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못하는 것들
그러면 안 되는데 가끔씩 발칙한 일을 벌이곤 한다. 참고로 부모님, 특히나 어머님은 내가 그림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해 처음부터 지금까지 반대를 하고 계시는 한 분이다. 어려서부터 방안에 물감이며 스케치북이며 돌아다니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으셨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당시, 내가 살던 집은 보통의 단독 주택이었는데, 부엌 안쪽에 작은 방이 하나 있었고 그곳에는 그림을 그리는 삼촌이 살고 있었다. 머리와 수염이 덥수룩했지만 키도 크고 아주 멋진 삼촌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남이었다. 하숙처럼 월에 얼마씩 내고 살았다고 한다. 학교가 끝나면 삼촌~ 삼촌~ 하면서 따르며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 삼촌방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삼촌은 유화를 그렸다. 몇몇 풍경 그림 말고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항상 그림을 그리느라 바빴다. 나의 첫 그림 스승이기도 했던 삼촌,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홀연히 다른 곳으로 떠났고 그 뒤론 소식조차 모른다.
꽤 오래 한 집에 살았지만 내가 삼촌에 대해 아는 것은 그림을 그렸고 내게 친절했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부모님들이 기억하는 삼촌이란 존재는, 항상 세가 밀리고 고로한 화가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한 번씩 삼촌이 등장하곤 했다.
그런데 내가 왜 삼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맞다. 그림을 반대하는 어머님 때문이다. 그림을 반대한다는 것. 사실 내가 무슨 작업을 하는지 여전히 관심이 없으시다. 알려고 하시지도 않으신다. 나도 그런 어머니의 성격을 잘 알기에 보통은 컴퓨터를 이용해 작업을 한다. 이제는 내 방, 아니 내가 살고 있는 집에 자주 오시지도 않지만 아무튼 내 방안에는 흔한 미술 도구가 하나도 없다. 가능한 많이 디지털 작업을 하고, 필요한 경우 날은 잡아 작업을 하는 식이다.
어느 날 부모님 댁에 갔다가 버려진 나무쟁반 하나를 발견했다. 다행히 분리수거함으로 가지 않은 상황이다. 쟁반은 틈이 벌어지고 바닥이 금이 살짝 가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사이즈이지만 뭘 올려놓기는 불안한 상태. 그렇게 버려진 나무쟁반을 몰래 숨겨 가지고 나왔다.
먼저 벌어진 틈과 금이 간 부분을 메우고 조였다. 쟁반의 역할은 못하겠지만 모양이 액자를 대신할 수 있어 보였기에 날을 잡고 작업을 하기로 했다. 바탕칠을 해놓고 나무쟁반을 뒤집어 그 아래 <태평소 부는 사람>을 그려 넣었다. 그렇다. 100년 넘은 장여에 그려 넣었던 그림과 똑같은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단청기법으로 작업을 했고 금분과 먹선을 넣어 마무리하였다. 나름의 쓰임새를 부여한 것이다. 뒷 면에 작업했기에 평상시에는 작품이 보이지 않는다. 완벽히 감출 수 있다. 얼마 후 집으로 방문한 어머니가 버렸던 나무쟁반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셨다. 한 마디 쏘아붙일 기세라 나도 모르게 재빨리 나무쟁반을 뒤집어 보였다. 버렸다고 생각했던 본인의 나무쟁반을 이리저리 살피시는 어머니의 표정을 관찰하는 재미. 짧은 순간 어머니의 얼굴엔 희로애락이 뒤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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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어머니는 자신이 버렸던 나무쟁반을 아무 말 없이 도로 가져가셨다.
누구에게나 포기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겐 그림이, 어머니에겐 주방용품이 그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