이다 갑자기 1이 된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티핑포인트를 잘 드러내는 대표적 예가 아닐까? 해도 해도 안 된다 포기하면 변화 없는 0으로 끝나고, 꾸준히 함께 투쟁하면 어느 날 완전히 다른 세상 1이 온다. 우리는 무력하지 않다. 아직은 그렇게 보일 뿐.  


*  


노인이 지난날을 반추하듯 내게는 잦은 상상으로 이미 '오래된 미래'가 된 것 같은 시간이 있다. 퇴사 후 아무것도 하지 않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티핑포인트를 위해, 그리고 내 기분이 더 나아지기 위해 기회가 오면 취재도 할 생각이다. (나는 인권지 기자 경험이 있다.) 


세상에 티끌만큼만 존재해야지. 티끌인 나와 티끌인 당신이 모여 행복한 상상으로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덧 멀리서 볼 때 거대한 선이 되어 있기를, 절대 변할 것 같지 않던 세계가 티끌 하나로 1이 되어 있기를 빈다. 우리 모두가 좀 더 괜찮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신과 나의 불면이 이제 끝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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