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끌 Sep 30. 2022

사는 건 지루하고 죽는 건 귀찮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 자살시도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자살은 긍정이든 부정이든 삶을 향한 적극적 의지다. 난 그 정도로 의지 충만한 사람이 못 된다.


올해 든 일이 많았다. 마음이 힘들었던 나는 업무목적 외엔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면 혹시 내가 실수할까봐, 내 상태를 들킬까봐 꾹꾹 누르고 살아갔다. 마음 속 용암이 나도 모르게 분출할지도 모르니까.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는 화법을 싫어한다. 용암이 들끓을 땐 누가 내게 화를 입을지 모른다. 어릴 때 그런 일이 있었다. 똑같은 실수는 없어야 했다. 집에 오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밥도, 청소도, 설거지도 하지 않았다.


원래는 빠른 편이었다. 올해는 일할 때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고, 행동이 굼떴다. 새로운 일은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일 말고도 그랬다. 생각도, 감정도, 상상력도 사라져 한 문장도 쓸 수 없었다. 나는 어둔 곳에 상처 입은 채 웅크려 있는 흉칙한 생명체였다. 그림자가 포위한 덩어리였다. 평소 소극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때는 그랬다. 중요한 결정조차도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싶었다. 이런 내가 죽어야 할지 살아야 할지 결정해줄래?



이런 내가 죽어야 할지 살아야 할지 결정해줄래?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런 와중에도 자살시도를 생각하진 않았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와 '죽고 싶다'는 완전히 다른 욕망이었다. 가끔 '삶이 무의미하다', '우울하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때마다 물었다.

'사는 건 지루하고 죽는 건 귀찮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죽을 용기가 생기는 거지?'


*


살면서 한 번도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꽤 자주 생각해 보았다. 생각할수록, 번거로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웅크린 생명체였던 나는 천천히 생각해보다 한숨을 쉬곤 했다.  


먼저 죽을 용기가 생겨야 한다. 관성을 끊고 죽을 용기 말이다. 하루하루 관성처럼 돌아가는 삶.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침엔 해 뜨고 저녁엔 지는 게 당연하듯 매일 당연해 보이는 일상을 살아간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을 끊는다는 건 죽음을 향한 엄청난 의지다. 이것은 비아냥대는 말이 아니다.


내 경우엔 아무래도 미래에 대한 한 줌의 기대를 저버리기가 힘들다. 내 잘못으로 고통스러웠을 땐 내게 책임이 있으니까 잘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아 죽지 못했고, 내 잘못이 아닌 일로 고통스러웠을 땐 억울하니까 더 살아보잔 생각이 들다. 어릴 땐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죽지 말고 보란 듯이 잘 살고 싶었다. 성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이룩한 성공이자 실패는 '내가 복수를 못한 채로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다. 복수심은 소멸되었다. 어쩌면 복수심은 살아가기 위한 동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죽으려면 매몰차져야 한다. 내가 외톨이일지라도 내 소식을 들으면 미안해하거나 슬퍼할 사람이 한두 명은 있을 것이다. 설사 가족, 친구, 동료 이런 사람이 주변에 없다 해도 하다 못해 집 앞 슈퍼 아저씨나 세탁소 아줌마, PC방 아르바이트생 혹은 온라인으로 대화를 나눈 친구가 내가 사라지면 나를 잠시 생각할 게 아닌가. 자살을 하려면 이들에 대한 연민을 끊어야 한다. 나는 어 여자 아이돌의 자살 소식에 2주 동안 깊이 슬퍼했다. 그의 팬이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철저한 준비도 필요하다. 실패에 대비하지 않기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을 조사해야 하고, 외부에서 시행한다면 미리 장소 답사를 해야 하고, 약이나 주사를 구매한다면 불법 경로를 알아봐야 한다. 그러다 만일 준비과정에서 누군가에게 들키면 민망해진다. '너 이거 왜 샀어?', '너 이거 뭐야?' 묻는다면 끔찍하다. 오직 철두철미한 사람만이 자살시도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철저한 사람도 막상 시행했을 땐 실패를 맛볼 수 있다. 몇 년 전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옆 침대에는 자살 시도를 한 스무 살 여성이 있었다. 남자친구가 떠나자 농약을 마셨다고 들었다. 한 순간 참기 어려운 감정이 자신을 휘몰아쳤던 모양이다. 나도 스무 살 땐 감정 제어가 힘들었으니까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선택으로 스무 살 여성은 중환자실 환자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면회를 갈 때마다 성의 신음을 들었다. 의식 없는 아버지보다 더 힘들어 보였다. 그녀는 나을 가능성이 적고, 나아도 평생 아플 거라 들었다. 겨우 스무 살인데. 그때부터 난 자살 두려웠다. 수많은 실패로 인해 마침내 어려운 결심을 내렸는데 그것조차 실패한다면 지옥의 림보 상태에 빠질 것만 같았다.


살아갈수록 사는 게 두렵지만, 살아가는 두려움보다 최후의 날이 더 두렵다. 얼굴에 그늘이 많은 어르신들을 만날 때면 그의 인생에도 실패가 많았기에 쉽사리 죽는 결심도 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나는 늘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 고백이라고 느낀다. 비극적이게도(혹은 희망적이게도) 죽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나는 늘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 고백이라고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는 어두운 곳에 한참이나 혼자 있었을 것이다. 한 줌의 빛도 없고, 발버둥칠수록 가라앉기만 한다. 그때쯤이면 자신은 스스로에게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수십 번 죽은 좀비, 어둠에 익숙한 괴생명체, 눈이 빨간 드라큘라, 얼굴이 없는 존재, 피를 흘리며 꿈틀거리는 벌레가 나일 것이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된 나의 모든 생각에는 '나'만 있다. 이기적이라는 게 아니다. 고통이 너무 크다 보니 상황에 내가 매몰된 상태다. 주변은 보이지 않는다. 도와줄 사람도 없다. 이 세상에 구원자는 자신 뿐이고, 그런 자신은 너무나 무기력하다. 결국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하니까 죽는 것이다. 자살의 역설은 '내가 살고자 죽는 것'이라는 데 있다. 죽으면 왠지 숨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숨 쉬기 힘든 시간에서  탈출하기 위해 스스로 더한 고통으로 뛰어든다.


나는 7살부터 죽음을 자주 생각해왔다. 어린아이라고 아무 생각이 없고 늘 즐거운 게 아니다. 물론 어린이니까 결과나 과정까지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사는 게 힘들었다. 독립잡지에 다른 필명으로 쓴 적이 있는데 아마 9살 때였던 것 같다. 나는 마침내 죽기로 결심했다. 무겁고 무서운 식칼을 가져왔다. 이제 끝내자!


막상 실행에 옮기려니 뭔가 아쉬웠다.

'그냥 죽기는 억울하니 죽기 전 먹고 싶은 걸 실컷 먹어야지!'

좋아하는 사발면과 짜장범벅을 먹은 후 멈추려다 바나나까지 먹었다. 이번엔 꼭 실행하기 위해 옆에는 식칼을 곁에 두고 먹었다. 그런데 다 먹으니 배가 너무 부르고 졸린 거다. 이런 속으론 죽을 수 없었다. 최후를 몇 분 뒤로 미루고 잠을 자기로 했다. 일어났을 땐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뱃속은 마구 부대끼고 이상하게 죽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늘 이런 식이라 아직도 살고 있다. 좀 참담하게 슬픈 일이 일어나면, 곧이어 스스로 1인 코미디극을 제작한다. 의도치 않게 말이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다가 그냥 살아왔다. 내 인생의 문제는 매사에 철두철미하지 않고 심각해야 순간에도 꽤나 엉뚱한 행동을 한다는 데 있다. 러니 살아가는 일이 귀찮아도 살아왔다. 스스로 어이없어 하면서.


며칠 전 당일치기로 지방 여행을 다녀왔다. 오는 길에 차가 막혀서 저녁 6시 30분에 도착해야 할 고속버스가 8시 30분에 도착했다. 여행은 언제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문제였다. 생각해 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지루하지도 귀찮지도 않은 날은 언제쯤 올까?' 

떠나는 길도 돌아가는 길도 즐거워지려면 몸이 가벼워야 할 것 같았다. 피로 따윈 없어야 하니까. 그런 날은 아마도 내가 죽은 뒤에야 오지 않을까.


귀찮다. 죽기엔 더 귀찮으니까 차라리 살아야지. 러기로 했다, 일은 주말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일요일 자정, 더 우울해지고 싶을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