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사이에 극단적으로 글 분위기가 바뀌어도 될까?
사실 요즘 괜찮다. 누군가 요즘 어때?, 라고 물으면 전에는 건성으로 '괜찮아' 혹은 '좋아' 라고 대답했다. 이젠 진심으로 '괜찮아' 라고 말한다. '좋아'라는 대답보다 '괜찮아'란 대답을 하는 편이다. 난 괜찮으니까.
괜찮다.
괜찮다는 '좋다'와 '나쁘지 않다'의 중간쯤에 있는 말 같다. 어떤 과정에 있는 말. '좋다'는 말보다 좋아지는 과정에 있는, 더 긍정적인 말 같다. 때론 나빠지는 과정 위에 서 있기도 한다. 그럴 때도 난 '괜찮다'라고 말한다. 나쁜 상태의 확정은 아니니까. 어느쪽이든 과정에 있는 말이 좋다. 고정된 행복도 불행도 아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상태이지만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상태. 내게 요즘 괜찮다는 말은 좋은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0.1 정도씩 좋아지고 있다. 적은 숫자지만 모아지면 밤하늘의 별처럼 큰 수가 될 수 있다.
불면증은 여전하지만 걱정이나 초조함은 거의 사라졌다. 여전히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버릇처럼 남은 예민함 때문이다. 그 외엔 다 좋아지고 있다. 두통도 없고, 갑상선 수치도 좋아졌고, 빈혈도 사라졌다. 이건 좋은 징조는 아닌데 살이 올랐다.
요즘은 9시나 10시쯤 느지막이 일어나 밥을 차린다. 퇴사 전엔 스스로 밥 차리는 일이 없었다. 배달의 민족 앱은 나의 친한 친구였다. 게으른 천성이야 여전하지만 이젠 밀키트라도 챙겨 먹고 집을 나선다. 전날 찜해둔 책 한 권 들고, 역시 전날 찜해둔 카페나 장소에 간다. 하루하루 여행 중이다. 전에 한 번 가보고 좋았던 곳을 다시 가기도 하고, 완전히 낯선 지역에도 가본다. 지도에 안 가본 곳을 여러 개 찜해두고 당일치기로 도장깨기 여행을 한다. 혼자 여행이지만 외롭진 않다. 저녁에 약속을 잡아두었기 때문에. 사람 향기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사람들을 적당히 만나고 있다. 만나는 사람들 중엔 친구도 있고, 친구는 아니지만 모임이나 옛 직장에서 가까워진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을 자주 만나진 않지만, 아예 만나지 않으면 삶의 균형을 잃을까 싶어서 굳이 약속을 잡았다.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미소를 머금고 행복 전도사처럼 말한다.
"퇴사하세요!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집니다."
상대는 그런 나를 부러워한다.
지난주엔 이제는 어떤 글을 써야할지 생각하다가 시간을 놓쳐버렸다. 마음에 맺힌 게 거의 사라지니 글감도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고정 구독자가 겨우 10명 정도인 것 같지만 적다고 소중하지 않은 게 아닌데, 게다가 브런치에 익명으로 글 쓰는 게 재밌는데. 문제(?)는 내가 행복해지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늘 행복한 사람은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고, 훌륭한 음악을 작곡할 수 있고, 춤을 잘 출 수 있지만, 좋은 글을 쓰긴 어렵다. 작가는 글에서 희로애락이 배경처럼 묻어나온다. 그래서 작가는 늘 지금 아픈 누군가를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나 보다. 0.1씩 나아가는 사람뿐만 아니라 0.2씩 미끄러지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새해가 되었다. 새해 첫 해돋이를 보러가진 못했지만 새해맞이 간절곶해빵을 주문했다. 해처럼 생긴 빵을 먹으며 새해 소원을 빌고자. 내 생이 좋아지는 과정에 놓여있기를, 늘 더불어 사는 삶을 생각하기를, 불행 위에 붙박이로 고정되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단지 과정 위에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되기를, 우리가 설혹 0.1씩 미끄러질 일이 있어도 0.2씩 좋아지거나 최소한 나아갈 힘이 생기기를.
새해 우리는 다 괜찮아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