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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끌 Jan 29. 2023

더 나은 삶은 세상의 모든


무의미한가?

어제도 오늘도 비슷하다. 가정이 있는 사람은 맨날 똑같은 가족 간 대화나 침묵을 듣는다. 직장인은 매일 같은 시간대에 출퇴근해서 똑같은 일을 한다. 이리 같은 것이 반복되는데 우리가 계속 살아갈 이유는 무엇일까?


다들 니체까진 알잖아. 니체는 왜 유명할까?

그는 평범한 사람들을 호되게 혼내지만 결국은 반복되는 속에서 기뻐하며 살라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어제의 하늘과 오늘의 하늘이 다르고, 어제의 뉴스와 오늘의 뉴스가 다르다. 어제 카톡내용과 오늘 카톡 내용은 다르다. 우리는 모두 움직이는 원자로 이뤄져 있고, 우리의 움직임은 차이를 발생시킨다. 살펴보면 똑같지 않다. 무언가가 달라지고 있으니 그 속에 사는 나는 무료한 인생을 사는 게 아니다. 그러니 주어진 삶을 기뻐하라. 


직장인일 때는 철학자들이 말하는 '차이'에 기뻐하며 살아갔다. 아기자기하게 발생하는 어제와 오늘의 다름에 주목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직업인으로 삶을 이야기한다.  이 영화는 무라카미하루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고, 소설에서 주인공은 <바냐아저씨>를 준비하는 연극배우이다.


(그래서 지난 글에서는 영화와 체홉 <바냐아저씨> 이야기를 했다. )


소설 마지막에서 직업이 배우인 주인공을 통해 하루키는 다분히 니체 영향을 받은 것 같은 말을 한다.


그리고 다시 무대에 서서 연기를 한다. 조명을 받고 주어진 대사를 한다. 박수를 받고 막이 내려진다. 일단 나를 벗어났다가 다시 나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온 곳은 정확하게는 이전과 똑같은 장소가 아니다.  
- <드라이브 마이 카>


주어진 '연기'를 하고 난 나는 이전의 나와 달라져 있을 것이다. 배우의 연기는 인생에 각 단계에서 주어진 역할에 대한 은유이다. 그리고 어쩌면 40년 넘게 소설가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작가 자신을 위한 문장일지도 모른다. 소설 한 편을 쓰고 난 작가는, 이전과 똑같은 작가가 아닐 것이다. 내 생각에 니체 사상을 가장 잘 드러낸 문장이다. 이런 문장을 읽고 나면 심장이 호빵처럼 말랑말랑하고 따듯해진다. 내 직업에 회의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 다짐을 한다. 그래도 흔들릴 때가 생기는데.


며칠 전 나는 호빵 같이 따듯한 장이 뜨거워질 문장을 발견했다. 까뮈의 <시지프의 신화>에서였다. 까뮈는 그 유명한 자살에 대한 질문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가 없는가 하는 것을 판단하는 것, 이것이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시지프의 신화>


대학교 때 전공 때문에 까뮈를 읽었지만 이제와 나는 확신한다. 그땐 하나도 이해 못 했. 왜냐면 지금도 여전히 이해 못 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나는 이제까지 제대로 '왜 사는가?', 를 고민해 본 적 없다. 최근에야 이런 고민에 빠져서 다시 읽어보 전에는 주목하지 않았던 문장이 보였다.


그러나 이 글의 결론은 실망스럽다. 결론은 말하자면 '아프니까 청춘이다', 식이다. 시지프가 반복되는 고통 덕분에 기쁨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하산下山이 어느 날 고통 속에서 이루어졌다면 그것 또한 기쁨 속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괴로움을 이루었을 그 통창이 동시에 그의 승리를 완성한다.

그림자 없는 태양은 없으며, 밤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 - <시지프의 신화>


동의한다. 고통을 겪었던 사람은 분명 더 큰 기쁨을 느끼리라. 하지만 진리가 그럴지라도 고통을 함부로 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고통을 함부로 노래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깨달음을 얻은 스님이 아니다. 고통은 고통일 뿐이다. 가장 좋은 삶은 당연히 고통을 덜 겪은 삶이다.


그의 결론을 제외하면 놀라운 문장이 가득하다. 가장 좋았던 문장, 내 심장의 온도를 올려준 문장은 아래와 같다. 그는 최상의 삶을 한 번 살기보다는, 한 번 사는 삶 동안 여러 삶을 살아볼 것을 제안한다. 가령 여러 역할을 해보는 배우처럼 말이다.



중요한 것은 가장 잘 산다(vivre le mieux)는 것이 아니라 가장 많이 산다(vivre le plus)는 것이라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

자신의 삶과 반항, 그리고 자유를 느낀다는 것, 그리하여 최대한으로 많이 느낀다는 것, 이것이 사는 것이며 또한 최대한으로 사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자살을 거부한다.



가장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정답은 없겠지만 나는 가끔 생각하곤 다. 죽는 날 무엇을 가장 후회할 것인가? 내가 가장 후회할 것은 아마도 이것이 될 것이다.


더 다양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나는 부자로도 살아봤고, 가난뱅이로도 살아봤다. 슬픈 일도, 고통겪었다.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고, 이 일도 해보고, 저 일도 해봤다. 그런데 아직도 못 살아본 삶, 내가 될 수 있는 삶이 수백만 가지라 느낀다. 그래서 까뮈의 제안에 격하게 동의했다.


'다양한 시간'엔 사람, 경험, 감정, 감각이 모두 포함된다. 내성적 성격 핑계를 대며 소극적으로 살아다. 내가 앞으로 운이 좋아 백여 개 나라 여행을 가더라도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거나, 무수한 삶의 감정감각을 알지 못하면 죽는 날 후회하리라.


이것이 결론은 아니다. 일단 내가 쥔 패는 '모든 것'이다. 가장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고민은 아마 살아가는 내내 계속될 것이다.  나는  여러 역할을 하는 배우처럼 이것도 되어보고 저것도 되어본다. 그리하여 죽는 날, 세상의 모든 시간을 살았다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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