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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끌 Nov 28. 2022

고래, 새우, 바다

일요일이면 찾아가는 호수가 있다.

바다를 가장 좋아하지만 서울에서 바다까진 머니까 대신 호수를 찾는다. 별다른 동요 없이 햇살도, 오리도, 잉어도, 수초도 심지어 동네 주민들도 온전히 받아 품는 호수. 그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월요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 생기는 긴장을 푼다.


오늘은 호수 표면에 빛이 스며드는 걸 보며 세상의 티끌들을 향해 기도했다.

'앞으로 어떤 갈등 상황에 내가 원치 않게 끼는 일이  없었으면. 내가 감당할 만한 건강한 괴로움만 일어났으면.'


성경에서 제일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욥기다. 왜 갑자기 죄 없는 욥에게 재앙이 오는 건지. 그래 놓고는 신의 깊은 뜻인양 포장하는 게 어이없었다. 이미 온 불행은 다시 되돌릴 수가 없다. 나 같으면 원한이 서릴 것이다. 뮤지컬 지저스크라이스트슈퍼스타에서 가장 와 닿는 부분은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냐는 예수의 울부짖음이었다. 부활해봤자 너무 아픈 삶을 살다간 예수다. 타인들을 위해 대속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자신이 가장 불행했는데.


우리가 겪는 아픔 대부분이 곱씹을수록 의미가 없다. 그저 마음 한 편이 아플 뿐이다. 더 강해졌을지언정 더 행복해지진 않았다. 신의 뜻이란 말보다 차라리 '삼재'라고 하면 납득이 될 것 같다. 삼재를 지나면 나아진다는 의미니까.


이젠 나도 호수처럼 잔잔해지고 싶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2화의 한 장면.

회장이 손자에게 질문을 한다.


"1등과 2등 싸움에서 3등이 이기는 걸 '어부지리'라 캤다. 맞나?

반대로 이런 속담도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그라믄 새우가 어부지리로 고개를 이기는 방도는 없겠나?"


이 영상을 유튜브에서 클립 영상으로 접하고는 넷플릭스로 해당 화를 찾아봤다. 손자가 뭐라 답했을지 궁금해서. 나중에 손자의 답변은 '새우의 몸집을 키운다'였다. 그게 맞을까? 새우가 몸집을 키워봤자 뚱뚱한 새우가 될 뿐.


회장의 질문은 올해 내가 줄곧 해온 질문이기도 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지?'


나는 아무래도 내가 새우 같았다. '어떻게든 고래가 화해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해야겠다', 결심했다. 나는 평화주의자인 척 아무도 안 다치는 법을 모색했다. 그건 내가 가장 안 다치는 방안이기도 했다. 1년 후. 고래들은 여전히 화해하지 않았다. 남은 건 새우의 상처뿐. 환멸을 느낀 새우는 오랫동안 자란 바다에서 스스로 나오기로 했다.


회장이 내게 묻는다면 나는 다른 답을 낼 것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지 않으려면, 새우가 고래가 되는 겁니다."

어차피 속담 세계에선 새우도 고래도 다 은유니까. 앞으로 새우가 고래로 탈바꿈하면 된다. 고래로 변신하면 이기기가 쉬워진다. 지금은 상처만 받고 나오는 새우 신세지만 3년쯤, 5년쯤 뒤엔 고래가 되기로 하자.


다른 방법도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지 않으려면 새우가 힘을 합치는 겁니다."

모이면 힘이 세지는 법. 새우가 고래 크기만큼 수를 모아 힘을 합치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일이 없어진다. 대개 군집을 이뤄 살아가는 까마귀는 독수리가 먹이를 잡으러 자기 영역 근처에 오면 떼로 몰려와 자신보다 몇 배 덩치 큰 독수리를 쫓아내 버린다. 내가 힘이 자라는 속도가 더디면 나와 같은 새우들을 모아서 방어막을 형성하면 된다.


그런데 아무래도 고래 싸움이든 새우 싸움이든 간에 모든 싸움을 비웃는 존재가 있을 것 같다.

바다.

바다는 자신에 비해 쬐그만한 고래끼리 힘 경쟁을 하는 게 얼마나 가소롭겠는가, 그것보다 더 작은 새우가 안 죽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건 또 얼마나 웃기고 애처롭겠는가. 기왕 은유라면 고래, 새우, 고등어, 갈치, 멸치, 문어, 산호초 등 모두 숨도 쉬고 놀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는 바다로 변하면 좋을 것 같다. 바다가 되어 싸우는 것들, 안간힘을 쓰는 존재들을 보며 '그래 봤자 너는 결국 고래일 뿐이다, 새우일 뿐이다' 하고 다 비웃어줘야지.


나는 바다. 지금은 한두 명 품는 . 작은 호수에서 출발해 결국 바다가 되어야지. 쓸데없이 내 안에서 싸움질하밖으로 쫓아내야지. 나는 엄한 바다. 다는 하기도 강하기도 한 이빨, 파도를 만들었지. 내 바다는 이빨로 플라스틱, 페수도 쫒아낼 거야. 바다는 계속 흘러가다 자신이 바다인 줄도 모르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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