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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끌 Oct 27. 2022

나는 차라리 다른 불행을 선택하겠다



어제도 우울하고, 오늘도 우울하다. 이 우울이 끝날 것 같지 않다.



몇 달 전 나는 이렇게 짧은 일기를 썼다. 길게 쓸 힘도 없던 어느 날. 모든 게 다 안 될 것 같고 매일 침울하기만 했을 때였다. 추락한 새가 힘없이 날갯짓을 하듯 안간힘을 썼다. 그럴 때 나는 온갖 시도를 다 해보았다.


처음엔 쉽게 벗어날 수 있을 줄 알고 검색어를 넣어 찾아봤다. 향기테라피라는 게 있다고 해서 베갯잇에 적셔두고 기분이 나아지길 기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만 아팠다. 유튜브에서 목사님, 신부님, 스님의 설교든 설법이든 범종교적으로 다 들었다. 아무리 들어도 안정을 찾기어려웠다. 심리전문가 영상도 찾아보고, 위로를 준다는 책도 읽었다. 당연하고 유치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 같았다. 기분이 나아지는 데 좋은 것들을 잔뜩 먹기도 했고, 두세 시간 걸어서 완전히 내 몸이 항복! 을 외치도록 땀을 내기도 했다. 30분 넘게 전속력 달리기도 했다. 이런 시도를 하면 잠시 좋아졌다가 다시 더 깊은 곳으로 빨려 내려 가는 것 같았다.


베를린에 유대인 학살 추모공원이 있다. '관'을 떠올리게 하는 2700여 개 직사각형 돌로 이뤄져 있는 곳이다. 나는 코로나19가 오기 전, 늦가을 어둑어둑한 시각에 그곳을 찾았다. 사전 정보 없이 관광지라 생각하고 혼자 찾아갔던 곳. 걷다가 보니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내 키보다 높은 관(벽)들을 만났다. 마치 죽음이 나를 압도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추모보다 먼저 '나의 죽음'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인가?'를 걱정했다. 검은 그림자들이 나를 막고 있는 이곳을 쉽사리 못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올해 들어 가끔 그때를 떠올리곤 했다. '혹시 지금 나는 내 관을 향한 내리막으로 향하는 것인가.'

  

이제와 생각하면 향기테라피, 심리 관련 영상이나 책 등 내가 했던 시도들은 모두 다친 날개를 치료하지 않고 하는 날갯짓일 뿐이었다. 마음이 아플 땐 마음을 고쳐야 하고, 마음이 아플 땐 아프게 하는 '그 원인'을 없애야 했다. 치료와 '그 원인' 제거. 이 두 가지를 둔 채 다른 방법을 수십 가지 시도해봤자 다친 날개로 하는 날갯짓일 뿐이다. 날개에 힘이 없으니 내리막길인지 알면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정말이지 꼼짝할 힘이 없었다.



마음이 아플 땐 마음을 고쳐야 하고, 마음이 아플 땐 아프게 하는 '그 원인'을 없애야 했다. 



우울은 정확히 우울이란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나는 의지와 욕망이 조금씩 하락했다. 처음엔 일시적인 줄 알고 내버려두었다. 그러다 익사 직전의 사람처럼 허덕이게 되었다. 지난해 말부터 나를 괴롭힌 스트레스가 몇 가지 있었다. 그중에 가장 큰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아는 데도 바닥에 가까운 기운으로는 선택을 못 내렸다. 결혼한 사람은 이혼이, 연애를 하는 사람은 이별이, 회사를 다니는 사람은 퇴사가, 취업준비생은 이 상태 연속이 가장 두려울 것이다. 이후에 어떤 삶이 펼쳐질지 모를 일. 어쩌면 더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중요한 선택을 하기 전에 미리 대비를 하면 가장 좋겠지. 하지만 내 경우는 의지가 약해져서 무언가를 대비할 수 없었다.


'의욕 없음, 자신감 없음'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무력감은 현재 진행형이다. 몇 달 전까진 더 심했다. 과대망상증처럼 실제 어려움보다 더 큰 관이 눈앞에 다가온 것만 같았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된다. 이 세상 일이 다 안 될 것만 같다


속으로 되뇌었다. 다 막힌 것 같다고. 그러면서도 낮엔 되도록 남들 보기에 멀쩡해 보이도록 행동하고 밤이 되면 울적한 기분에 젖어서 무언가 읽을 것, 들을 것을 찾아헤맸다. 전에 즐겨 들었던 음악이 더 이상 좋지 않았고, 전에 재밌게 읽었던 책들이 그저 따분하거나 어렵게 느껴졌다. 책을 펴도 이해가 안 되어서 좋아하던 분야 책을 한동안 즐기지 못했다. 무슨 짓을 해도 잠들기 어려웠지만 마음 일기를 쓰는 대신 유튜브 유머 영상이나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잠시나마 웃고 싶어서. 돌이켜 보면 나를 가장 외면한 존재는 다름 아닌 나였다.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면 더 우울해질 것만 같았다.  


지금은 좋아졌다. 그래도 작년에 내가 가진 평균 의욕이 10이라면, 현재 3 정도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까진 내가 의욕이 있고 내면이 강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강했을 때를 기준으로 삼지 않기로 했다. 상담사가 그랬다. 그때를 기준으로 두지 말라고, 그때보다 시간이 흘렀고 경험도 달라졌다고. 생각해 보니 그랬다. 내가 가장 밝고, 힘이 넘치고 잘나갔던 때를 기준으로 삼고 적어도 거기에 올라가야 한다고 다짐했던 '절대기준'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바닥을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바닥이었을 때보다는 의욕이 두 칸쯤 올라섰다. 그러니 만족한다. 그 덕분에 나는 스스로 '선택'도 할 수 있었다. 가까스로 내 의지를 끌어 당겨서. 내 선택으로 스트레스 중에 가장 크게 차지하는 '그 요인'을 제거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선택의 근거는 두 가지다. 마음 아픈 일이 6개월 이상 계속되었고, 내 몸이 좋지 않은 상태이므로. 만약 내가 선택하지 않았다면 나는 뇌졸중에 걸렸던 아버지처럼 중환자실에 실려 갔을지도 모른다. 두통이 몰아쳤으니까.


두렵다. 이 선택이 어쩌면 다른 내리막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 내가 추락하고 있는 길이 아닌 다른 내리막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로 내게 다른 병이 생길지도 모른다. 설사 그렇게 될지라도 차라리 나는 다른 불행을 선택하기로 했다. 다른 불행도 다른 경험이니까. 내 스스로 내 운명의 커팅식을 하고 싶었다.



지금 내가 추락하고 있는 길이 아닌 다른 내리막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지난번에 언급했듯이 나는 뒤늦게야 상담사를 찾아갔다. 전문가에게 일찍 SOS를 했다면 더 빨리 나아졌을 것이다. 우울이 머리에 우울이란 이름표를 붙이고 다가올 줄 알았기 때문에. 


상담사는 늘 오늘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나는 그 질문에 매번 '괜찮다'라고 답하거나 '좋다'고 얼버무렸다. 그런 게 예의인 줄 알았다. 오랜 만에 만난 누군가가 내게 '잘 지내?' 하고 물으면 '아니 나 못 지내', 라고 대답하지 않으니까. 그런 말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좋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 어려워했다. 나는 내 마음과 참으로 친하지 못한 상태였다.


상담을 몇 회 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이해하고 기운도 차렸다. 7회쯤에 상담사에게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내게는 회사가 '그 요인'이었다. 많이 사랑한 곳이었기에 퇴사 결정이 어려웠다. 퇴사 후 벌이도 걱정되었고, 일 외엔 사람 만나는 약속을 별로 잡지 않는 내성적인 사람이라 인간관계가 다 끊어지는 것도 두려웠다. 상담 덕분에 그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결론을 내렸다. 변화를 위한 선택을 하기로 했다. 현재 상태가 계속되면 안 되었다. 나는 방백하듯 상담사가 유도하는대로 혼자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말했다.


"전에는 너무 두려웠는데 생각해보니 저는 씀씀이가 크지 않으니까 하루에 10만 원만 벌면 충분할 것 같아요. 저는 제가 하루에 10만 원은 벌 것 같거든요."

"그만 두면 무슨 일을 하실 건데요?" 상담사가 물었다. 

"음, 전에 했던 기자 생활을 할 수도 있고, 에디터를 할 수도 있고, 제 친구처럼 물류센터나 포장 알바를 할 수도 있고, 옛날에 알바 해봤던 콜센터를 나갈 수도 있고, 책을 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면서 스스로 놀랐다. 이성은 내게 물었다. '이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인가.' 마치 내 무의식이 혼자 미쳐 날뛰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그(무의식)가 내게 이렇게 말한 것 같았다.

'그만 스트레스받고 때려치우자, 알바를 하면 하루에 10만 원, 그 정돈 네가 벌 능력이 있어. 인간관계는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서 무너지지 않고 새 터전에서 또 쌓으면 돼. 때려치워!'

내 무의식과 달리 이성적인 나는 외쳤다. '기자? 에디터? 좋아하시네. 알바 자리라고 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도 미친 의지를 가진 무의식이 그렇게 말해준 덕분에 나는 '일주일에 인간 두 명은 만나자, 하루 10만 원은 벌자!', 라는 모토로 삶을 그리고 있다. 한 달 전보다 의욕이 1%쯤 상승했다. 하지만 여전히 '(헛된)희망금지, 좌절도금지'다. 


어제는 우울했지만 오늘은 우울하지 않다. 아무래도 이 우울은 달라질 것 같다. 나는 새로운 내리막길을 선택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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