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만남
삼일 후 그녀는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이라크에서는 물품만 전해주고 바로 나왔다고 합니다. 암만에서 저를 찾았는데 없었다고 아쉬웠다네요. 이스라엘에 입국할 때 이라크 입국 도장 때문에 7시간 국경에 잡혀있었다고 했습니다. 보통 때였으면 못 들어왔을 텐데 지금은 미군이 관리하는 국경이라 통과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아서 방심하고 있다가 힘들게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다시 만난 반가움에 호들갑을 잠깐 떨고, 그녀는 일행과 함께 다른 방을 잡았다고 헤어졌습니다. 일행이 더 늘었더군요. 저도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바로 잠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 화기애애함이 깨져버렸습니다.
그녀는 어젯밤에 찾았는데 안보였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암만에서 키부츠에 있는 한 한국인을 만났는데, 키부츠에서 일하면 안 되는데 설명하기 답답해서 절 찾았었답니다.
중동을 여행하다 만난 사람들 중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자유로움을 사랑하는 여행자들이기 때문일까요? 업악받는 쪽에 더 마음이 쓰이는 것 같습니다. 은근히 팔레스타인 지구에 들어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고, 특히 일본 여행객이 이스라엘에 대해 우호적인 것은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이집트나 요르단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도 나눠봤었는데, 이스라엘에 울분을 토하면서 "There is no Israel, only Palestine!"이라고 말하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뉴스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테러, 보복폭격 같은 사건들도 이런 분위기에 한몫하지만, 내부의 일자리가 없어 주변 아랍국가로 흩어져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전해주는 이야기에는 극단적인 충돌과는 먼 사람들의 삶도 참 어렵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더 안타까웠습니다.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 듣고 있다가, 문제는 저도 키부츠 들어갈까 한다고 말했을 때였습니다. 저는 그 때나 지금이나 눈치 없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일본 사람이 이렇게 화내는 건 처음 본 순간이었습니다.
"키부츠에서 일하는 것은 이스라엘에 저가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고, 이렇게 해서 번 이익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는 데 사용되는 거야."
뭔가 너무 단순한 논리지만, 저의 짧은 영어로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도밖에 말할 수 없었습니다. 짧게 짧게 끊어서 하는 말에는 미묘한 어감 차이가 들어가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행하면서 영어 때문에 안타까웠던 순간을 뽑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안타까운 논쟁으로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는 저와 눈도 안마주치더군요.
이스라엘에 있는 동안, 한국인이 이스라엘에 우호적이고 키부츠에도 많이 간다는 것을 의아해하는 사람을 자주 봤습니다. 그들 입장에서 이해가 안 간다고 합니다. 키부츠 발론티어들은 주로 유대인 학살에 죄책감을 느끼는 유럽의 청년들과 전 세계 흩어져 사는 유대인 혈통이 많더라고요. 거기에 키부츠 발론티어의 급여도 본국의 수입보다는 좋다고 느껴 일자리를 대신하는 청년들도 섞여 있습니다. 한국인은 이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독특한 발론티어였던 것입니다.
그래도 저녁때 추울까 봐 담요도 챙겨주고 해서 그런지 다음날 웃는 얼굴로 인사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예닌(Jenin)이라는 도시로 떠났습니다. 이번엔 같이 가자는 소리는 안 하더라고요.
1. 입출국 도장: 당시 상호 방문을 제한하는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를 다녀야만 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청하면 여권에 흔적이 남지 않게 별지에 입출국 도장을 찍어주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배낭족에게는 상식 같은 이야기였지만, 미군의 이라크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서 별지 도장을 받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2. 예닌(Jenin):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도시로 이슬람 유적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서안지구 내에서는 저항의 상징으로 언론에 많이 등장하는 도시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