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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작품이 되는 순간

Interview with '브런치북 프로젝트' 대상 수상자 청민 작가


일기 쓰기를 좋아하던 한 소녀가 스물다섯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던 날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책 한 권을 내놓았다. 혼자서만 끄적거리던 수줍은 문장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 준 것은 카카오의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 브런치였다. 본명 박예은. ‘제1회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여행 에세이집 <B컷 시선>을 출판한 청민 작가는 어느덧 세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 



청민 작가에게 브런치는 자신의 꿈을 묵묵히 응원해주는 엄마 같은 존재다. 오랫동안 소망해온 작가의 꿈을 이룬 그는 두 번째 에세이집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에 이어 세 번째 책을 준비 중인 그녀. 일상에서 찾은 영감의 조각들을 엮은 감성적인 글로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너처럼 글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야. 한번 들어가 봐.”


시작은 지인의 추천이었다. 2015년 평소 블로그와 SNS에 꾸준히 기록해온 그의 글을 지켜본 지인이 새로운 글쓰기 플랫폼이라며 브런치를 소개했다. 



“진지한 자세로 글쓰기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브런치의 첫인상은 딱 그 느낌이었어요. 과연 제가 여기에 글을 써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죠.” 


매끄럽고 근사한 문장들 앞에서 주눅이 들었지만 그는 일단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써보기로 했다. 또래 친구들 에 비해 여행 경험이 풍부한 것이 그가 내세울 수 있는 무기였다. 


<청민의 감성 여행 수필집>이라는 이름으로 엮어낸 이 여행기는 여행지에서 떠오른 단상들을 본인의 경험과 교차시킨다. 


청민 작가의 첫 번째 연재  <청민의 감성 여행 수필집>


독일 드레스덴의 교회 앞에 서서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떠올리고, 인도에서 멀미를 하며 죽음에 대해 사유하는 식이다. 이국적인 도시에서 보고 먹고 즐긴 것을 기록하는 일반적인 여행기와는 결이 다르다. 청민 작가가 낯선 풍광을 보고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듯, 독자들 역시 그의 담백한 문장을 읽으며 저마다의 추억을 떠올렸다.


“이전에도 블로그나 SNS에 글을 쓴 적이 있지만 조금만 글이 길거나 감성적이면 ‘오글거린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반면 브런치에는 긴 호흡의 글을 집중해서 읽어주는 독자들이 많아요. 단어 하나, 문장 하나 고심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까 다른 사람의 글도 대우를 해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른 플랫폼과 달리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해 9월 ‘제1회 브런치북 프로젝트’가 시작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응모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는 브런치에 연재된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할 수 있는 기회였다. 청민 작가 역시 그동안 차곡차곡 연재해온 여행기를 프로젝트에 응모했다. 그리고 한 달이 훌쩍 지난 어느 날, 혼자 은행을 다녀오던 길에 연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보이스 피싱인 줄 알았어요. 정말 기대를 안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점점 실감이 나는데, 사람이 너무 기쁘면 웃다가 울다가 한다잖아요. 제가 딱 그랬어요. 정말 너무 기뻐서 길거리 한복판에서 방방 뛰었죠. 취업 문제로 고민이 많던 시기에 한 줄기 빛을 만난 것 같았어요.”


연락을 받은 날로부터 출간 목표일인 크리스마스이브까지는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 청민 작가는 이 기간에 매일 밤새 글을 다듬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다.


이때 밤마다 끓여 먹은 라면 때문에 찐 살이 아직도 빠지지 않았다며 웃는다. 시간과 분량이 주어진 상황에서 글을 쓰는 것도, 작가로서 출판사와 일을 하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버킷 리스트에 적혀 있던 오랜 꿈은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원고를 넘긴 후에는 출판사 담당자와 수차례 메일을 주고받으며 책의 구성을 다듬어나갔다. 



그렇게 완성된 청민 작가의 첫 책 <B컷 시선>이 2015년 12월 24일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스물다섯 살 청민 작가에게는 이제껏 받아본 적 없는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그로부터 1년하고 이틀이 지난 2016년 12월 23일에는 청민 작가의 두 번째 책이 출간됐다. 브런치에 연재된 글과 <B컷 시선>을 본 한 출판사 편집자가 브런치팀을 통해 연락처를 받아 출간 제의를 해온 것이다.


“첫 미팅 때 제 책을 가지고 오셨는데 메모지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어요. 제가 쓴 글을 꼼꼼히 읽으신 흔적이 책에 가득했어요. 정말 감동적이었죠. 작가로서의 경험은 부족하지만, 출판사가 지향하는 감성과 잘 맞을 것 같으니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던 <B컷 시선>이 그다음 해에도 잊지 못할 선물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첫 출간 때는 브런치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지만 두 번째 책은 사정이 달랐다. 직업 작가로서 출판사와 직접 계약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계약서상의 내용은 제가 잘 모르는 영역이니까 긴장이 많이 됐어요. 그래서 첫 책 출간을 도와주셨던 브런치 담당자님께 전화해 이렇게 계약을 진행하는 것이 맞는지 꼬치꼬치 여쭤봤어요. 친절하게 답변해주신 덕분에 두 번째 책도 수월하게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탄생한 두 번째 책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에서는 우리가 무심코 스쳐 보내는 감정조차 따뜻한 시선으로 붙잡는 작가 특유의 감성이 더욱 짙게 묻어난다. 수차례 문장을 고치고 다듬었던 손때 묻은 원고들은 지금도 가끔 꺼내볼 만큼 애틋한 추억이 되었고, 글을 쓰다 막다른 벽에 다다른 듯 생각이 멈출 때면 브런치 독자들의 댓글을 다시 읽었다. 책의 ‘Thanks to’에서도 언급할 만큼 브런치와 독자들은 그에게 너무나도 고마운 존재다.




현재 세 번째 책을 작업 중인 청민 작가는 이제 작가로서의 책임감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출판되는 책은 일기장이 아니다’라는 누군가의 말에 공감하며, 머릿속에 떠도는 수많은 생각 중에서 글감을 고른다. 약속된 일정에 맞춰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된 일인지도 새삼 실감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브런치 토요 매거진 연재는 작가로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 됐다. 2017년 7월부터 시작된 브런치의 ‘위클리 매거진’은 브런치팀이 엄선한 작가가 작품의 콘셉트와 목차를 먼저 공개하고 매주 같은 요일에 글을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연재형 서비스다.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연재된 토요 매거진 ‘청민 카페에 초대합니다’는 매주 선정된 카페 메뉴와 관련한 작가의 단상을 담은 글 15편으로 구성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카페처럼, 청민 작가는 토요일 자정이 되면 약속된 글 한 편을 올려 독자들과 만났다.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밀크티 등 흔한 음료 메뉴 한잔에 얽힌 작가의 개인적인 추억을 만나고 글 말미에 이어지는 영상까지 감상하고 나면, 마치 소박한 카페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 다정한 여운이 감돈다.


“처음에는 ‘과연 내 글을 기다려주는 독자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어요. 그런데 정말 자정이 되자마자 제 글을 읽으러 와서 댓글까지 남기는 독자분들이 계시더라고요. 마치 웹툰 기다리는 것처럼요. 정해진 시간에 독자들을 만난다는 것은 이전과는 또 다른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책임감도 많이 느꼈고요. 카페 아르바이트 경험을 밑천 삼아 음료를 제조하는 영상을 직접 찍기도 했어요.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촬영한 영상인데,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뿌듯합니다.”


청민 작가의 위클리 매거진 <청민 카페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두 권의 책을 출판했지만, 작가 청민이 아닌 스물여덟 박예은의 일상은 보통의 취업 준비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르바이트를 갔다가, 일이 끝나면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한다. 최근에는 컴퓨터 자격증을 따기 위해 준비 중이다. 


“카페에서 제가 일하는 시간대가 하루의 중간, 오후예요.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을 버티고 있어요. 졸음을 쫓기 위해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요. 그 시간을 응원한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지금 버티는 시간을 보내고 있기도 하고요. 올해는 꼭 취업에 성공해서 좋은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요.”



브런치를 만난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글을 잘 쓰기 위한 몇 가지 노력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고 있다는 것. 좋은 글이 왜 좋은 글인지, 문장을 몇 번이고 쳐다보고 분석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실제 글쓰기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은 아무래도 에세이집이 많아요. 특히 이병률 시인의 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함께 일한 출판사 에디터님의 표현에 따르면, 일상에 있는 평범한 것들을 보석처럼 섬세하게 가공하는 분이세요. 인생에 대단한 사건이 없어도, 엄청난 시련이 있지 않아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어요.” 


새로운 책 작업을 위해 매주 두 편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있다는 청민 작가의 세 번째 책 속에는 어떤 반짝이는 문장이 담길지 기대해본다.




청민 작가의 글에는 그의 가족이 자주 등장한다. 브런치에 연재된 그의 글을 빠짐없이 읽은 독자라면 가족 사랑이 남다른 부모님과 짓궂지만 정 많은 남동생 ‘찬이’의 존재를 모를 수 없을 것이다. 이 단란한 가족은 청민 작가의 열혈 독자이자 글을 쓰는 원동력이며, 영감의 원천이다. 대학 졸업이 남들보다 늦어지고 한창 취업 준비에 열을 올려야 할 시기에 첫 번 째 책 작업으로 밤을 지새울 때도, 그의 부모님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며 응원을 보냈다. 작가 청민에게 브런치란 어떤 존재인지 묻자, 그는 한참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엄마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저희 어머니는 저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강요하기보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제가 원하는 곳까지 스스로 걸어갈 수 있도록 묵묵히 도와주셨어요. 브런치도 작가를 꿈꾸는 제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제 이름으로 책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잖아요. 담당자분들이 엄마처럼 이것저것 살뜰히 챙겨주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글을 잘 쓰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꾸준히 쓰는 일임을 실감하고 있다는 청민 작가. 언제나 든든한 내 편이 되어주는 가족과 글쓰기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독자들, 그리고 작가가 되는 놀라운 경험을 선물해준 브런치가 있는 한 그의 글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 청민 작가의 브런치 글 만나러 가기

https://brunch.co.kr/@romanticg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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