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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무엇인가?

북미 로드트립의 서막

살면서 몇 번의 여행을 떠나고 또 돌아왔을까?

항상 여행을 갈구했고 그래서 많이 떠났지만,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또 돌아와서도 무엇을 위한 여행이었는지, 단지 욕구 해소를 위한 배설 같은 여행은 아니었는지 스스로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았다. 많은 여행을 한 뒤 지금 배운건 여행이 다 같은 여행이 아니라는 거다. 그동안 애매모호하게 우리가 여행이라고 불렀던 것들에 조금 더 적절한 단어를 찾아보았다.  예를 들어서 하와이나 보라카이, 멕시코의 칸쿤 같은 리조트에서 머무르며 휴양을 즐기는 것은 휴가, 영어로는 Holiday 또는 vacation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여행사의 가이드를 따라 유적지나 랜드마크 같은 가이드북에 나온 곳들을 투어 하는 건 관광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그럼 우리가 여행이라는 단어에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그 정도는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여행이라 하면 좀 더 날것의, 그러니까 낯선 곳에 스스로를 떨구어 놓음으로써 일상과 격리되고, 기꺼이 리스크와 변수를 감수하는 것이다. 왜 굳이 이런 고생을 사서 하냐 묻는다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은 항상 안정을 갈구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모험을 하고 싶어 한다. 오랜 시간 지속되는 안정은 사람을 나태하게 하고 곧 지루함을  느끼도록 하기 때문이다. 여행은 일상과 동떨어진 경험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주고 일상이 다시 그립도록 만든다. 


물론 여행 경험의 정도에 따라서 관광이나 휴양 역시 누군가에게는 큰 모험과 도전이 될 수 있다. 그런 분들은 조용히 이 책을 덮고 가이드북이나 여행사 브로슈어를 보는 게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이란 무엇인가라는 단순하고도 심오한 질문에 끌려온 독자라면, 나름 여행해볼만큼 해봤는데 갑자기 현타가 왔을 수도 있다. 



"여행이란 무엇인가?"라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계획하고 준비하는 시간부터 떠나고 돌아오는 과정은 물론 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과 경험까지 전부 포괄한다. 개인마다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있고, 가끔은 여행 중 목적이 바뀌거나 찾을 수도 있고, 아예 없을 수도 있다. 다만 좋은 여행은 삶과 더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누군가의 삶의 나의 여행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올 수도 있고, 내 삶이 여행에 녹아들 수도 있다. 운동 삼아 매일 하루 한 시간씩 타던 스케이트를 뉴욕 여행까지 가져가 아침 일찍 호텔 헬스장 대신 브라이언트 파크 아이스링크에 갔을 때, 스케이트 끈을 고쳐 묶으며 오전 7시 개장을 기다리던 나의 곁에는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뿐이 없었다. 그때 나는 '아 나의 여행이 한 단계 성숙했구나'라고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행은 가이드북 안에 없다. 가이드가 무언가를 제시해줄 순 있지만 단순히 랜드마크 몇 곳이 여행 전체를 대변해 줄 수는 없다. 항상 여행은 삶의 연장, 또는 삶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떠나고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나는 그렇게 성장했다. 장시간의 장거리 운전이나 비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소파에 드러누웠을 때 '아 역시 집이 최고다'라고 느끼는 사람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내 일상을 사랑할 수 있었다.



장기여행을 꿈꾸다가 아예 이민을 와버렸는데, 외국생활을 하는 중에도 나는 항상 더 길고 먼 여행을 갈구했다. 잠시 캐나다 생활을 일단락해야 하는 시점이 왔을 때, 나는 그 끝과 시작을 기억할 수 있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꿈꿔왔던 북미 대륙 1만 km 횡단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 현대정공의 갤로퍼 세계 대장정이라는 광고를 보고 자동차 세계여행을 꿈꾸었던 내게 캐나다 횡단은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나는 세계 국토면적 2위라는 캐나다의 크기를 절대 가늠할 수 없었고, 그래서 그 도시와 도시를 잇는 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꼭 내 눈으로 한번 보고 싶었다. 누군가는 그랬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라고. 그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래서 아무거나 무엇이든 담을 수 있었다. 비행기는 가끔 내가 집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날아왔는지 실감하지 못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로드트립은 내가 지나온 거리를 몸소 실감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속도의 여행 방법이다. 



나에겐 문짝 두 개 그리고 캐나다 번호판이 달린 이탈리아산 소형차가 있었고, 졸리면 내 입에 껌을 밀어 넣어줄 여행 매이트도 있었다. 내 이름 세 글자가 박힌 캐나다 신용카드까지 있었으니 나에게 떠나지 못할 이유는 따위는 없었다. 정말 도시와 도시 사이 그 길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을까? 캐나다와 미국을 횡단하여 달린 1만 km의 길 위에서 나와 나의 메이트가 무엇을 보았는지, 소소하게 적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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