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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달 Sep 04. 2023

바그다드의 소식

뜻밖의 두번째 만남

그녀는 한국 사람들이 아주 강하다고 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흑인이건 아주 무섭게 생긴 사람이건 무조건 가격을 깎아. 엄청 용감해."

"지금 아프리카와 남미로 여행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지는 않아. 아마 한국에서도 대표 선수일 거야."

"그쪽에는 Japan house라는 곳이 있어서 일본 사람들이 많이 묵는데,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잘 찾아와. 음식도 비슷해서 맛있데"

"유럽에서는 한인 민박을 많이 이용하는데 거긴 그렇구나"

"근데 한국 사람들보다 더 센 사람들은 이스라엘 친구들이야. 아주 무섭고 말도 잘 안 통해"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징병제인데, 군대를 제대하고 나면 여행 비용을 일정액 지원해 준다고 합니다. 갓 제대한 혈기왕성한 친구들 중에 상당수는 금액에 맞춰서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와 유대인의 성지 쪽으로 여행하는데, 멀리 타국으로 가는 경우도 있어서 여행하다 보면 생각보다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밤새 기차를 타고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일본 대사관까지 배웅해 줄까 물어봤는데 괜찮다고 해서 기차역에서 헤어졌습니다.


"사진 하나 찍어도 돼?"

"지금 지저분해서 싫어"


약간은 아쉬웠습니다.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된 건. 요르단 암만이었습니다. '암만의 대토론' 2라운드에 등장한 일본인 4인의 그룹 중에 그녀가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에서 헤어진 지 2달 정도 된 시점이었습니다.


보자마자 살짝 놀라는 눈치였는데, 다른 친구들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을 때는 조용히 있더니 다들 조용해지면서 둘이서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나 기억해?”

"그럼. 여기서 만나다니 반갑다"

"넌 똑같네. 난 머리도 길고, 얼굴도 까매져서 알아보기 힘들 것 같은데"

"그렇긴 하네. 그동안 어디로 다녔는데?"

"너랑 헤어진 날, 바로 그리스로 가서 그다음 이집트. 이집트에서 나올 때 출국도장 찍는 사람이 여권 사진이랑 너무 다르다고 확인하더라고"

"출국하는데 힘들었어?"

"아니, 그렇게 대답해 줬어. '이집트의 태양은 위대하다.' 웃으면서 도장 찍어 주더라고"


그녀는 서아프리카를 여행하다가 이집트 통해서 요르단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제가 카이로에서 일반 호스텔에서 묵었으면 거기서 만났을지도 모릅니다. 배낭족이 가는 숙소라는 게 뻔하거든요.


"바그다드는 어땠어?"

"총소리나 폭탄 소리는 가끔 들리는데, 본 적은 없어."

"유적도 봤어?"

"하루짜리 택시 여행 상품이 있어. 넷이서 같이 하면 싸게 할 수 있어"

"여행하는 사람들 많아?"

"한국 사람들은 많이 있는데 여행하는 사람은 없어. 여행하는 사람들은 다들 일본 사람인 것 같아"


이런저런 비용도 물어보고, 안전한 지도 물어봤는데. 더 싼 숙소는 위험한 곳에 있다고 했었습니다. 돌아다니다 보니 다친 사람들도 많고 현지인들은 다쳐도 치료받기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자기 그룹은 그들을 도와주고 싶어 한답니다.


"우리 내일 다시 바그다드로 가는데 같이 갈래?"


이 말에 꽤 흔들리긴 했었습니다. 처음 가는 길에 동행이 있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었고, 이렇게 먼 곳을 돌아 다시 만났다는 것이 뭔가 운명같이 느껴지기도 했었으니깐요.


하지만, 그녀와의 동행을 거절했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가끔 생각이 나곤 합니다.


그때, 그녀를 따라 이라크로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1. 시나이 반도: 이스라엘 민족의 성지인 시나이산이 있는 곳으로 중동 전쟁의 결과로 맺어진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협정에 의해 이스라엘 사람들의 출입이 자유롭게 허용된 이집트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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