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크라이포미.
내가 '돈크라이포미아르헨티나'의 에바 페론도 아니고 실제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도 요즘 무의식 중에 자꾸만 이런 생각을 한다. 돈크라이포미.
회사에 사직 의사를 밝힌 이후 틈틈이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내 퇴사가 그들에게 걱정거리가 될까 봐 두려웠다. '남들에게 걱정 끼치는 게 싫다.' 이런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다. 첫 회사였던 대기업에서 퇴사했을 땐 그게 싫어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들켜서 더 일이 커졌다. 요즘은 퇴사 후에도 출근한 척하는 가장의 기분을 알 것 같다. 대출로 아직 월급을 받고 있는 척하는 퇴사자의 마음도 알 것 같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걱정거리가 될까 봐 그런 거겠지.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것이었던 회사에서 탈락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았으리라.
만약 곁에 심리상담사가 있다면 아마 어릴 적부터 알아서 잘해서 엄마에게 잘 보이려는 습관이 굳어져서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도 주변 눈치를 보는 것이라고 진단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난 이렇게 생겨먹었고, 주변이 신경 쓰이는 사람이다.
나는 대학 졸업 전부터 누군가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아왔다. 나름대로 독립심이 강한 편이었다. 나의 '온전함'을 자랑삼아 자라왔다. 퇴사를 하고 쉬는 기간에도 아르바이트로 버텼고 퇴직금이 바닥나기 전에 다시 재취업을 하곤 했다. 그래도 가족이나 친구들 중엔 나를 걱정하는 이 있으니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돈크라이포미.'
며칠 전 친구에게 곧 퇴사할 거라 말하니 이렇게 되물었다.
"그럼 이제 뭐 할래?"
의사, 변호사, 회계사 같은 전문직에 종사한 게 아니니 당연히 물을 수 있는 일. 내 대답이 뚜렷하지 않으니 그는 더욱 걱정해주었다.
"그냥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네 잘못이 아니잖아. 나가면 전쟁터라잖아."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내가 얼마나 어설픈 존재인지를 상기하게 되었다. 그의 말에 나쁜 의도는 없었다. 나도 친한 친구가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 말하면 처음엔 그런 조언을 했을 것 같다.
우리는 타인의 불행을 당사자보다 미리 재단하려 한다. 가령 멀쩡한 회사에서 퇴사하면 불행해질 거라는 짐작과 우려처럼. 그들의 우려는 타당성이 있다. 한국에서 여성이 재취업하긴 쉽지 않으니까. '현실'이 그렇다.
그런데 나를 가장 걱정하는 존재는 결국 나이다. 퇴사는 나를 가장 잘 아는 나의 선택이고. 설령 불행한 결과가 오더라도 그것까지 내가 짊어질 일이다. 나가서 다른 고민으로 울지언정 더 이상은 같은 고민으로 울지 않기 위해 그만두는 것이다. 남들이 이제 뭐 할 건데?라고 물어도, 설사 '걱정거리' 취급당해도 마음속에 내가 나를 지지하고 나아가려고 결정한 일. 밖이 '전쟁터'란 현실을 모를 나이가 아닌 데도 오랜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이다. 걱정 끼치는 것 끔찍이 싫어하지만 입술을 깨물고 생각한다. '뭐, 한동안 걱정거리 되지뭐.'
내 미래를 걱정해주는 그들의 질문은 대개 명사이다.
"뭐할 건데?"
안타깝지만 그 명사는 나의 행복한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한다. 나는 재취업, 이직, 자격증 등의 명사를 가족이나 친구에게 말하면서 그들을 재빨리 안심시킬 수 있다. 내 밝은 미래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명사가 나의 행복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가령 내 다음 직업이 대통령이어도, 공주여도, CEO여도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의미가 없는 일. 내가 원하는 미래는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다.
나는 오래전 첫 회사에서 퇴사하기 전,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기를 2년 넘게 숙고했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 그리 오래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만큼. 그런 후에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그때 내 친구가, 내 가족이 이렇게 말해주기를 꿈꾸곤 했다.
"잘했어! 갈수록 안색이 안 좋아 보여서 걱정했는데 잘했어! 맨날 자정 너머 퇴근했다며? 너 자신이 중요하지 뭐가 중요하겠어? 너는 00 재능이 있으니 잘 될 거야. 혹시 힘들면 연락해. 내가 언제든 밥 사줄게!"
실제로 친구에게 밥을 얻어먹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다. 그저 누군가가 내 든든한 지지자가 되겠다고 선언해주길 바랐다. 누군가가 내가 항상 네 곁에 있으니 언제든 연락하라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할까? 그래서 내 친구가 비슷한 처지일 때 나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잘했어, 너 자리 잡을 때까지 내가 열 번이든 스무 번이든 밥 사줄 테니까 언제든 연락해! 내가 곁에 있다. 있어."
이번에도 고민 끝에 퇴사를 하게 되었다. 이번엔 도둑질처럼 감추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가능한 미리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들에게 내가 원하는 말을 듣기를 바라진 않는다. 걱정부터 나오는 게 당연한 일. 그리고 걱정하는 그들에게 말해두려고. "내가 무엇을 하든 지금 이곳보다는 기쁘게 살게. 그러니
돈크라이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