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갈 찾기 여행
슬슬 키부츠로 들어갈 때가 되었습니다.
먼저, 한국인이 많고 잘 받아주기로 유명한 키부츠 바람의 발론티어 리더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요르단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받은 번호였는데, 리더와 먼저 협의가 되면 나머지 절차는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나 거기 들어가고 싶은데 괜찮아?”
"지금은 자리가 없는데 주말까지 기다려줄 수 있어?"
물론 난 누구고 누구에게 네 소개를 들었고 무슨 일 하는 지도 들어서 잘 이해하고 있다고 구구절절 설명을 붙였지만, 왠지 곤란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굳이 거기로만 갈 필요하는 없어서 정식으로 절차를 밝기로 했습니다.
모처럼 부지런을 떨어서 텔아비브(Tel-aviv)에 있는 KPC(Kibbutz Program Center)를 찾아갔는데. 숙소 잡고 잠깐 쉬다가 점심을 넘겨서 갔더니, 사무실이 닫혀있었습니다. 이런 낭패가. 알고 보니 이스라엘의 대부분 업무시간은 오후 2시까지였습니다.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근처 구경을 다녔는데, 텔아비브 해변은 서핑도 하고 요트도 있고 선탠 하는 사람들, 여느 중동 하곤 다르게 미국의 해변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도 있어서 이스라엘이 확실히 세계적인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숙소 근처의 디젠코프 스퀘어는 독일 프랑크푸르크시와의 화해의 표시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다음날 KPC에 등록을 하고, 처음 소개받은 곳은 키부츠 엘롬(El-rom)이었습니다.
"힘든 일도 괜찮아? 돈은 많이 줄 거야."
"그럼. 괜찮지"
한국에서 면접 보는 기분으로 흔쾌히 대답했더니, 소개해 준 곳입니다. 중간 기착지(Kiyat Shmona)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느긋하게 도착했더니 저녁시간이었습니다.
키부츠 엘롬은 이스라엘 최북단 골란고원에 있는데, 가는 길에 요르단강에 물도 많이 흐르고 서늘해서 나무도 많아 보였습니다. 중동 여행을 시작하면서 멀리까지 초록색이 가득 찬 풍경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센터직원에게 들을 때는 기억이 안 났었는데, 오면서 생각해 보니 사과농장으로 유명하고 일이 힘들기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도착해서 우연히 거기 있던 한국분들을 만나서, 키부츠 내용을 듣고 저하곤 안 맞는 것 같아서 다음날 리더에게 말하고 새벽에 나왔습니다. 급여는 다른 키부츠의 4~5배 정도인데, 확실히 워커를 원하는 곳이더라고요. 물량을 못 맞추거나 불성실해 보이면 Kick-out도 당하고, 2달 내에 나가게 되면 급여에 페널티도 있었습니다. 수확철이라 발론티어를 늘리고 싶어 KPC에 말을 해놔서 그쪽에서 가능하면 이리 사람을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날 3번의 히치와 1번의 버스 타기로 티베리아(Tiberias)라는 도시까지 와서 KPC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엘롬 말고 다른 곳 소개해주지 않을래? 거기랑 안 맞아서 나왔어"
"왜?"
"일이 너무 힘든 것 같아"
"힘든 일도 괜찮다며"
"그래도 너무 힘들어"
"그럼 쉬운 일을 원하는 거야?"
"그래."
"오케이, 잠시만 기다려봐"
아. 그 적당히라는 말이 잘 설명이 안 되는 건 역시 영어가 짧아서겠지요? 기다리는 동안 예루살렘에서 만났던 치과의사분과 마주쳐서 점심을 얻어먹었습니다.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던 때라 어찌나 반갑던지요.
어쨌든 KPC에서는 키부츠 기네갈이라는 곳을 소개해줬습니다. 버스를 타고 아풀라(Afula)로 가서 하이파(Haifa)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내리면 된다고 했습니다. 부지런히 이동하니 오후 3시쯤에 키부츠에 도착했습니다.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인데, 이스라엘이 꽤 작은 나라였습니다. 중부에 있는 텔아비브에서 최북단 골란고원까지도 차로 다니면 사실상 3~4시간 정도면 될 것 같았습니다. 남북으로 길쭉해서 그렇지 면적만 따지면 남한의 5분의 1이라고 합니다. 버스 시간도 잘 모르고 물어물어 다니는 데도 하루 안에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고 알고 있는 성경의 많은 이야기들이 이렇게 좁은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게 조금은 생소해졌습니다. 요즘 기준으로 따지고 보면 그리스로마 신화 속 세계도 그리 넓은 편은 아니긴 하지요.
이곳의 발론티어 리더는 하이케라는 독일계 유대인이었는데, 스페인어, 영어, 독일어, 히브리어가 가능한 유쾌한 여성이었습니다. 키친일이라도 괜찮겠냐 물어보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나중에 알고 보니 남자들은 대부분 키친일은 안 했다고 하더군요)
현재 발론티어는 네 명. 규모가 작은 곳이었고. 한국 사람은 없었습니다. 발론티어 하우스에 짐을 풀었는데, 2인실 5개 방이 있었고 필리페가 절 맞아주었습니다.
1. 이스라엘의 근무시간: 더위를 피해서인지 새벽 6 ~ 오후 2시가 일반적인 근무시간입니다.
2. 텔아비브: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예루살렘은 형식적으로는 팔레스타인의 수도입니다. 성지인 예루살렘은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도 요르단도 기독교 세력도 양보할 수 없는 곳이라 복잡한 사정이 겹겹이 있습니다.
3. 골란고원: 시리아와의 전쟁의 결과로 이스라엘에 귀속된 지역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성지인 헬몬산이 있고,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수량도 풍부하고 서늘한 곳이라 농사가 잘 된다고 합니다.
4. 히치하이킹: 이스라엘에서 배낭족이 주로 이용하는 세 가지 교통수단이 버스, 쉐루트, 히치하이킹입니다. 골란고원이나 네게브 사막 같은 곳은 버스도 잘 안 다녀서 히치하이킹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