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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끌 Nov 07. 2022

애도를 끝내며


"아무에게도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축하하고 싶지 않으니까. 생일도, 승진도, 사업도 그 어떤 좋은 일도 일어나지 말기를. 아니 우리에게 이젠 좀 좋은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즈음은 사양하고 싶다. 세상을 저주하고 다. 이토록 슬픈 일이 일어났으니.  


슬픔보다 더 큰 슬픔이 찾아왔다. 우리가 아무리 울부짖어도 그들은 우리 눈앞에 사라지고 없다. 나는 우리가 죽어서 티끌이 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런 믿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있는 나는 죽음이 가장 슬프다. 슬픔보다 더 슬픈 일이 '사라짐'이다.


그날 나는 밤 8시쯤 잠깐 이태원에 잠시 구경 갈까?, 생각했다. 분장한 사람들을 보는 게 재밌는 추억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전날 SNS에서 보니 아무래도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고, 내가 가면 이태원 물을 흐릴 것 같아서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밤 10시 넘어 집에 돌아와 씻고 SNS를 열었다가 10시 35분쯤에 뜬 영상을 보았다.


처음엔 할로윈 기념으로 하는 플래쉬몹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것은 너무 이상했다. 그래서 여러 개를 찾아 보았다. ...참혹해서 그 영상들을 여기에 묘사할 수는 없다.


나도 처음엔 '아니 사람 많으면 가지 말았어야지, 왜?', 라는 생각을 속으로 했다. 그런 생각을 속으로 하는 것과 겉으로 표현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겠지만 나도 당황했기 때문에 함부로 생각했다. 이런 압사사고는 상상도 못한 일이라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내 감정을 정리하기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안해졌다. 지난주 금요일 밤 이태원 참사 추모를 위해 한강진역 근처에서 내려 걸어갔다. 이태원역쪽으로 다가갈수록 몸에 한기가 돌면서 모터 돌아가듯 떨렸다. 추워진 날씨에 맞게 따듯하게 겹쳐 입고 왔는데도 그랬다. 현장 근처에서 향 냄새가 풍겨서 이곳이구나 싶었다. 코 끝으로 향 냄새, 술 냄새, 귤 냄새, 꽃이 시들어 가는 냄새 등이 섞여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눈 앞에 하얀 것들이 어른거렸다. 멈추고 보니 흰색 국화가 수천 송이 포개져 있었다.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꽃들 사이로 수많은 포스트잇이 자리를 잡았다. 참사 희생자의 가족이나 친구, 혹은 생존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글을 읽다 보니 콧물마저 눈치 없이 흐른다. 나는 몸을 떨면서 중얼거렸다.

"아무에게도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참사 현장엔 이번 사고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미안하다고 쓴 포스트잇이 많았다. 나도 미안해졌다. 처음에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기에 미안했다. 자신이나 자식들이 당했을 수 있는 사고인데도 함부로 지껄인 사람들과 내가 별반 차이가 없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수많은 영상을 구경꾼처럼 보기만 했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나같은 방관자가 모이면 참사에 대응할 시스템이 무너지는 게 아닐까 싶어서 죄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아서 미안했다. 요즘 우리는 제비뽑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엔 네가 죽고, 다음엔 내가 죽는 순서를 모르지만 언젠가 결국 불운을 맞는 제비뽑기를 다 같이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번엔 네가, 다음엔 내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겪게 되는 건 아닐까.


오늘 새벽에 꿈을 꿨다. 하얀 추모 공간 앞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그곳에 나는 없었고 내가 모르는 두 남자가 검정 양복을 입고 서 있었다. 누군가 흰 국화가 놓인 곳 앞에 서서 몇 달이 지나니 이젠 괜찮아졌다고 말을 했다. 편안한 얼굴이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마치 그제야 망각되었던 슬픔이 떠오른 듯 울음을 터트렸다. 방금 괜찮아졌다고 말한 남자는 그 울음소리를 담담히 듣고 있었다.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누구의 추모 공간일까, 궁금해졌다.  


꿈을 꾸고 난 후 오늘 한 번 더 이태원역에 찾아갔다. 1번 출구 주변엔 종소리, 목탁 소리가 울러퍼졌다. 며칠 전 밤에 왔을 때와 달리 스님이 앉아 있었다. 내가 불자는 아니라서 그런 건지 내겐 그 소리가 시끄럽게만 들렸다. 고인에겐 도움이 되겠지, 싶어서 시끄러운 마음을 눌렀다. 돌아서 걸어 사고가 난 골목 앞에 다가갔다. 그곳엔 찬송가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지금 이 와중에 두 종교가 경쟁하는 건가 싶었다. 목탁소리도, 찬송가도 내겐 위로가 전혀 되지 않았다. 인격신은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 있다면 이럴 리 없다.


희생자의 친구들이 갖다 놓은 물건은 며칠 전보다 많아졌다. 바나나맛 우유, 잭다니얼스, 담배, TOP 커피, 오예스, 인형, 귤. 물건을 보니 희생자들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들이 여전히 어딘가에서 달콤한 바나나맛 우유를 마시고, 오예스를 먹고, 인형을 끌어안고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잠시 상상했다.  


며칠 째 이곳을 지키고 있는 전경들에게 마음이 쓰이기도 했다. 또래가 처참한 일을 당한 곳에서 표정 없이 서 있는 일이 쉽지 않을 터. 짠한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그들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이태원역 한쪽엔 원래 오던 사람들인지 아니면 '대목'이라 찾아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전도를 목적으로 외치는 여성, 의족을 옆에 두고 구걸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슬픈 과거 역사를 담은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그런 스산한 풍경은 2020년대 눈 앞에는 펼쳐지지 않을 줄 알았다.


이태원역에서 지하철을 타면서 이제 애도는 끝내기로 했다. 충분히 울었다. 정부가 정한 애도기간에 따라가려는 게 아니다. 아무리 울어도 변화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진을 빼지 않고 힘을 비축해두어야 한다. 남은 힘을 참사 희생자를 위해 써야 한다. 앞으로 가끔 이태원이란 말에 아련해질 수도 있고, 할로윈이란 말에 뜬금없이 눈물이 흐를 수도 있고, 10월 말이 되면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질 수도 있다. 춤을 출 때, 음악을 크게 들을 때, 공연장에서 함성을 지르다가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들지도 모른다. 일상에 한 번씩 그렇게 무언가가 찾아올 때마다 우린 잠시 애도 하겠지만 진을 빼며 울진 않을 것이다. 당신들을 위한 힘을 남겨둘 것이다.


그래서 하늘에서 바나나맛 우유를 마시는 친구가, 오예스를 좋아하는 친구가 즐겁게 축제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그들이 축제가 끝나고 어둠이 왔음을 알고 슬퍼하지 않도록. 원통함과 분노로 지상을 떠돌지 않아도 되도록. 이곳에 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가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힘이 빠진 상태라 문장이 헝클어져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남은 기력을 모은다. 애도를 끝내기 위해서. 남은 우리가 이곳에서 해야할 일을 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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