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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끌 Oct 23. 2022

그 시간들을 어떻게 다 견디셨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한동안 가 사는 서울 집에서 함께 살았다. 엄마는 고향에 친구가 많은 편이다. 왜 연고도 없는 서울로 올라왔느냐고 물으니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서울 생활에 적응하고 난 후에야 하는 말이 남편이 죽은 걸 아는 사람들이 엄마를 불쌍하게 본다고, 그게 싫었단다. 정작 엄마는 빨리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주변 시선이 부담스러워 괜찮은 척도 못했던 모양이다.


엄마는 몇 년 동안 서울에서 보냈다. 고향 사람들 사이에 엄마가 '과부'란 인식이 사라질 무렵에야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나는 가끔 엄마의 표정을 상상하곤 했다. 시장통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니 친구가 손을 덥석 잡으며 '아이고, 요즘 얼매나 힘드노?' 라고 묻고, 엄마의 표정은 굳어졌겠지. 나도 고향을 떠나고 싶었을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빠른 회복을 꿈꾸니까.


*

 

이야기를 들어온 심리 상담사는 이렇게 되물었다.

"그 시간들을 다 어떻게 견디셨어요?"

처음 이런 반응을 들었을 때는 잠시 머뭇거렸다. 속으로 되물었다.

 '내가 상담사가 보기에도 힘든 생을 살아온 건가?'

생각해보니 객관적으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제야 누군가 내 평탄하지 않은 생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목이 메었다. 그날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몇 달 전 동네 산책 중에 심리지원센터* 플래카드를 보고 전화번호 사진을 찍어두었다. 상담을 받아봤자 내가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 번', 이란 생각에 연락했다. 첫날 상담 신청서를 적는 문항에서 '상담에 대한 기대'에 나는 '잘 모르겠다'라고 적었다. 기대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니까. 그런데 결과는 생각보다 좋아서 이번 심리상담을 통해 얻은 게 많았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이 특히 좋았다. 너무 가슴이 아파서 회피했던, 마음난독증을 겪었던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말을 하다 매번 눈물을 쏟아내는게 민망했지만 그런 과정도 마음을 정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나는 나름의 생존을 위해 이런 성격을, 살아남기 위해 이런 습관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섯 번째 상담에서도 선생님은 내 이야기에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 시간들을 다 어떻게 견디셨어요?"

나는 이번엔 그의 위로를 거부했다. 그때는 내가 스스로 회복기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내 말에 동감해주는 그에게 고마워하는 대신에 이렇게 말했다.


"아니요, 저는 괜찮게 살아왔어요."


실제로 생각보다는 그리 우울하지 않게 살아왔다. 그에게 내가 털어놓은 건 내 인생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더 우울한 일이나 슬픈 일이 열 배는 더 있었다. 하지만 기쁜 일도 그만큼 더 많았다. 내가 겪은 일들이 내겐 특별한 슬픔일 수 있지만 거기에 매몰되면 계속 자기연민으로 심장에서 물이 샐 것만 같았다. 물은 눈에서만 흘러야 했다. 심장이나 집에서 누수가 발생하면 고장이고, 이것을 계속 방치하면 마침내 주인이 죽는다.




"아니요, 저는 괜찮게 살아왔어요."




내겐 좋은 친구가 있고, 좋은 남자친구도 있었고, 형제자매도 있고, 어머니도 있고, 청소년기까진 유복한 집안이었고,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도 많다. 내게는 저축해놓은 추억 자산이 많다. 슬픔과 기쁨을 대차대조표에 기입해본다면 아직 크게 적자 인생 아니다. 그러니 아직 괜찮다. 아니 잠시 괜찮지 않았지만 앞으로 나는 괜찮을 것이다.


나는 내가 다 나았다고 생각해서 이런 반응을 보인 게 아니었다. 몇 번 상담했다고 잠깐 희망을 가진다면 다시 쉽게 좌절하기가 쉽다. 나는 잘 알고 있었고, 두려웠다. 빠른 회복을 향한 욕망과 희망을 조심 조심 다스리는 중이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마치 '좌절금지!' 표어처럼 '뒤에 더 큰 게 올지도 몰라! 희망조심!', 하고 되뇐다. 하지만 회복을 위한 노력은 하고 싶었다. 그동안 나는 마치 죽은 영을 위로하듯 내 지난날을 상담 때마다 눈물로 위로해주었다. 불교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도 49재 즉, 49일째엔 끝낸다. 살아있는 내가 지난 내 시간에 대한 위로를 이만큼 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간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해. 이제는 잘 가!'


내가 위로를 거부하고 싶었던 또 다른 이유는 내 인생이 앞으로 내리막만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상담사 선생님은 매뉴얼대로 한 명의 환자로 나를 대하고 위로해주는 데에 초점을 맞추느라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곳을 나가면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 내가 지금부터 나를 불쌍히 여기고 스스로 '맞아, 난 힘든 생을 살았어!' 하고 자기연민에서 몇 달 동안이나 나오지 못하면 앞으로도 회복이 힘들 것 같았다. 주변 연민 어린 시선이 싫어 고향을 등졌던 엄마처럼 나는 내가 스스로에게 보내는 연민 어린 시선을 끊어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야 했다. 물론 앞으로는 내 마음속 어린아이를 외면하지 않고 보살필 것이다.


미래 지금보다 나아질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벌써부터 지난 내 삶이 최악이라 여기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털어낸 후 앞으로는 '마음과 내'가 함께 잘 지낼 생각을 해야 했다. 내 마음이 감추고 둘러싸고 있 축축한 이불을 조심스럽게 벗기고 볕을 쬐도록 해야 했다. 두렵지만. 나는 괜찮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이젠

잘 자, 내 우는 사랑**






* 대부분 지자체에서 무료로 심리치료를 도와주는 센터를 갖추고 있다. 직장인이라면 회사에서 심리상담을 지원해줄 수도 있고, 노동부에서 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데이먼스 이어'의 노래 'josee!'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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