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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달 Sep 09. 2023

키부츠 기네갈의 일상

발론티어로 살아가기

이제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침 5:30분 기상. 씻고 대충 걸쳐입고 뚜벅뚜벅 걸어서 6시까지 식당으로 갑니다. 주방보조인 저에게 맡겨진 일은 네 가지였습니다. 야채 다듬기, 청소하기, 설거지하기, 그리고 주방장의 오더대로 갑자기 일어나는 일 도우기.


도착하자마다 오늘 무슨 야채를 다듬을지 물어보고, 10:30분 전후까지 야채를 다듬습니다. 전체적으로 종류가 7~8가지 정도인데, 다듬는 것을 책임지는 직원이 있고, 역시 전 보조입니다. 담당이 손질하는 시범을 보이고 저는 따라 하는 식으로 일을 했었는데, 중간에 잠깐 같이 일했던 다른 한국 여자분은 야채이름이나 일하는 것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는 건지 꼬치꼬치 물어서 말로 표현하고 대화하면서 언어를 익히면서 일하더군요. 왠지 일하는 양은 제가 더 많았는데 손해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언어에 관심이 많이 없는 절 탓해야지요.


야채 다듬기가 끝나면, 제가 일하던 구역과 냉장고와 통로를 청소합니다. 바닥 청소는 물과 세제로 하는데, 세제 풀은 물을 붓고 빗질을 몇 번 한 다음 물을 다시 한번 부어 거품을 씻어냅니다. 세제를 꼼꼼하게 씻어내지는 않는 걸 보고 이곳에서는 바닥에 음식이 떨어지면 버리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청소하는 것은 한번 가르쳐주더니 다음부터는 결과만 검사하더군요.


청소가 끝나고 점심을 먹고 나면 대망의 설거지가 남아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하지만, 가볍게 초벌 하는 것과 건조 전에 검사하는 것은 사람이 합니다. 전체적으로 홀을 담당 직원이 있고 그분이 초벌이 됐는지와 마지막 검사를 주로 하더군요. 사실 일하는 중간중간 미리미리 나오는대로 합니다.(그래야 일이 빨리 끝나니깐)


아침은 바게뜨 샌드위치로 7시부터 8:30분 사이에 주는데, 사람들이 자기 일터에서 일하다가 한둘씩 와서 빨리 먹고 갑니다. 기본적으로 근면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대화하면서 식사하더라도 20분을 넘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침 샌드위치 준비는 오후의 홀담당이 하더라고요.


점심은 11:30분부터 1시 정도까지 먹습니다. 물론 자유롭게 와서 먹고 갑니다. 뷔페식인데 매일 메뉴가 거의 같지만 특별요리가 한두 개씩 바뀝니다. 제가 음식에 대해서 좀 무디기도 하지만, 음식 때문에 곤란한 적은 없었습니다. 키부츠 자체가 유럽 쪽 사람들이 이주해서 만들어져서 그런지 음식은 서양식이고 중동에서 인기 있는 몇 가지가 섞여있었습니다.


식당 사람들이 일의 양을 서로 효율적으로 나누고 도와주고, 누군가 데이오프일 때는 키부츠의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하는 것들이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인상이 깊었습니다. 대체를 할만한 사람이 미리 리스트로 작성되어 있었던 것 같고, 보스나 행정일을 주로 하는 리틀보스도 본인 업무가 끝나면 빈자리를 찾아가서 도와주고 해서, 끝나는 시간까지 게을러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식당은 점심까지만 운영하더군요. 저녁은 알아서 해 먹는 구조였습니다. 발론티어는 룸에 취사도구가 따로 없어서 매점에서 미리 사놓은 음식을 위주로 먹거나 공용도구로 함께 해 먹었습니다.


오후 2시가 정식 퇴근시간이라 오후시간이 많이 남더라고요. 전 주로 수영장에 갔다가 저녁 즈음에 다른 발론티어와 합류했습니다. 키부츠 안의 수영장인데 저녁시간까지는 외부에 개방해서 키부츠 바깥의 사람들이 놀러 옵니다. 이 때는 발론티어도 이용할 수 있는데, 무슬림들도 많았습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키부츠닉만 사용할 수 있는데 낮의 자유로운 수영장과는 다르게 레인도 쳐지고 경기용 실내수영장 분위기로 바뀝니다.


저녁은 대부분 발론티어들이 자유롭게 모여서 먹는데, 조리기구들 빌려 같이 음식을 해 먹기도 하고 보드카를 위주로 하는 술과 간단한 안주거리로 때우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녁시간 이후에는 저는 인터넷에 접속해서 밀린 일지를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여행 나온 후에 매일 일지를 적었는데, 그때는 저에겐 이것이 가족과 지인에게 내 소식을 알리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 가급적 오래 밀리지 않으려고 인터넷이 가능한 상태에서는 이일을 우선으로 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접속하는 방법은 전화를 이용해서 하는 방법이었고 인터넷속도도 컴퓨터도 아주 느렸다는 것입니다. 거의 두 시간씩 전화와 컴퓨터를 독점하다 보니 나중에는 주의를 주더군요. 물론 필요하다고 하면 당연히 자리를 비켜줬지만, 외부에서 발론티어에게 하는 전화를 받을 수 없는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저를 인터넷맨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하던 일도 프로그래머였고, 그 느린 컴퓨터를 이리저리 손봐서 조금 빠르게도 만들고, 한글도 사용할 수 있게 해 놓았으니 인상이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매주 쉬는 날은 우리의 토요일, 유대인의 사밧데이입니다. 한 달에 세 번의 데이오프를 쓸 수 있어서, 사실상 주 5.5일 근무입니다. 세 달 정도를 한 번에 몰아서 이스라엘이나 요르단을 여행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저는 이미 다녀와서 그럴 일은 없었습니다.


주급은 퍼니머니라고 하는 키부츠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돈으로 받았는데, 매점에서 음식사는 것 외에는 거의 쓸 일이 없었습니다. 나갈 때 현금으로 바꿔줍니다. 여성들에게는 정해진 주급에서 품위유지를 위한 비용이 10% 정도가 더 지급이 된다고 해서 인상에 남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합리적인 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주급은 하는 일마다 달라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만,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발론티어는 기본적으로 키부츠 내에 있는 회사들이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는 성격이라 그 보스와 협의해서 주급을 결정하는 것 같고, 규칙이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불만은 잘 협의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별도의 혜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중간에 잠깐 다른 일을 한 적 있는데, 제 주급이 바뀌지 않았던 것 보면 여기는 통일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키부츠 기네갈의 일상은 흘러갔습니다.


1. 일지올리기: 이번 여행 때는 2G폰에 로밍되는 지역도 많지 않던 시절이라 폰은 해지하고, 공중전화는 비싸고 인터넷도 일부 시설에서만 가능하던 때였습니다.

2. 식사시간: 기네갈은 근무시간 안에 식사시간이 포함되어 있어 8시간 안에 빠르게 식사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었습니다. 키부츠마다 일거리마다 규칙마다 다른데, 식시시간과 휴식시간이 따로 정해진 곳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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