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이 맛있는 캠핑장

지역과 상생하는 캠핑장 KOA

시애틀에서부터 여기 라피드 시티(Rapid city)까지 꽤 많은 거리를 달려왔다. 어제는 러시모어산에서 미국 대통령들의 얼굴 석상을 구경하고 가까운 KOA(Kampgrounds of America) 캠핑장에 자리를 잡았다. 19박 20일의 북미 여행 중에 6박을 호텔에서 지냈고, 하룻밤은 숙소를 잡을 수 없어 모르는 분의 집에서 신세를 졌다. 그리고 나머지 열 두 밤은 모두 캠핑을 했다. 캐나다로 이민 온 뒤로 하지 못했던 캠핑을 밀린 것까지 질리도록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날을 캠핑장에서 그것도 매일 다른 곳에서 밤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좋은 캠핑장들 덕분이었던 것 같다. 빨래, 샤워, 와이파이까지는 물론이고 장기 여행자에게 내 집 같은 느낌을 주어 편이 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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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넘어오고부터 애용했던 캠핑 체인 브랜드 KOA는 어떤 지점을 가던 일정한 수준의 균일한 서비스를 제공해주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여독을 풀 수 있었다. KOA는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약 500여 개의 체인을 거느린 세계 최대 규모의 캠핑장 체인이다. 그들은 까다롭기로 소문난 600개의 항목을 가지고 매년 자신들의 캠핑장 환경을 검사하기 때문에 고객들로부터 늘 좋은 평가를 받는다. 개인적으로 여행할 때 글로벌 기업들의 체인점을 즐겨 찾지는 않는 편이다. 물론 급하게 화장실이나 와이파가 필요할 때는 맥도널드와 스타벅스가 매우 유용하지만 그것 외에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는 않는다. 특히 이런 체인점들은 각 지역의 개성을 흐리며 지역상권을 해치기 때문에 나는 여행 중 되도록이면 로컬 음식점을 이용하려 노력한다. 국내 여행을 할 때도 술은 항상 지역 소주를 마신다. 하지만 KOA의 캠핑장들은 시설이나 서비스 퀄리티 외에도 그 안에서도 상당히 바람직한 문화를 보였기에 미국을 횡단하는 동안 대부분의 밤을 그곳에서 머물렀다. 예를 들면 지역과 기업이 상생하는 법 같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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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머물렀던 한 KOA 캠핑장은 아침 조식 서비스가 있었다. 2~3불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팬케익과 스크램블, 소시지와 베이컨 같은 아메리칸 스타일의 아침을 먹을 수 있다. 주말에 먹는 늦은 아침(또는 아침과 점심 사이에 먹는 아점)을 브런치라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1930년대부터 대중화되었다. 보통은 동네 브런치 가게에 가서 간단하게 사 먹는데, 요즘 SNS에서 유행하는 아기자기한 스타일의 브런치는 아지지만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오래된 아메리칸 스타일의 브런치 집이 많이 있다. KOA캠핑장에서는 그런 느낌의 조식을 제공하고 있었다. 단순히 아침을 주는 게 어떻게 지역과 상생을 하는 거냐고요? 아침을 준비하고 서빙해주는 게 모두 이 지역의 노인들이다. 여기 캠핑장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고 서비스까지 해주니 북미의 오래된 브런치 맛집에 온 느낌이 들어 너무 좋았다. 생각해보니 어제 체크인할 때 도와준 리셉셔니스트, 시설을 관리하던 관리인 등 이 캠핑장 안 대부분의 직원들이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분들이었다.


KOA 캠핑장은 여행자들을 마을로 유치하고 지역의 노인들이나 젊은이들을 직원으로 고용함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마을에 여러 가지 이익을 준다. 특히 일자리 대부분이 노인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에 나는 주목했다. KOA의 인포메이션센터나 매점에 들어서면 코아(KOA)의 상징인 샛노란 티셔츠를 입은 인자한 모습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님들을 맞이해준다. 여행자들은 합리적인 가격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서비스를 받고 시골집에 놀러 온 기분까지 내니 선순환 그 자체였다. 서비스를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너무 기분 좋았던 이 캠핑장의 2불짜리 팬케익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KOA의 사이트나 위키백과를 검색해봐도 이 회사가 "노인 일자리를 위하여 60세 이상만의 직원을 쓰겠다", "일자리를 창출하여 지역과 상생하겠다"하는 메시지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 생각엔 대부분의 KOA캠핑장이 위치한 곳은 젊은이들이 적은 도시의 외각이 많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직원들의 연령이 높은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슷한 광경을 우리나라의 캠핑장에선 쉽게 볼 수가 없다. 노후에 한적한 시골에 가서 캠핑장을 직접 차리는 사람들은 봤어도 말이다. 캠핑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 연령에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연령대별 직업에 대한 선입견이 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대선후보들이 TV 토론에 나와서 그럴듯한 일자리 공약을 펼쳐놓지만 사람에게 직업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일을 하고 그 대가로 급여를 받는 것을 뛰어 넘어서 라이프 스타일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대기업을 다니던 MZ 세대가 거대 연봉을 마다하고 너도나도 퇴사하여 디지털 노마드나 커피숍 창업을 준비하는 것을 보면 사람의 만족도라는 건 단순하게 매달 찍히는 급여의 동그라미 개수와 비례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기업은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여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수익구조와 일자리를 만들고, 이것이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사회적 인식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냈을 때 모두가 만족도 높은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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뙤약볕 아래 아메리카 대륙의 크기를 실감하면서 하루 종일을 달리다가 땅이 조금씩 식어가는 오후 5~6쯤 KOA캠핑장의 사인을 발견하면 '아 이제 집에 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저 노란색 간판만 봐도 마음의 안정이 되는 것이다. Home(집)이라는 느낌이 참 별거 아니구나. 우리는 이 소형차에 우리의 전재산을 싣고 집도 절도 없이 떠돌고 있지만 캠핑장에 들어설 때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직장인의 마음과 다를 게 없다.



여행 16일 차에 묵었던 이 KOA캠핑장은 울창한 숲 안에 있어서 왠지 더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푸르른 잔디가 멋지게 깔린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오늘은 아무 곳도 들리지 않고 하루 종일 운전만 했기 때문에 캠핑장에 조금 일찍 도착해 여유를 느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길게 떨어지는 해 질 녘의 노란빛이 오늘 하루 쌓인 피로를 녹여주었다. 이 캠핑장은 해가지면 스크린에 영화를 상영해주었다. 줄리가 열심히 만들고 있는 오늘 저녁 메뉴는 불고기. 캠핑장으로 오는 길에 들린 월마트에서 상당히 질 좋은 소고기를 발견해 급결정한 메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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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이 이번 여행 중 마지막으로 캠핑을 하는 날이다. 내일부터 거치는 시카고, 나이아가라, 토론토는 들 호텔에서 숙박을 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미시간에서는 특별한 사람을 만날 예정이고, 디트로이트를 지나서 드디어 다시 캐나다 입성한다. 여행의 마지막 밤은 캐나다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토론토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지난 20일간의 북미 횡단 여정과 2년간의 캐나다 생활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그리고 마지막 몬트리올로 돌아가면 호주로 떠나기 전의 이 여정이 일단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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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달려준 우리 차 오백이(피아트 500, 친퀘첸토) 수고했어! 조금만 더 힘내자!

북미 횡단 16일 차 끝!


내일은 오랜만에 대도시 시카고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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