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with 카카오페이지 '곰탕' 작가 김영탁 영화감독
처음 각본과 연출을 도맡은 <헬로우 고스트>로 2011년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 스위스 뉴사텔 판타스틱 국제영화제 최우수 아시아영화상 등 굵직한 트로피를 거머쥔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 김영탁. 카카오페이지에 첫 소설 <곰탕: 미래에서 온 살인자>를 연재하며 ‘소설가’라는 직업까지 겸하게 됐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2063년 부산. ‘유사 곰탕’을 만드는 가게의 주방 보조 ‘우환’은 진짜 곰탕을 배워오라는 주방장의 말에 2019년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의 <곰탕: 미래에서 온 살인자>. 목숨 건 시간여행에서 살아남은 우환과 사람을 죽이러 왔다는 소년이 등장하는 김영탁 감독의 첫 소설이다. 서점이 아닌 카카오페이지에서 먼저 독자들을 만난 이 이야기가 무한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누군가를 곁에 붙잡아두고 오랫동안 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대화에는 영 재주가 없는 수줍은 소년은 자연스레 익명의 ‘청자’를 위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수필도, 소설도 아닌 글을 썼던 소년 김영탁이 어른이 되어 시나리오 작가가 됐고, 영화감독이 됐다. 그런 그가 나이 마흔이 되던 2015년 한 편의 소설을 완성했다.
지난해 11월 13일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를 시작한 뒤 3일 만에 구독자 10만 명을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운 소설, 세 달 만에 41만여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며 최단기간에 문학 분야 랭킹 1위에 오른 소설, <곰탕>. 그건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는 김 감독의 마음에서 우러난 글이었다. 김 감독이 만들어낸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그의 첫 소설도 평범한 일상의 어느 순간을 비집고 시작되었다.
“2011년 추석 즈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몇 년 지났을 때네요. 어느 날 아내와 아내 친구와 함께 곰탕을 먹는데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났죠. 그래서 시간여행이 가능해지면 아버지 생전으로 돌아가 곰탕을 드시게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아버지가 곰탕을 참 좋아하셨거든요.”
김 감독에게 갑자기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은 비현실적일 만큼 황망했다. 아버지 대신 돌연 가장이 되었고, 그 낯선 책임감을 끌어안느라 스스로의 감정을 돌보지 못했던 까닭일까. 억눌렸던 상실감이 뒤늦게 밥상 앞에서 터져 나왔다.
김 감독의 마음처럼 묵직해지려는 분위기를 전환한 건 친구였다.
“친구가 너무 재밌다면서 영화 소재로 딱이라고 하는 거예요. 거기에 솔깃해서 바로 작업방으로 달려가 마구 메모를 했어요. 그게 <곰탕>의 탄생이었죠. 시간여행이 가능한 때에, 과거로 가서 아버지를 만나는 이야기.”
김 감독은 여행을 좋아한다. <곰탕>의 초고를 탈고한 것도 2014년 말 떠난 여행지에서였다.
“마흔을 앞두고 남인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보통은 여행만 떠나도 뭉친 어깨가 절로 풀어지는데. 남인도를 거의 다 돌았을 때까지도 마음이 무겁고, 싱숭생숭한 것이, 제 자신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러다 일정이 끝나는 스리랑카 콜롬보에 이르렀을 때 김 감독은 계획을 바꿨다. 써야 할 것은 시나리오가 아닌 소설, 메모로만 남아있던 <곰탕>이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멀지만 바다 전망이 있는, 저렴한 호텔을 찾아 한 달치 방세를 냈다. 그러고는 방에 틀어박혀 눈을 뜰 때부터 자기 전까지, 끼니만 때우며 치열하게 써 내려갔다. 출국하는 당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썼다. 정확히 40일이었다.
“돌이켜보니 흐뭇하기도 하고, 그때 뭐가 힘들었구나 싶기도 하고. 매일 쓴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데. 그 당시에는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평생의 스승을 잃어버린 아들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실존의 질문이자 답이며, 일종의 의식과도 같았다. 김 감독은 <곰탕> 속 캐릭터들에 자신의 모습이 조금씩 나눠 담겨있다고 했다.
“제 모든 감정을 한 인물한테 몰아넣으면, 그 인물이 너무 무거워질 것 같았거든요. 각 인물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풀어주는 과정에서 어떤 감정은 우환이가, 또 어떤 것은 순희가, 종인이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저를 달래주기도 했습니다.”
<곰탕>의 초고에 관심을 가진 출판사도 있었지만 김 감독은 내키지 않았다. 귀국한 뒤 영화 작업이 바빠 퇴고를 할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기도 했다. 그러던 김 감독은 심리적인 슬럼프를 겪으며 두문불출하던 지난해 5월, 카카오페이지를 만났다.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단어지만, 분명 ‘운명’ 같은 게 있었어요. 출판사를 차렸다는 지인이 책 내고 싶은 거 없냐며 연락을 해와서 모처럼 만났죠. <곰탕> 얘기를 하니까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더라고요.”
카카오라는 회사에 대해 아는 거라곤 카카오톡밖에 없던 김 감독은 덜컥 황현수 카카오페이지 사업총괄 부사장까지 만났다. 일사천리였다.
“첫 소설, 정말 중요한 일인 데도 어쩐지 ‘에라 모르겠다, 해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잘 모르는 플랫폼인데도 카카오페이지가 젊고 정직하며 편안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그 운명은 확신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담당자들의 에너지가 참 좋았어요. 과정이 한결같이 순탄하고 깔끔했습니다.”
결과도 거기에 부응했다. 국내 주요 웹소설 연재 플랫폼에서는 SF(Science Fiction・공상과학) 소재를 활용한 소설을 찾기 어려울뿐더러, 연재처도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간혹 연재되더라도 대중적인 관심을 얻기가 쉽지 않다. <마션>처럼 소재의 다양성을 갖춘 작품이 웹을 통해 대중에게 인정받고 출판과 영상화로까지 이어지는 해외의 경우와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의 시간여행이라는 설정에, 고아인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부모를 만나는 드라마와, 극적인 긴박함을 더하는 범죄 코드까지 곁들인 <곰탕>은 독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무료 독자에서 유료 독자로 전환된 비율이 인기리에 연재되는 장르 소설에 비할 만한 높은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에 김 감독은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제가 글을 쓸 당시 느낀 감정을 그대로 전해받는 독자의 댓글을 발견할 때 너무 뭉클합니다. 누군가와 이야기로 소통하고,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이어서요. 자기 어머니와 얽힌 상처를 들여다보고 치유받았다는 독자도 있었어요.”
김 감독은 카카오페이지가 창작자에게도 즐거운 자극이라고 말한다.
“카카오페이지는 차근차근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담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 웹소설, 웹툰, 베스트셀러, 그리고 이제 영화까지 모든 걸 손 안에서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는 플랫폼은 유일무이하잖아요.”
카카오페이지의 콘텐츠 생태계는 창작자에게 스스로의 이야기를 돌아볼 수 있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카카오페이지에서 나의 이야기가 어느 영역쯤에 있는지 확인하고 조금 더 웹소설에 맞게 써야겠다, 순수문학을 해야겠다, 방향을 정하는 창작자들이 많을 겁니다. 독자들의 정서와 취향을 확인하고 공감하기도 좋고요.”
그래서 김 감독은 카카오페이지에 거는 기대가 크다. 다양한 콘텐츠가 한데 모여 있는 환경이 콘텐츠에 대한 독자의 편식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어서, 결국엔 연령이 다른 독자 간 취향의 격차까지 줄여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웹툰의 영화화를 검토한 적이 있는데 조카가 참 좋아하더라고요. 저는 처음 듣는 웹툰인데, 그 친구는 열광하는 거예요. 웹툰을 보는 세대, 순수문학을 보는 세대가 다른 시대입니다. 다양한 콘텐츠를 담은 카카오페이지에서는 웹툰 보던 10대가 다른 탭을 둘러보다가 소설을 읽을 수도 있고, 영화나 실용서적을 보는 40대가 웹툰에 빠질 수도 있을 거예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카카오페이지는 창작자들이 1차 저작물을 다양한 형태로 변주하는 것을 적극 지원한다. 김 감독은 이 점을 눈여겨보는 중이다.
“이 콘텐츠는 소설, 저건 웹툰, 이렇게 제한을 두고 구분하는 게 아니라 선택하고 확장할 수 있는 카카오페이지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요. 다양하게 고민해주시고 제안해주시거든요. 이야기가 외연을 넓히면서 발전하는 걸 보는 건 독자뿐 아니라 작가 입장에서도 굉장히 훌륭한 경험이죠.”
모바일 플랫폼을 무대로 독자를 만났던 <곰탕>도 변신 준비에 한창이다. 우선 3월 말 <곰탕>이 종이책으로 거듭나 오프라인 독자들에게도 선을 보일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카카오페이지가 마련해준 독자와의 만남 자리에서 <곰탕> 연재분 일부를 편집해서 만든 가제본을 만져봤는데, 연재를 시작할 때와는 또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출판은 시작일 뿐이다. 김 감독은 카카오페이지와 함께 <곰탕>을 웹툰으로 만드는 작업에 대해 논의 중이다. 본업인 영화 쪽으로 욕심을 낼 법도 한데, 김 감독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제가 영화감독이긴 하지만 <곰탕>은 드라마가 더 어울릴 것 같아요. 캐릭터들의 비중을 줄이고 싶지 않고, 오히려 급하게 쓰느라 못다 한 이야기들, 캐릭터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충분히 풀어내 보고 싶거든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만들었다는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이 드러나는 다짐이다.
“드라마 이후 대중의 또 다른 기대와 반응으로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조금은 다른 이야기로 풀어가지 않을까 싶네요. 숨겨진 이야기가 깊은 다른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식으로요.”
김 감독에게 남은 고민은 ‘부끄러움’에 대한 것이다. <곰탕>을 세상에 내놓을 때도 겪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창작자의 숙명 같은 감정, ‘얼마나 부끄러울 수 있는가.’
“<헬로우 고스트> 는 시나리오 반응이 좋아서 투자를 받고 감독이 된 것 같아요. 현장에서는 너무 재미가 있어서 제가 천잰 줄 알았죠. 그런데 가편집을 보니까 엉망이더라고요. 엄청 부끄러웠죠. 그런데 한 번 부끄러워보고 나니까 배우는 게 있고, 다음 것을 할 수 있는 상황도 되고 하더라고요. 부끄러워 봐야 성장도 있구나. 이번에도 호되게 부끄럽겠지만, 그런 후에는 다음 소설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김 감독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모든 형태의 이야기로 지지하고 싶은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다. <곰탕>에서 역동적인 층위를 전부 드러내면 남는 본질도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아버지를 만나러 떠난다는 단순한 이야기다.
“저는 사람들의 일상이 무너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어요. 하루가 무너지고 일상이 무너지면 그게 결국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가게 하거든요. 제 독자와 관객들은 제 이야기를 보고 나서 내일도 더 버텨봐야지 하고 힘을 얻으면 좋겠어요.”
◼︎김영탁 감독의 카카오페이지 첫 소설 '곰탕 : 미래에서 온 살인자'
http://page.kakao.com/home/50491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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