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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

Interview with 카카오드라이버, <대리사회>의 작가 김민섭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하던 소년은 국문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국문학자 김민섭’이 아닌 ‘309동 1201호’라는 가명을 먼저 알았고, ‘맥도날드에서 알바하는 젊은 교수님’이라는 기사 제목으로 그를 접했다. 



국문학과 박사과정을 밟으며 시간강사로 재직하던 현대소설 연구자였으나, 대학을 박차고 나온 김민섭 씨. 그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펴낸 뒤 <대리사회>, <아무튼, 망원동>을 잇따라 낸 작가이자, 기획자, 그리고 대리운전기사다. 대학 울타리 안, 강단 위의 삶을 벗어나 다른 ‘노동’, 다른 ‘생활’을 시작한 그가 파트너인 카카오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글을 쓰면서, 나는 대학에서 나왔다. 강의하고 연구하는 것으로는 제대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갈 수 없어서 오전에는 맥도날드에서 물류 하차 일을 했고 오후에는 대학 연구실에서 논문을 썼다. 그러다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을 위하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라고 책에 쓰면서 대학에서 나왔다. 실제로 맥도날드가 대학보다 더 합리적이고, 상식적이고, 인간적이었다. 나는 대학 바깥에 오히려 더 큰 강의실과 연구실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서른이 넘도록 10년 가까이 문학만 공부해온 사람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우선은 논문 쓰는 동안 미뤄두었던 다른 ‘글쓰기’를 해보자고 마음먹었지만, 솔직히 막막했다. 그때 카카오에서 나를 찾아왔다. 창작자의 콘텐츠를 이용자들이 후원 형식으로 구매하는 카카오의 창작자 플랫폼 ‘스토리펀딩’의 임석빈 PD였다. 그는 나에게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의 그 이후 스토리를 써본다면 어떨까요?” 하고 제안했다. 


나는 “에이, 제 글이 뭐 재밌다고 사람들이 사겠어요” 하면서도, 손해 볼 것은 없어 보여서 그 제의에 응했다. 나는 사실 논문을 쓰면서도 학회에 20만~50만 원의 돈을 납부하는 쪽이었지 글로 돈을 벌어본 적은 없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였다’라는 제목의 프로젝트를 개설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두 달 동안 1651만 356원이 모였다. 


후원자들에게 서명한 책을 리워드로 발송하고 남은 돈은 그대로 아이의 분유와 기저귀가 되고, 무엇보다 나와 가족이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증거로 남았다. 이때 인연을 맺은 김귀현 카카오 창작자플랫폼기획파트장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대학에서 나온 저에게 후의를 베풀어주신 분들이 많아요. 그중에서도 특히 카카오와 스토리펀딩팀에는 정말 감사드려요. 내일을 상상하게 해 준 ‘은인’ 같은 분들이세요.” 덕분에 나는 ‘계속’ 글을 쓰기로 했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대학에서 무엇이었을까?’ 하는 물음표가 계속 따라다녔다. 나는 대학 내의 상상 가능한 여러 공간에서 노동했다. 그러나 서류로 증명되지 않는 ‘유령’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면서도 강의하고 연구하는 동안에는 ‘교수님’이라는 호칭에 취해서 그런대로 버텨나갔던 모양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붙잡을 무엇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타인의 욕망을 대신 수행하면서도 나를 주체로 믿으며 강의실과 연구실에 섰다. 그건 참, 마치 ‘대리인간’과 같은 삶이었구나 싶은 것이었다. 



그런 감각과 함께 내가 해결해야 할 당장의 문제도 있었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한 가족의 생계를 영위하기가 어려웠다. 먹고살기 위해 다른 방식의 ‘노동’이 필요했다. 결국 3개월 만에 아내에게 “나 다시 일을 좀 해야 할 것 같아”라고 말했다. 아내는 나에게 “이번에는 롯데리아나 버거킹으로 가게?” 하고 물었다. 사실 맥도날드에서는 내가 나가면 매장이 망한다고 붙잡긴 했지만, 그래서 언제든 다시 오라고 점장이 말해두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노동을 해보고 싶었다. 깔깔대고 웃는 아내가 얄미워서 “다른 거 할 거야”라고 답하고는, 무엇을 할까 고민을 시작했다. 


무척 즐거운 고민이었다.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동안 몸이 고되긴 했지만 배운 것이 많았다. 대학에서 ‘호기롭게’ 나온 데는 세상 어디에서든 공부가 가능할 것이라는 새로 생긴 믿음도 한몫했다. 이번에는 ‘어디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던 중 ‘대리’라는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어차피 노동이라는 것이 누군가를 대리하며 돈을 버는 것이라면 아예 그것이 가장 적나라하게 상징되는 공간으로 가보자 싶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 단어가 아예 들어간 하나의 직종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대리운전’이었다. 나는 자동차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운전하는 일을 무척 좋아한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검색창에 그 단어를 검색하자 ‘카카오’가 연관 검색어로 나왔다. ‘어, 너희가 (또) 거기에서 왜 나와?’ 싶어서 기사를 클릭하자 카카오가 ‘카카오 드라이버’라는 대리운전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내용이 나왔다. 게다가 며칠 후에 1기 기사를 선발하고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해서 ‘카카오’라는 회사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2016년 5월 31일, 카카오드라이버가 첫 서비스를 시작한 그날부터 나는 대리운전기사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건 카카오가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주변의 누군가가 대리기사를 찾으면 나에게 그가 있는 위치와 목적지가 제공된다. ‘수락’ 버튼을 누르고 그에게 가서 운전하고 나면 다음 날 오전에 미터기에 찍힌 금액에서 20%를 수수료로 공제한 나머지가 내 통장에 들어온다. 이렇게 간편한 방식으로 노동이 가능하다니, 무척 놀라웠다. 


저녁이 되자 정말로 콜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어쩌지?’ 하고 고민하다 그것들을 모두 날려먹었다. 주변에 대리기사가 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건 가도 되겠다’ 싶은 것은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이미 배정된 콜입니다’ 하는 메시지가 떴다. 또 어느 것은 너무 멀다 싶어서 ‘어떻게 돌아오지’ 하고 망설이게 되었다. 그러다 밤 10시가 넘어가서 나는 ‘이러다가 일을 못 하겠구나’ 싶어, 다음 콜이 들어오면 아무것도 보지 않고 그냥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디에 가게 될지, 어떻게 돌아올지 모르지 만, 하긴 뭐 대학에서도 그랬듯이 노동도 삶도 그러면서 배우는 것이다. 



목적지도 보지 않고 수락 버튼을 누르고 보니 참 먼 곳이었다. 손님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면서 정말이지 ‘망했다’ 싶었다. 게다가 1.5km 떨어진 곳에 있는 손님은 3분도 되지 않아 전화해서는 “아저씨 왜 이렇게 늦게 와요?” 하고 물었다. 아직 초면도 아닌 사이인데 ‘아저씨’가 되는 것은 좀 이상하다 싶었지만 나는 그에게 “네 사장님, 빨리 가겠습니다” 하고 답하고 열심히 뛰었다. 


첫 운행을 마친 나는 강원 원주시 문막읍의 공단 지역에 홀로 남았다. 11시가 넘었으니 대중교통은 모두 끊겼고 우리 집이 있는 원주 시내까지 택시비가 2만 원 넘게 나올 거리였다. 첫 운행으로 내가 번 돈은 1만 7000원이었다. 기다리다 콜을 받고 집 근처로 가면 좋겠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검색해보니 근처에 PC방이 있어서 거기서 밤을 새우면 어떨까 하고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누군가를 만났다. 그 덕분에 나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대리사회>라는 책에 자세히 적어두었다.) 


그날 이후 나는 정말로 대리기사가 되었다. 주 5일이 아니라 주 7일, 저녁부터 새벽까지 일했다. 그것이 그럭저럭 생계에 큰 보탬이 되었다. 다음 날 바로 돈이 입금되는 것도 즐거웠고, 사람들과 만나는 일은 그때그때 많은 배움을 주었다. 타인의 운전석, 거기를 100번쯤 오르고 내렸을 즈음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구나’ 하는 감각이 찾아왔다. 글을 쓰기 위해 시작한 노동은 아니었지만, 그날은 일찌감치 집에 들어갔다. 


‘대리사회’라는 제목을 쓰고 그날부터 조금씩 글을 써나갔다. 마침 스토리펀딩에서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와서 ‘대리사회의 대리인간’이라는 프로젝트를 열었다. 대학에서 나온 이후 카카오라는 회사는 파트너처럼 계속 내 옆에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척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김민섭 작가의 스토리펀딩 '우리 모두는 대리인간이다'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8801



어느덧 대학에서 나온 지도 2년이 넘어간다. 문학을 연구하고 강의하던 나는 이제 콜이 뜨면 1초 안에 적정 단가와 목적지와 거기에서 돌아올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상상할 수 있는 ‘대리기사’가 되었다. 어느 대리기사 선배는 “그게 0.1초 내로 선명하게 막 홀로그램처럼 눈앞에 떠올라야 여기서 살아남지” 하고 말했다. 10년 넘게 일한 선배들은 정말로 그게 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허세처럼 보여서 웃었는데 일하다 보니 정말로 그랬다. 말하자면 그들은 ‘전문가’이자 ‘숙련 노동자’였다. 어디서든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에게서는 향기가 나게 마련이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만난 선배들은 대개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한 번은 20대 활동가들과 50대 대리기사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청년들보다 오히려 그들의 옷매무새가 더 정갈했다. 저녁 시간이 되어 그들은 콜을 잡고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났다. 그러면서 “옷을 깨끗하게 입으려고 많이 신경 씁니다. 그래야 무시받지 않을 수 있고, 그게 손님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죠”라고 말했다. 



<대리사회>라는 책을 쓰고는 내가 대리운전을 그만둘 것으로 알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감해야 할 글이 늘었고 계약해둔 책도 몇 권 있다. 그러나 나는 계속 일을 한다. 육체적인 노동과 글쓰기의 병행은 힘들지만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자연스럽게 내 삶의 방식처럼 되었다. 


이른 아침에 근처 카페로 ‘출근’한다. 커피 한잔 마시면서 써야 할 글을 쓴다. 옆에는 카카오T의 기사용 애플리케이션을 켜둔 휴대폰을 놓아둔다. 점심까지 몇 개의 콜이 나온다. 늦게까지 술을 마신 사람들도 있지만 꼭 술에 취한 사람들만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운전하기가 겁나는 초보 운전자,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 사람, 병원에서 대장내시경을 하고 마취가 덜 풀린 사람, 친구에게 빌린 차를 가져 다 달라는 사람, 개인적인 일로 며칠 밤을 새운 사람 등 다양하다. 콜을 받으면 웬만하면 어떤 곳이든 간다. 대중교통을 탈 수 있는 시간이니까 아무래도 괜찮기 때문이다. 이동하고 나면 근처 맛집을 찾아서 밥을 먹고, 카페에서 글을 쓴다. 저녁까지 콜이 나오면 타고 없으면 계속 글을 쓴다. 어차피 저녁이 되면 콜이 또 나온다. 



11시는 콜이 가장 많은 피크타임이다. 이때 강남이나 합정 등 번화가에 있으면 집으로 가는 차를 골라서 탈 수 있다. 요즘은 회사에서 야근을 한 후 집으로 가는 콜이 있으면 타고 가면서 돈을 버는 직장인들도 꽤 있다고 한다. 집이 일산이고 직장이 강남이라면, 퇴근하는 교통비가 들지 않고 오히려 3만 원 정도 벌 수 있다. 물론 매일 야근할 수도 없고 정해진 시간에 콜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 몇 회만 해도 웬만한 적금을 들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게 된다. 나는 이제 대중교통이 끊기는 새벽까지는 웬만하면 일하지 않고, 번화가에서 글을 쓰다 집 방향으로 가는 콜을 잡는다.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인근 유원지로 나들이를 가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대리운전 프로그램을 켠다. 그러면 역시 집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부른 콜들이 뜬다. 가볍게 술 한잔 마신 사람들이 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 집 근처로 가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것은 아내와 합의된 일이다. 가족과 함께 나들이 가는 데는 기름값과 밥 값 등 이런저런 비용이 든다. 그러나 집에 갈 때 대리운전 콜을 받으면 그날의 지출은 거의 제로에 가깝게 된다. 그래서 아내는 자신이 알아서 운전하고 아이들과 함께 돌아갈 테니 나에게는 대리운전 콜을 받으라고 말한다. 우리는 남들과 같이 즐겁게 쉬다가 콜이 들어오면 돌아갈 준비를 하고, 각자 다른 차를 운전하고는 집에서 만난다. 이것은 나의 삶과 노동이, 가족의 삶과 노동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일상이다. 


노동은 언제나 치열하고 눈물겨운 것이 아니고, 이처럼 조금은 더 즐겁게 삶에서 실천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특히 카카오드라이버는 기존 업체들과 달리 월 프로그램 사용료라든가 기타 비용을 공제하지 않는다. ‘등급’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서 늦게 배차된다거나 하는 불이익도 없다. 수수료 20%에 더해 출근비, 보험비, 입금수 수료 등 여러 명목으로 노동하는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지 않는 것은 카카오드라이버의 가장 큰 장점이다. 앱 기반 연결을 통해 새로운 일상을 만드는 카카오의 서비스는 노동을 이전과는 다르게 감각하고 실천할 수 있게 해준다.



대리운전을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간 만난 ‘진상 손님’에 대해 듣고 싶어 한다. 술에 취한 사람과 좁은 공간에 있다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여러 상황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나는 정중하고 다정했던 이들을 먼저 떠올린다. 그들이 더욱 기억에 남기도 하 고,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손님들은 상식적이고 따뜻하다. “기사님의 차라고 생각하고 편안히 운전해주세요”라고 했던 경찰 공무원을, “나 대리기사님 ‘오셨’으니까 곧 갈게” 하고 부모님께 전화하던 젊은 여성을, 차키를 두 손으로 공손하게 전해주고는 “조심히 들어가세요”라고 90도로 인사하던 대학생을, “뭐라도 좀 드리고 싶어요”라면서 근처 편의점으로 데려가 따뜻한 커피를 쥐어주던 회사원을, 나는 모두 기억한다. 


그러고 보면 대학에서 나온 나에게 조건 없는 후의를 베풀어준 분들이 많았다. 글을 쓸 공간을 내어주거나, 괜히 찾아와 밥을 사주고 가거나, 내 책이 나오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사주거나 하는 분들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조금은 여유를 찾고 그분들께 “저에게 왜 잘해주신 건가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나는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그뿐이에요” 하고 답했다. 서로 별다른 교류가 있는 것도 아닌 각각의 사람들이 정말 거짓말처럼 그렇게 반응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하는 한마디를 타인에게 보낼 수 있는 우리는 그것으로 서로를 지탱한다. 마치 대리운전 콜을 잡고 여러 사람과 만나 이동하는 것처럼, 모두는 느슨하지만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 카카오는 여러 플랫폼을 통해 사람들이 그 연결을 감각할 수 있게 돕는다. 한 플랫폼 회사가 확산시키는 긍정적 연대에 대해, 무엇보다도 ‘나’라는 개인의 삶에 끼친 영향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보낸다. 계속 사람과의 연결을 고민하는 카카오로 곁에 있기를 바란다. 더불어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잘’되었으면 한다.


매거진 <Partners with Kakao>의 4호는 이렇게 구성됩니다. 

<Partners with Kakao> 4호 목차


- hello, partners!


◼︎ partners

- 카카오이모티콘 키몽 작가 '아재 개그'의 재탄생
- 병무청과 카카오톡의 특별한 협업 '입영통지서, 카카오톡으로 받아요'
- 카카오드라이버 김민섭 작가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 (본 글)
- 카카오페이지 김영탁 감독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꾼'

- 쉿, 카카오의 비결 파트너께만 알려드려요 'Kakao 클래스'

◼︎ with Kakao

- 모두를 위한 연결 II '난 카카오톡으로 우리 손주랑 얘기해'
- 같이가치 with Kakao '까막눈 할머니, 폰트를 만들다'
- 다가치펀드 '손바느질에 담긴 마음을 아기에게'
-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플친, 맞춤 행정으로 가는 길'

오프라인으로도 발간되는 <Partners with Kakao> 매거진은 카카오헤어샵 우수매장 200곳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4호의 전문은 아래에 첨부된 pdf로 받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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